7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막을 앞두고 서해의 군사적 긴장에 관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북방한계선(NLL)을 무효로 하려는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도발의 성격과 목적에 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서해 긴장고조 확실시"
북한의 '서해 도발'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논하는 국내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자주 거론하는 시나리오의 하나다. 이미 두 차례의 연평해전(1999, 2022)과 대청해전(2009), 연평도 포격(2010)이 발생한 데다 NLL을 둘러싼 구조적인 충돌 요인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그프리드 헤커 전 국립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과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대 연구원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에서 북한 헌법에 영토, 영해 조항이 추가되면 "한반도, 특히 서해 긴장을 고조시킬 게 거의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우라늄 농축시설 방문에 관한 38노스 공동기고(9.18.)에서다. 정확한 정보, 특히 기밀 접근권이 없는 학자나 저널리스트가 특정 사안에 대해 "거의 확실하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특히 북한이 주로 전술 핵탄두에 쓰이는 고농축우라늄(HEU) 시설을 공개한 것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지역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림수라고 짚었다. 국내 일각에서도 서해 도발 가능성은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전술핵 능력 과시를 통해 '지역 억제' 전략을 구사하더라도 그 수단은 재래식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2022.6.22.)는 북한이 '강압(coercive)' 목적으로 핵무기를 활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그 수단은 핵무기가 아니라 재래식 전력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득을 얻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력 정책 법령에서 명시한 핵무기 사용 경우에도 맞지 않는다. 최고인민회의가 2022년 9월 의결한 법령은 핵무기 사용을 △조선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한 핵, 대량살상무기 공격 감행 또는 임박 경우 △국가지도부 및 국가 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공격 감행 또는 임박 경우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 감행 또는 임박 경우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재래식 무기 동원한 '강압'
김 위원장은 그동안 전술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압도적 공격을 남한의 주요 군사, 민간 인프라에 가할 수 있음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올해 보인 대남 태세를 보아도 그렇다.
올해 군사 태세를 선제적으로 강화해 온 주체는 되레 남측이었다. 1월 5일 북한의 선제 해안포 사격에 대한 대응사격을 제외하곤 '선제적 행동'이었다. 바로 △9.19 군사합의에 따른 육해공 완충구역의 전면 무효 선언(합참, 1.8.)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방관(5월 이후) △대북 확성기방송 재개(6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소속 해병부대의 서해 포격훈련(6.26., 9.5.) △육군, 군사분계선 5㎞ 이내 포사격 훈련(7.2)이 이어졌다. 한미, 한미일의 잦은 연합훈련으로 긴장 지수를 높였다. 북한은 그러나 비군사적 대응 태세를 취해왔다.
북한은 탈북자 대북전단에 대한 오물풍선 부양,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한 대남 확성기 방송, 서해 GPS 교란 등의 후속 대응을 해왔다. 봄철 꽃게잡이 기간(4월~6월)도 무사히 넘겼다. 윤석열 정부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연초부터 강조했던 '4월 총선 전 도발'도 없었다.
"해상 직접충돌 피할 것"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서해 긴장감을 높인다면, 대남 저강도 대응을 고강도 도발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서해에서 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과 해안포 등.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6일에 이어 10월 6일에도 오진우 포병군관학교를 잇달아 시찰, 포병 전력의 강화를 힘주어 강조했다.
북한이 영해를 선포 뒤 서해 '해상 차단'에 나설 가능성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선포만 해도 남측 여객선 출항이 위협받고 서북 도서 주민들의 불편과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그러나 "북한이 영해 수호 목적으로 해상 차단을 선포하더라도 이를 실시할 해군력이 없다"라면서 "현재로선 해안포 사격 외에 다른 도발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서해 공역에 탄도미사일을 쏴봐야 얻을 게 없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서해와 전술 핵무기를 연결하는 건 무리"라고 짚었다. 남측과 해상충돌을 벌인다면 해군 전력 열세 탓에 북한이 더 큰 피해를 당할 게 분명하다고도 덧붙였다.
전술 핵무기 사용이 녹록지 않고, 해상 차단이나 해상 도발도 마땅하지 않다면 북한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 신세대 지도부의 전혀 새로운 발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오물 또는 쓰레기 풍선과 대남 소음 방송 등 미증유의 행동으로 우리의 의표를 찌른 바 있다. 현재로선 최고인민회의 뒤 북한이 취할 행동의 의도와 수단, 능력을 놓고 보면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단하기 어렵다. 문제는 북한의 결정과 무관한 변수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남측의 의도다.
정치적 난관 돌파용 무리수?
2년 연속 치른 국군의 날 대규모 군사력 시위와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 잦은 전쟁 기념행사를 통해 대내외 태세를 강화해 온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선택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김용현 국방장관으로 안보 진용도 개편해 놓은 상태다. 대북 전단→오물 풍선→대북 확성기 방송→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긴장을 꾸준히 올려온 추세로 보아 북한의 결정 또는 행동에 강경 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 지지율 20%대의 정부가 북한의 행동을 빌미로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의외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북한이 앞으로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추가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싱가포르, 라오스 순방에 앞선 AP통신 인터뷰에서다. (연합뉴스) "쓰레기풍선 탓에 국민 안전에 위해가 발생할 경우 북한은 감내하기 어려운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대통령은 작년 1월 11일 북한의 핵, 미사일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 전력과 관련,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안팎으로 불안 요소가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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