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무인기?) 조태용 국정원장은 '우리가 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영역에서 넘어간 건 없다'는 군 당국의 애매한 말도 있었다. 육상이 아닌 곳에서 넘어갔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몇몇 국정원 요원이 원장 모르게 보낸 적이 있다'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의 말에 조 원장은 '사실이 아닐 거다.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모든 정황은 지금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 " (29일, 국정원 국정감사,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의 전언)
국가정보원 또는 대통령실 의도대로 언론은 북한군 러시아 파병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과 국정원, 국가안보실, 합동참모본부 등이 총동원된 윤석열 정부의 '팀플레이' 탓이다. 그럼에도 '평양 무인기 삐라'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안보에 영향을 미칠 '뇌관'으로 남아 있다. 29일 국회 국정원 국감에서 나온 말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않은 '의혹'을 정리한다.
북한은 지난 28일 평양 중구역 상공을 침범(10.9.)한 무인기 비행기록과 비행궤적을 토대로 무인기가 백령도에서 이·착륙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지난 28일 최종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를 토대로 멀리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백령도에 정보자산을 보유해 온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보위 야당 의원은 민들레에 "국정원 개입 의혹에 대해 국정원 차원에서 '우리가 한 건 아니다'라며 전면 부인했다"고 전했다. 국정원이 백령도에 정보자산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않았다. 두 가지 의혹 모두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가 아니라, 전면 부인한 것. 이날 국정원 보고는 무인기 관련,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한반도 영역이 아닌 곳' '육상이 아닌 곳'에서 넘어갔다면 이·착륙 지점은 백령도 인근 해역이다. 북한이 증거로 제시한 비행궤적은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비행기록 데이타에는 명확한 상수와 전자신호로 경로를 유추한 추정치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해역이다.
무인기가 백령도 해역~평양까지 왕복 300㎞를 비행하려면 활주로가 필요 없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군납 업체를 비롯해 국내에서 이 정도 성능의 무인기는 얼마든지 구매가 가능하다. 다만 무인기를 쏠 사출기가 있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선박과 사출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단 탈북자단체는 제외해야 한다. 덕적도 북쪽 해역에는 '어업한계선'이 설정돼 있어 민간 선박이 접근할 수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백령도 해역에 접근할 수 있는 함정을 찾아야 한다. 군 정보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정보사령부가 운영하는 정보수집함을 후보에 올려놓을 수 있다. 무인기도 갖춘 선박이다. 이처럼 수단은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다. 북방한계선(NLL) 접근이 가능한 함정과 사출장치를 갖춘 무인기이다. 그러나 행위자에 대한 추리와 분석은 다시 벽에 부딪힌다.
김용현 국방장관은 지난 11일 "(군이) 그런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위당국자들이 국회에서 대놓고 거짓말을 했다고 보는 건 무리다. 국정원장이나 국방장관은 면책권이 없다. 국회 위증죄는 최고 10년 형에 처해진다. 군도, 국정원도 아니라는 전제에서 행위자를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 '원장 모르게' 무인기를 보냈을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조 원장이 자신 있게 부인하지 못한 점이 주목된다. 그는 "사실이 아닐 거다. 알고 있지 않다"라고만 답했다. "국정원은 안 했다"는 적극적 부인과 사뭇 뉘앙스가 다르다. 행위자는 현역 군인이거나, 현직 국정원 요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군도, 국정원도 아니지만 '삐라 무인기'를 백령도 근해에서 평양까지 보내려면 군 또는 정보당국 함정이 필요하다. 과학적 사실이다. 현역 또는 현직이 아닌 제3의 행위자가 정부 소유 함정에서 무인기를 띄웠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라도 '정부의 손'은 존재한다. 군·정보기관 함정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직 군인 또는 요원이 정부 함정으로 백령도 해역에 접근하는 방식의 협업이라면, 높은 수준의 개입이 필요하다.
북한이 '평양 무인기 침범'을 발표한 의도에 관한 조 원장의 평가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는 "북한이 (남남갈등 유발과 함께) 내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풀린,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처음으로 평양 무인기 사건의 실체를 인정한 대목이다. 국방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흘리면서,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반복했다. 조 원장의 말은 북한이 과장했지만, 평양 삐라 무인기 침투 사건이 있었음을 인정한 발언이다.
삐라 무인기 송출 행위자는 적도 속였지만, 아군도 속였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는 무인기 출입을 탐지하는 저고도 레이더 시설이 있다. 해상을 선택한 건 북한은 물론 우리 군 당국도 모르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백령도 인근 해역은 주한미군의 정보자산도 없는 곳이다. 지난 14일 평양 무인기에 대해 엄격한 조사에 착수한 유엔사가 관장하는 비무장 지대(DMZ)도 아니다. 다만 1970년대 주한미군 사령관이 설정한 한국작전전구(KTO)에는 포함된다. 적과 아군에 이어, 주한미군도 속이기에 최적의 장소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만일에 하나 적발되더라도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고도의 계산에 따른 '모험'이었음을 말해준다.
안보 위협은 인식하는 주체의 판단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단순한 정찰용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날았다면 북한이 '재발 시 자위권 발동'이라는 최후통첩을 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먼저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12차례 이상 무인기를 우리 영공에 먼저 침투시켰다. 2022년 12월 26일엔 대통령실 청사가 있는 용산 상공을 돌아본 적도 있다. '평양 무인기'가 다른 건 노동당 중앙위 청사 건물이 있는 평양 중구역 상공에서 삐라가 뿌려졌다는 점이다. 체제 단속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는 북한에 삐라는 단순한 종잇장이 아니다. 체제를 위협하는 '폭탄'이다.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무력 동원을 경고한 이유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누군가 무인기 삐라를 살포했다면 심각한 '군사적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군 파병 뉴스로 무인기 문제를 덮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진실은 결코 묻히지 않는다. '평양 무인기'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행위자들에게 적용될 '법적 책임'은 무겁다. 자칫 국가안보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군사적 모험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 전쟁인 양 요란하게 퍼뜨리는 먼지가 가라앉고 난 뒤 언젠가 드러날 정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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