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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우크라이나에 '핵전쟁 위협' 남기고 떠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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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국이 (러시아 공격에) 포함되거나,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비핵국가가 공격할 경우도 핵무기 사용의 조건이 된다. 핵무기뿐 아니라 대규모 공중 또는 우주공격무기를 발사하거나, 그러한 무기가 국경을 넘을 것이라는 믿을만한 정보를 확인한 순간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을 마친 뒤 회의장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2024.11.18. AFP 연합뉴스

크렘린궁 "불에 기름 붓는 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크렘린궁 '핵 억제력 상임회의'에서 핵 독트린(교리)을 개정하면서 밝힌 말이다.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공격에도 핵무기 사용을 예고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공중 공격무기의 종류로 전략 및 전술 항공기와 순항미사일, 무인기, 초음속 항공기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공격을 허용한 사거리 300㎞의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은 정확하게 이러한 공격무기에 해당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 탓에 러시아가 우크라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퇴임 두 달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에 핵전쟁 위협을 남기고 떠나는 셈이다. 백악관이 이번 결정의 빌미로 또다시 '북한'을 거론한 것도 한반도 안보에 상서롭지 않은 조짐이다.

18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서방 장거리 무기의 러시아 공격이 나토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해석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경고를 상기시키면서 확전을 예고했다. 페스코프는 "물러가는 워싱턴의 행정부가 그동안 말해왔던 조치를 취할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하다"라면서 "불에 기름을 끼얹어 분쟁을 둘러싼 긴장을 더욱 확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과 그 위성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적대 행동에 직접 개입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분쟁의 본질과 성격에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의 대응은 적절하고 명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사거리 300km의 ATACMS 지대지 미사일.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백악관 "작전상 확인 못해"

백악관은 이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존 파이너 백악관 부 국가안보보좌관은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았지만, 여기서 확인해 줄 것은 없다"라면서도 "(미국이) 정확하게 어떤 대응을 할지는 작전상의 이유로 밝힐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라고 덧붙였다. '바이든이 사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이 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는 "두 대통령 간의 대화에서는 분명히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모든 주요 이슈가 포함됐지만, 상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해 트럼프 당선자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크렘린궁의 반응에 대해서는 "우크라 침공으로 불을 지른 것은 러시아였다"고 반박했다. 또 "러시아는 북한군을 배치한 데 지난 24시간 동안 우크라 전역의 기간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강행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17일 개전 이후 최대, 최악의 공격을 가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브리핑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우크라 대통령실도 이날 침묵을 지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심야 대국민 연설에서 "타격은 말이나 발표로 하는 게 아니다. 로켓(미사일) 스스로 말할 것"이라고 말해 '선 공격, 후 공개'의 수순을 밟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3차 세계대전의 발발 가능성은 작다. 러시아가 미국이나 나토 회원국을 공격할 경우를 전제하는 것이다. '한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라는 나토 조약 5항(집단 방위)에 따라 러시아 대 나토의 전쟁으로 비화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쉽사리 공격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받게 될 러시아의 위협지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안보협의회 핵 억제력 상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핵독트린의 개정을 결정했다. 2024.9.25. AFP 연합뉴스

미-러 무한 핵경쟁 시대 또 하나의 '악재'

푸틴이 여러 번 경고해 온 바 우크라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크라를 절멸시킬 수준의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저위력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러시아의 핵교리 개정은 전쟁 발발 뒤 서방의 대우크라 무기지원과 연계해 추진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전 초기부터 에이태큼스와 F-16 전투기 등 비롯한 러시아 영토 공격이 가능한 무기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바이든은 "3차 대전을 하자는 말이냐"며 거절했었다. 그러나 우크라군이 예상외로 선전하자 단계적으로 무기 제한을 풀었다. 러시아는 핵 위협과 핵 교리 개정으로 대응했다. 푸틴은 2022년 12월 처음으로 미국처럼 선제 핵 타격을 교리에 포함할 것을 예고했고, 2023년 2월 국정연설에서 미·러 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2)의 핵심 요소인 상호 핵시설 사찰을 중단시켰다. 같은 해 7월엔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사상 첫 핵무기 전개 연합훈련을 했다.

푸틴이 지난달 핵교리 개정에서 비핵국가(우크라)의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공격을 핵무기 사용의 조건으로 추가한 것은 우크라전과 직접적으로 연계한 포석이었다. 에이태큼스 미사일의 성격도 러시아의 심상찮은 대응을 촉발시킨다.

에이태큼스는 일반형과 클러스터 형이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작년 10월 미국이 우크라에 건넨 미사일 20기는 집속(cluster)형이다. 하나의 미사일에 950개의 작은 폭탄이 장착돼 넓은 지역에서 파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우크라군은 같은 달 17일 러시아 점령지에 처음 사용했고, 젤렌스키는 미국에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에이태큼스는 미국이 우크라에 제공한 두 번째 클러스터 형 무기였다. 작년 7월에 건넨 155㎜용 집속포탄은 하나의 포탄에 72개의 작은 폭탄이 장착돼 장갑차량 파괴와 대규모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했다. 에이태큼스 자체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전략무기는 아니지만, 러시아군에 입힐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한국과 주요 나토 회원국 등 세계 123개국이 집속탄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 가입국이다.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는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사거리 300km의 ATACMS 지대지 미사일.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18일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을 마친 뒤 각국 정상화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조태열 외교장관. 2024.11.18. AFP 연합뉴스

미국이 북한을 빌미로 삼은 까닭은?

미국이 북한의 우크라전 개입을 이유로 새로운 무기를 제공한 건 두 번째다. 2023년 9월 5일, 백악관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에 152㎜ 포탄과 미사일이 적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 거래를 했다고 흘렸다. 다음날인 6일 미 국방부는 우크라에 열화우라늄탄을 포함한 10억 달러 상당의 추가 무기 지원을 발표했다. '더러운 폭탄'이라고 불리는 열화우라늄탄은 소량의 우라늄이 포함돼 인체 유해와 환경 파괴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에 에이태큼스 공격을 허용하면서 '북한군 파병'을 이유로 들었다. 북한을 거론한 것은 다목적 포석에서다.

북한의 포탄 제공설을 흘린 뒤 열화우라늄탄을 공급한 건 한국 포탄의 추가 지원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됐다. 에이태큼스 공격 허용 뒤 한국은 어떤 조치를 취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바이든의 결정은 페루 리마 아태경제협의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련된 한국, 일본, 중국 지도자와의 양자 회담 뒤 공개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8일 언론에 "미국 측으로부터 에이태큼스 사용 승인 정보를 사전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관여 정도에 따라 방공시스템을 비롯한 방어용 무기 지원을 우선 지원할 방침을 밝힌 상태다.

우크라이나 지상군 57여단 소속 병사들이 북부 하르키우 지역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2024. 11. 14 [EPA=연합뉴스]

바이든의 결정과 이에 따른 푸틴의 대응은 트럼프 당선과 맞물려 미국과 나토 간에 균열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이 흔드는 핵 카드로 직접적인 위협에 놓일 국가는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예고한 대로 '조기 종전'을 서두른다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안보 위협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 안보와도 직결된다. 우선 푸틴이 지난 6월 19일 북러 정상회담 뒤 언론성명에서 밝혔듯이 장거리 무기 공격은 북러 군사기술 협력의 전제조건이 된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추가 개입을 유발, 한러 관계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푸틴은 바이든의 잇따른 강수에 핵 카드로 맞서 왔다. 이번 사태가 그동안의 '핵 위협'에서 벗어나 '핵 행동'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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