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결국 러시아 영토에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발사함에 따라 우크라전이 핵전쟁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이번 공격은 비핵국가(우크라)가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재래식 미사일로 러시아를 공격하면, 핵무기 사용 조건이 된다고 규정한 러시아의 개정 핵교리에 따라 핵무기 사용의 조건이 된다. 1000일을 넘긴 우크라전이 '루비콘강'을 건너는 형국이다.
미-우크라 "러시아 위협 두럽지 않다"
19일,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군이 미국이 제공한 에이태큼스 미사일 6기를 우크라 접경지 브랸스크주에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3시 25분 발사된 5기는 러시아 방공시스템이 명중했고, 나머지 1발도 손상을 입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공격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에이태큼스 사용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진 지 이틀 만에 단행된 것이다. 크렘린궁은 마침 이날 새 핵교리를 발표했지만, 개정 내용은 이미 지난 9월 25일 공개됐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크렘린궁이 새 핵교리 발표와 관련해 한 발언에 불행히도 놀라지 않는다"라면서 러시아에 "호전적이고 무책임한 수사(말)를 중단할 걸" 거듭 촉구했다. 우크라 정부도 일단 러시아의 핵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내보였다. 이날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 외교장관은 "그들(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관련 공개적 발언(레토릭)은 협박에 불과하다"라면서 "우리는 무력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연합뉴스)
러시아는 단호한 입장을 내보이는 동시에 핵사용에 필요한 준비 절차를 밟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우크라가 동맹의 미사일을 사용한 것은 (미국과 나토 등) 동맹국이 러시아를 침략한 것으로 인정된다"면서 "우리는 우크라와 나토 주요 시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대량살상무기로 보복 공격을 할 권리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는 핵폭발에 대비한 이동식 방공시설(KUB-M)의 양산에 돌입했음을 공개했다.
KUB-M은 핵폭발로 인한 충격파와 방사능은 물론, 에이태큼스 미사일처럼 재래식 무기의 폭발 및 화재, 자연재해 등의 위험으로부터 48시간 보호할 수 있다. 컨테이너 형태로 개당 54명을 수용하며 필요시 모듈을 추가한다. 러시아가 핵교리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하면 인근의 러시아군 병사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읽힌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시설을 공개한 것. 러시아는 중력탄에서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탄두까지 다양한 전술, 전략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핵규범 없는 세계에 던진 공포
퇴임 두 달을 남기고 개전 33개월 동안 미국 스스로 금기시했던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공격을 허용한 바이든의 결정은 국제 핵규범이 무너진 상황에서 핵전쟁의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 미·러 간 중거리 핵전력(INF) 협정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 철회로 폐기됐지만, 바이든은 취임 뒤 이를 복원하지 않았다. 바이든 임기 중에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핵감축 규범인 미·러 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2)마저 중단됐다. 바이든은 취임 한 달 뒤인 2021년 2월 러시아와 START2의 연장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우크라전 개전 뒤 군사적, 경제적으로 러시아의 허리를 끊어놓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분명해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21일 국정연설에서 협정의 핵심 요소인 상호 핵사찰을 중단함으로서 유명무실해졌다. 협정 유효기간이 5년인 START2는 2026년 2월 만료된다.
우크라전 조기 종전을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불과 두 달 남긴 시점에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우크라전 종전과 핵무기 규범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되, 독립적인 이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에서 INF만 일방적으로 철회한 게 아니다. START2의 만료 한 달 전 퇴임할 때까지 협상 재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바이든의 결정은 푸틴 대통령이 이미 지난 9월 25일 핵교리 개정을 발표하면서 공개적으로 내놓은 경고를 무시한 것으로 러시아의 실제 핵무기 사용 여부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바이든은 그 후과로 인한 책임을 떠맡기 전에 백악관을 떠난다. 러-우 전쟁을 핵전쟁으로 비화시킬 결정을 내려놓고 책임은 후임, 트럼프2 행정부에 미룬 꼴이다.
바이든의 막판 무리수는 19일에도 계속됐다. 워싱턴포스트는 행정부 당국자 2명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에 대인지뢰 공급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지난 17일 에이태큼스 사용 승인 사실을 뉴욕타임스에 흘렸다면, 이번엔 워싱턴포스트(WP)이다. 이는 2022년 6월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 대인지뢰 사용을 전면 금지한 본인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일단 매설하면 오랜 세월 동안 군인과 민간인 피해를 낳는다는 이유로 본인이 설정한 금지선을 지워버린 것이다. WP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기준, 대략 300만 개의 대인지뢰를 비축하고 있다.
퇴임을 앞둔 바이든은 잇달아 두 개의 금지선을 넘었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언론에 흘리는 방식이었다. 대인지뢰 공급으로 인한 인명피해 역시 자신의 퇴임 뒤에나 벌어질 일. 단순히 우크라의 주권을 지켜주기 위한 숭고한 결정이라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 60일 뒤면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자택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낼 그가 세계에 선사한, 그 뒤끝이 오래 갈 '더러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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