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시 관료 출신이었다. 정치적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올바른 정치적 의지조차 없었던 게 문제였다.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그에게 따라다닌 오욕의 꼬리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8개월 열흘 동안(1979.12.6~1980.8.16) 대통령 자리에 앉았지만,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 직무유기로 일관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학살을 외면했다. 그 덕에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을 수훈하고, 국정자문회의 의장,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자리에도 앉았다. 87세에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힐 때까지 사적으로 순탄한 삶을 영위했다. 적어도 밖에서 보기엔.
45년 만에 또 다른 관료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국무총리 한덕수. 그사이 고건, 황교안 국무총리도 맡은 자리지만, 지금은 비상한 시기이다.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이 '실패한 반란'으로 귀결된 덕에 앉은 자리다. 권한대행 전까지 지나온 길은 최규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엘리트 관료의 꽃길이었다. 여러 정권에서 고위직을 경험했다. 국무총리만 두 번째. 이제 그는 과연 최규하의 길을 따를 것인가, 한덕수의 길을 열 것인가. 벌써 조마조마한 장면이 연출됐다.
국회가 대통령 윤석열(이하 윤석열)의 위헌적 비상계엄에 대한 해제 결의안을 통과한 4일 이후의 행적이 그랬다. 8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공동 담화문을 읽으며 여당과 정부의 공동 국정운영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국힘 당사에서였다. 대통령이 권한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초헌법적 발상이었다. 다음날 이 와중에 내년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정부의 목소리(최상목 경제부총리)가 튀어나왔다. 국회의 예산안 감액이 비상계엄 이유의 하나라는 대통령의 억지를 두둔하는, 뚜렷한 정치적 언표였다.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대한민국이 개인의 힘으로 이어지는 나라가 아니다"라면서 "당정 협의를 강화해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것이었을 뿐"이라고 발을 뺐다. 윤석열이 법적 책임을 지고 국정을 당정에 맡기겠다는 7일 대국민 담화를 뒤집어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고, 여당 대표가 16일 사퇴 당하면서 일장춘몽이 된 이른 바 '한-한 체제'다.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반란 혐의 수사를 통해 대통령 파면과 사법처리가 진행될 중요한 순간의 '결정자' 자리에 앉은 것. 최규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욕심이 없는 그의 손에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결정이 먼저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 먼저다. 지난 6일 정부에 이송된 6개 법안에 대한 그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이번 주 임시국무회의에서 심의할 예정. 더 중요한 법안은 12.3 내란 일반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이다.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를 나란히 통과해 17일 정부(법제처)로 이송됐다. 15일 안에 결정해야 하는 거부권 행사 시한은 1월 1일이다.
좋은 관료의 자질은 정직하고, 청렴하며, 직무에 충실한다는 점이다. 체질적으로 안정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제 그것만으론 곤란하다. 연전에 세밑 총리관저에서 가진 중견 언론인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경제 관료의) 경험을 살려 국가 경제의 안정된 관리에 전념하기 위해 총리직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힌 걸로 기억한다. 좌중에서는 다른 재취업 이유로 '일중독'을 꼽았다. 은퇴 뒤 맞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서울 신문로의 넓은 이층집에서 부인과 시작한 노후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슬하에 자식이 없는 노부부의 일상은 단조로웠을 것. 노래방 기계를 사들여 부인과 소일거리로 삼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층 서재를 들락였다. 습관대로 이런저런 자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주미 대사 임기가 끝나기도 전 다음 자리를 알아보고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이직, '현역의 수명'을 연장했던 그다. 이후에도 기후변화센터 의장,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등을 맡았다. 양껏 일하기 위해 총리자리에 복귀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했다. 어차피 소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이었다. 권력자가 누구건 무난히 적응해 왔다. 성격이 전혀 다른 노무현 정부(38대)와 윤석열 정부(48대) 총리가 된 비결이다.
총리 재취임 2년 동안 여러 경제지표와 대통령 지지율이 동반하락했다. 여당의 4.13 총선 패배 뒤 밝힌 사의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끝에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 앉게 된 것. 드디어 '낯선 길' 위에 섰다. 관료의 껍질을 벗고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자리다. 더 이상 일에만 코를 묻어선 안 된다. 일감은 관료들에게 나눠주고 중요한 결정을 하라고 국가가 봉급을 주는 자리다. 꽃길이 될 수도,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조건은 나쁘지 않다. 최규하는 신군부의 온갖 압력과 회유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지금 그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권력의 존재는 없다. 기껏해야 '검사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검찰이 있을까? 그 또한 그가 결정할 법안에 운명이 걸려 있다. '비상계엄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수사 의욕을 보이는 검찰을 주저앉힐 수 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15가지 혐의에 대해 특검이 진지하게 진행되면 국민적 신뢰도 회복할 수도 있다. 권한대행으로서의 업적과 평생 열망해 온 안정의 토대를 일거에 얻을 수 있다. "내란죄 수사가 광기"라고 우기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여전히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호처를 앞세워 수사기관의 합법적인 압수수색을 두 차례 저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잇따른 피의자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법원의 체포 영장을 발부받더라도 경호처와 대치가 불 보듯 뻔한 상황. 인사권 행사를 통해 국민적 불안의 싹을 잘라내는 것 역시 권한대행의 책무다. 국민에게 한 약속마저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가 증거인멸을 안 하겠나. 계엄 선포 보름이 되도록 국무회의록은커녕 메모쪽지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과 비화폰도 회수해야 한다.
권한대행이 하루빨리 경호처장을 경질, 경호처와 대통령실은 물론, 한남동 자택의 문을 법이 정한 한도 내에서라도 열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한다.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도 중요한 인사권 행사이다.
평생 관료의 관성에서 벗어나 '중력'에 몸을 맡길 시간이다. 국민이 바로 그 중력이다. 필요한 일만 하고, 곤란한 일을 외면하면, 신군부가 피 묻은 손으로 깔아준 꽃길을 노닐었던 최규하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니, 그만도 못한 길이다. 그 때와 달리 모든 군홧발이 병영에 복귀했으므로. 더 이상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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