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던 윤석열이 그 밑에 깔렸다. 거들던 김용현, 여인형은 이미 영어의 몸. '국민의 군대'를 동원해 국가를 도모하려던 이들이다. 부화수행(附和隨行), 줏대 없이 타인의 주장에 따라 행동한 이도 있지만, 막아선 이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부터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요구안 가결까지,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군상을 살펴본다.
"어제 제 부하가 가족과 식사하는 데 주민이 '반란군 자식들아, 꺼져라'며 욕을 해서 그 딸이 울면서 집에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 특전사는 절대 복종, 절대 충성의 마음으로 등에 화약을 매고 국가가 부여한 임무에 과감히 뛰어 들어가 순직하는 그런 집단입니다. 누군가 '불'의 위치를 잘못 갖다 놓았을 뿐 그들은 (그 속에) 뛰어들 준비가 된 전사들입니다. 반란군 오명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군 장성들 입맞춘 증언 속 '신선한 충격'
천편일률적인 변명이 아니었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쏟은 '검은 베레'의 눈물이 여운을 남겼다. 육군특수전사령부 1여단장(준장) 이상현. "부여받은 임무와 그 임무를 어떻게 수행했는지, 또 지금 생각은 어떤지 말해달라"는 특전사 출신 강선영 의원(국민의힘)의 질의에 답하던 중 울음을 삼켰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 떠날 때까지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
박안수 계엄사령관 이하 친위 쿠데타에 동원된 군 지휘관들은 국민에게 '2차 실망'을 주었다. "모른다, 아니다, 명령이었다, 송구하다"는 구조의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방첩사령관 여인형 등은 "계엄 선포를 TV를 보고 알았다"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내놓았다. 10일 특전사령관 곽종근이 "사실 1일 전해 들었다"고 양심고백함으로서 거짓의 일단이 드러났다. 모두 당일 안 것처럼 입을 맞췄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국회 발언이나 자유발언, 입장문에서 후렴처럼 덧붙인, "책임은 나에게 있고, 부하들은 죄가 없다"라는 말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이상현의 증언은 그런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임을 일깨워주었다. 한 지휘관의 회한을 전한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줌도 안 되는 '정치군인' 탓이라고 해도 국민적 악몽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1공수여단의 오욕의 역사와 분리된 문제도 아니다. 이상현뿐 아니다. 국회 출석한 수십 명의 군 장성들은 계엄 당시 군의 행동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일제히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비상계엄이 전광석화처럼 성공했더라도 침통했을까.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1공수 여단장 박희도는 득의양양해 했다.
박희도의 1공수, 이상현의 1공수
"안 되면 되게 하라! 사나이 태어나서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를 입에 달고 사는 특전사에서도 가장 먼저 생긴 부대이다. 별도의 '여단가'도 있다. 언제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죽겠다는 각오에서 군복을 '수의'로 여긴다던가. 그러나 박희도의 1공수는 그 각오로 국가를 전복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했고, 박희도는 그 공로로 육군참모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렸다. 구순이 된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등 극우 보수의 원로로 남아 있다. 그 1공수가 다시 쿠데타에 동원된 것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12.3 비상계엄은 영화 속 쿠데타를 일거에 끄집어냄으로써 '군과 정치'의 악연을 새삼 부각시켰다. '국민의 군대'가 언제든지 정치적인 목적에서 놀아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군의 본분에 관한 관심을 새삼 일깨운다. 비극은 군인은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맹신과 '국민의 군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군인복무기본법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제25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게 아니다. '직무와 관련된 명령'이어야 한다. 특전사의 직무에 "국회를 접수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건 없다. 군형법 제47조(명령 위반)는 '정당한 명령 또는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않은 경우에만 처벌 대상으로 한다. 군형법 제43조(출병 거부) 역시 출병 요구를 받고 '상당한 이유' 없이 응하지 않은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해놓았다. '직무상 명령' '정당한 명령' '상당한 이유'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장교 소양이 덜 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명령 복종' 과 '출병 거부' 조항에 각각 위헌, 위법적 반란일 경우 "거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넣을 필요가 있다. 직무와 관련이 없고,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성 대상이 무엇인가이다.
국군은 통수권자의 사병 아니다
군은 통수권자의 사병이 아니다. '국민의 군대'(군인복무기본법 제5조 1항)이고,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으로 국가와 국민(제20조)을 적시하고 있다. 국민‧영토‧주권을 아우르는 개념은 국가이고, 국가의 근간은 헌법이다. 결국 군은 사령관이나, 장관, 대통령이 아닌 헌법에 충성하는 것으로 밥을 버는 조직이다. 법규의 보완 필요성보다 중요한 건 빗나간 엘리트 의식이다. 12.3 쿠데타를 계획하고 실행한 주체는 서울 법대와 육사 출신의 결합이었다. 대통령 윤석열과 전 행안부 장관 이상민이 법조 엘리트 출신이고, 김용현 이하 주요 지휘관은 죄다 육사 출신이다.
일단 출세가도에 올라서면 맹목적으로 내달리는 속성이 있는 집단이다. 장군 진급을 위해 종종 가족까지 동원해야 하는 현실과 그 현실에서 승리한 별들의 민첩한 정치적 감각이 '부화수행'의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이상현이 박희도를 롤모델로 삼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박희도의 '후배 여단장'이 흘린 눈물이기에 더 심금을 울렸다. 국가를 위해 '수의'를 입은 특전사의 본분에 헌신해 온 진심이 전해졌다. 그러나 뒤늦게 본분을 돌아 보고, 가족과 부하의 마음을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은 감동이 제한적이다. 상황이 종료된 뒤 흘리는 '사후 눈물'이기 때문이다. 더 뜻깊은 눈물도 있다.
부하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상관에 맞서 장군 진급은커녕 푸른 옷에 실려 보낸 군 경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감수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눈물은 어떤가. 그 역시 부하를 위해 울었지만, 시점이 달랐다. 친위 쿠데타가 없었다면 국회는 지난주 채상병 순직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12.3 비상계엄이 군 장교들의 소양 교육과 출세 지상주의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국민이 군인의 충정에 더 깊은 신뢰를 갖게 된다면, 망외의 소득이겠다. 이상현의 눈물엔 깊은 메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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