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던 윤석열이 그 밑에 깔렸다. 거들던 김용현, 여인형은 이미 영어의 몸. '국민의 군대'를 동원해 국가를 도모하려던 이들이다. 부화수행(附和隨行), 줏대 없이 타인의 주장에 따라 행동한 이도 있지만, 막아선 이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부터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요구안 가결까지,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군상을 살펴본다.
군 경력이 단정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 정보사령관 노상원. (이하 노상원, 육사 41기, 예비역 소장) 현역 시절 군 내 갑질로 손가락질을 받더니, 급기야 777부대 사령관이던 2018년 국군의 날,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해임됐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영관급 장교 시절 이름(노용래)을 개명했다. '민간인' 노상원이 12.3 비상계엄 사태 속 조명을 받은 것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이 계엄사 포고령 1호의 작성자로 그를 지목하면서부터다. 진상조사단은 성명에서 그가 전 국방장관 김용현과 최근 하루에 1번씩 통화했으며, 내란 당일 새벽에 직접 만나 '2차 작전'을 공모했다는 의혹을 내놓았다. 전, 현직 북파공작원(HID)들을 주요 정치인 체포조 또는 암살조로 동원한 장본인으로도 지목됐다. 실제로 김용현은 4일 새벽 1시 30분쯤 노상원에게 전화를 걸었음이 확인됐다.
대통령 윤석열(이하 윤석열)은 '국민의 군대'를 사병으로 동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친위 쿠데타는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의 야합이었던 것. 김용현과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을 비롯한 공식라인에 관심이 집중되던 시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국수본 특수단)은 15일 정보사령관 문상호(이하 문상호)와 함께 그를 긴급 체포하고, 이틀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문상호는 검찰이 긴급체포를 승인하지 않는 바람에 풀려났다. 국수본은 왜 예비역 소장의 신병을 급히 확보하려 했을까. 포고령을 작성한 게 사실이라면, 그가 바로 '어둠 속의 괴벨스'였을까. 탐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민주당 진상조사단은 그가 계엄 이틀 전인 지난 1일, 문상호와 정보사 대령 2명과 함께 상록수역 인근에서 만나 "계엄이 곧 있을 테니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한 정황도 있다. '4인 회동'에 참가한 정보사 대령은 최근 경찰 조사에서 관련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노상원이 '선관위 서버 확보 관련 인원을 선발했느냐'고 묻자, 문상호가 "예"라고 대답했다. 예비역이 현역에 지시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뒤에 실세가 있었기 때문일 터. 육사 3기 선배인 김용현과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됐다는 민주당의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불온한 싹은 진즉 있었다.
'정보' 주특기의 평범한 육군 대령이었던 그에게 햇빛이 비친 건 박근혜 정부 대통령 초대 경호처장 박흥렬(육사 28기, 예비역 대장)의 간택을 받으면서부터다. 둘은 야전부대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박흥렬이 IT 전문요원이라는 이유로 경호처 '군사관리관'에 임명했고, 꿈에 그리던 별(준장)을 달았다. '인사' 주특기였던 경호처장의 장성급 인사 부당 개입 의혹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되레 별을 하나 더 달았다. 국방부 국방정보본부 예하의 통신 감청 부대인 777사령부 지휘관을 거쳐 정보사령관 자리를 꿰찼다. 계엄사령관 박안수가 3일 발표한 '계엄사 포고령 1호'는 의료인에 대한 처단을 운운한 제5항을 제외하곤 전혀 창의적이지 않았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에 앞서 발표한 계엄사 포고령 10호와 판박이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5항에서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에 대해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지 않을 시 처단한다'는 내용. 의료대란을 완력으로 수습하려던 윤석열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이 정도 문건을 작성하는 데 굳이 비선을 썼다면, 군 지휘부의 국어 실력을 무시한 거다. 군 안팎의 소식통들은 노상원의 역할을 더 넓게 볼 것을 당부한다.
12.3 비상계엄의 가장 큰 특징은 포고령 1호의 내용이 아니다. 쿠데타 역사상 처음으로 정보사를 동원했다는 점이다. 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가 작성한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계엄문건)에도 없던 내용이다. 기갑부대를 비롯한 중무장 전력 대신 경무장한 특수부대원을 투입, 속도전을 노렸다는 점도 이전과 다르다. 기무사 계엄문건은 계엄군 구성을 기계화 6개 사단과 기갑 2개 여단, 특전사 6개 여단을 가용 부대로 적시했다. 이번엔 기계화 및 기갑 사단을 제외하고, 특전사-수방사-방첩사만 동원, 속도전을 노렸다. 다른 한편으로 본래 시나리오에 없던 정보사를 등장시켰다. 67쪽에 달하는 기무사 계엄 대비 세부자료 어디에도 '정보사'는 없다. 바로 노상원의 깊숙한 개입이 의심되는 지점이다.
정보사 요원들은 특히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에 난입, 서버 접수를 기도했고, 체포조 또는 암살조로 전-현직 HID 대원을 출동시켰다. 노상원은 긴급체포되기 직전 S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보사를 선관위에 제일 먼저 투입한 건 계엄선포 뒤 예상되는 자료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군가) 선관위를 폭파하거나, 서버를 들고 뛰거나 증거를 없애거나 이럴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거기 가서 지키고 있으라고 했겠지"라며 남의 일처럼 말했다. 그러나 문상호가 지휘한 정보사 요원들은 서버를 지킨 게 아니다. 탈취하려 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노상원의 전화를 받았다는 정보사 정모 대령은 "예비역 장성 교육용 자료"라면서 "부정선거 주장 유튜브 영상을 정리해달라"는 그의 요청을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은 HID 동원이다.
한 군사 소식통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군 생활을 수십 년 한 이들도 정보사 자산인 HID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지 못한다. 방첩사 간부들도 HID를 본 적이 없을 거다"라고 단언했다. 정보사 출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HID 동원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으로 노상원을 지목한 것. "단순히 체포조가 아니라 암살조가 가동된다는 제보를 받았다"라는 방송인 김어준의 지난 13일 국회 과방위 증언에서 언급한 HID 요원의 존재는 이미 확인됐다. 문상호가 대기시킨 30여 명의 대원 중 현직은 6~7명에 불과했다. 전직 요원들의 활용 아이디어 역시 노상원을 비롯해 정보사 근무 경력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HID 요원들은 복무기간이 끝나도 곧바로 사회에 나가지 못한다.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돼 근무했기 때문에 자칫 '위험인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병기'로 혹독하게 훈련 받은 후유증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기도 한다. '전직들'은 일정 기간 조교 역할을 하거나, 비밀작전에 동원된다. 현역 군인이 아니기에 신분 세탁도 돼 있다. 온 국민이 확인한바 무슨 일도 벌일 수 있는 반란의 무리 중에서 바로 그 '무슨 일'을 맡기기에 적격이었을 터.
아무리 예비역 장성이라지만 민간인 노상원이 어떻게 현직 사령관에게 지시하는지 궁금할 법하다. 단순히 '김용현'이라는 배경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상원의 행실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똬리 틀고 있는 '군사문화'의 단면이다. 노상원처럼 상관의 눈에 들었든, 가족을 동원했든 일단 별을 단 이들은 평생 별자리 행세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우기며 종종 '불상사'에 관여하는 것. 현역에게는 "전역하면 도와주겠다"는 미끼를 내민다. 실제로 정모 대령은 노상원이 통화 중 전역 시기를 묻더니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음을 폭로했다. 노상원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퇴역 별자리들의 검은 내막은 따로 살필 필요가 있다.
노상원을 나치의 대중계몽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에 비유한 이유는 두 가지다. 포고령 작성자로 지목되는 데다가 4.13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극우 유튜버들의 세 치 혀에 놀아난 윤석열을 도와 '대중 계몽' 또는 '대국민 기만극'의 연출자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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