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죽음이 임박한 영국 병사는 '여왕폐하 만세'를 외치고, 일본 병사는 '천황폐하 만세'를,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는 '공산당 만세'를 외친다. 한국군은 누구 만세를 외쳐야 할까?"
1980년대 초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고3 아들에게 해병대 출신 선친이 던진 질문이다. 아버지와 형을 뒤이어 대한민국 해병대 군복을 입겠다고 나선 삼남매 막내가 한편으로 대견하고, 한편으로 물가에 내논 아이 같아 보였을 터. 선친은 까마득한 미래의 군 후배에게 군인의 본분을 설명하려고 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 아들은 팔각모를 쓰고 청춘을 보냈고, 국방부 고위직을 거쳐 이제 시민으로 돌아와 12.3 친위 쿠데타를 목도했다.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예비역 해병대 중령)이 지난 15일 발표한 세미나 발제문에 소개된 이야기다.
'12.3 계엄 내란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국방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을 주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방 현안 세미나(주최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실)였다. '안보적 관점'에서 발제를 맡은 여 전 실장은 △한국군의 통수체계는 쿠데타에 취약한가? △친위 쿠데타에 대한 항명은 가능한가? △12·3사태의 상처(PTSD)를 어떻게 치료할까? 라는 세 개의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발제문을 구성했다. 군인으로, 국방부 3인자로서의 내공과 시민의식이 결합한 과학적 분석이었다. 더불어 내란 수괴 윤석열의 체포 영장 거부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건이 발생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자리와 해병대의 인연, 선친의 가르침이 곁들여져 건조한 분석에 윤기를 더했다.
'윤석열의 난'을 접하며 선친의 질문이 새삼 떠오른 것은 대한민국 국군에 여전히 '국민의 군대'라는 정신이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 여현수 예비역 해병 준장(해병대 간부후보생 7기). 1931년 생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에 참전했고, 두 번의 군사쿠데타(5.16과 12.12)와 두 번의 친위 쿠데타(부산정치파동과 유신독재)를 겪었다. 선친이 30년 군 생활에서 얻은 정답은 이렇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인이 만세를 외쳐야 할 대상은 바로 헌법이다. 미군처럼 '헌법 수호'라는 명제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은 반복적으로 반헌법적 행위가 발생했던 거란다."
한국군은 창군 당시부터 미군을 벤치마킹했다. 무기체계와 군 조직은 물론, 계급장과 '우로 봐!' '편히 쉬어' 등 기본적인 제식훈련 용어도 영어를 직역했다. 그러나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신성시하는 '헌법 수호 임무'는 배우지 못했다. 제대로 된 헌법 교육도 없었다. 선친이 1986년 돌아가신 뒤에도 국군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45년 만에 계엄령이 눈 앞에 펼쳐진 근본적인 이유다.
'헌법 수호의 주역으로서의 국군'은 여전히 생소하다. 군인정신이나 군대문화 교육에도 헌법은 없었다. 해바라기처럼 군통수권자만을 바라본 군인들이 진급과 성공의 꽃길을 걸었던 역사였다.
12·3 이후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온 쿠데타 수뇌부들은 여전히 당당하다. 눈을 크게 뜨고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대거리한다. 그 무지와 오만의 바탕에는 헌법정신의 실종이 있었다.
국군의 통수 체계에는 친위 쿠데타(self-coup d'etat)를 방지할 수단이 없다. 현행 군령/군정 체계를 벗어난 조직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쿠데타에 동원된 방첩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정보사령부가 그렇다. 그가 지휘체계와 편성, 운용 등 다각적인 개편 및 개선을 제안하는 이유다.
법령상의 허점도 노출됐다. 명령 복종의 의무는 명확하지만, 불복종 권리는 희미하기 때문이다. 차제에 정당하지 않은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명확한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헌법에 반하는 명령은 대표적으로 불복종해야 할 명령이다.
12.3 계엄군을 '사전 모의 집단'과 '단순 동원 집단'으로 구분한 여 전 실장은 충남파를 비롯한 전자는 아예 항명 의사조차 없었을 것이지만 후자는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의 원칙이 있었다면 반란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해병대 포항 상륙기습 대대장을 지낸 그는 시민으로 불면증을 호소하지만, 군이 입은 내상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우리 군은 '불안증의 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한 그는 "이 증상이 사라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불안증의 PTSD'는 고삐에 매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군대(縻軍), 의혹에 빠진 군대(惑軍), 의심에 빠진 군대(疑軍)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국군이 상처를 딛고 '외상 후 성장(PTG)'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12.12 군사쿠데타에 이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남동 관저 자리는 원래 '해병의 땅'이었다.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 전투를 기억하는 국민 성금으로 지은 해병대사령관의 첫 공관이 있던 자리. 한남동 뒷산이 '해병대 산'으로 불렸던 연유다. 선친이 해병대 군복을 입고 결혼식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 인연으로 형(여승주 예비역 해병 대령·해사 38기)과 본인이 해병대 군복을 입었다. 3부자의 해병 복무 기간은 90년에 가깝다. 첨부한 발제문의 일독을 권한다.
<첨부>
12.3사태에 대한 안보적 관점
- 통수체계의 취약점과 개선 대책을 중심으로 -
余奭周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전 국방부 정책실장 여석주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12.3사태에 대한 안보적 관점으로 국군 통수체계의 취약점과 개선 대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렇듯이 저 또한 지난 12월 3일의 밤을 분노, 비통, 흥분으로 지새웠습니다. 헌법 준수를 선서했던 대통령의 헌법 파괴와 국민 보호를 맹세했던 장군들의 국민 위협에 분노했습니다. 국군의 최정예 부대가 불법적 명령에 동원되고 허둥거리다 못해 조리돌림을 당하는 모습에 비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각오로 국회의 담을 넘고 서로 어깨를 걸고 저항하며 기어코 계엄해제 의결의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리는 국회의 용기에 흥분했습니다. 군복을 입었던 개인으로서 국회의원 및 직원 여러분께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2월 3일 밤의 분노, 비통, 흥분이 가시지 않다 보니 행여 발제 중에 감정이 격해질까 두려워 원고대로 읽기만 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론에 앞서, 오늘 해병대 전우분들도 많이 참석해 주셨는데 한남동 관저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밤, 당시 전두환의 반란군에 맞서 해병대 공관경비대가 끝까지 저항했던 그곳 한남동 땅은 원래 해병대 소유였습니다. 6.25 전쟁 후반, 장단 사천강 일대를 방어하던 해병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병대 직할부대가 배치되었던 곳이고,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 전투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모금으로 해병대사령관의 첫 공관을 지었던 자리입니다. 그래서 한때 한남동 뒷산을 해병대산이라 불렀었습니다. 그 해에 해병대 대위였던 저의 선친이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고, 그 인연으로 선친, 친형, 저 세 사람이 해병대 군복을 입고 보낸 햇수가 도합 90년에 가깝습니다. 해병대의 역사와 피눈물이 어우러진 한남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혼돈과 추태에 전우분들 모두 분노와 비통을 누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12.3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 번째 주제로 2024년 12월 3일 밤에 일어나 지금까지 진행 중인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2.3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불법 비상계엄, 내란, 반란, 외환, 친위 쿠데타, 이렇게 다섯 단어가 각종 언론 및 유튜브를 통해 끝도 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다섯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12.3사태의 흐름을 빠짐없이 짚어 나가면서
후속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동시에, 향후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수립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12.3사태는 헌법을 위반한 불법 비상계엄입니다. 우리 헌법은 국가비상사태에 긴급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계엄선포 권한을 부여하였으나, 2024년 12월 3일의 대한민국은 전시도 사변도 아니었고 그에 준하는 이변도 없었기에 당일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을 위반한 행위이며, 이러한 위헌 행위에 대한 심판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소추 인용으로 귀결될 것이라 예측됩니다.
12.3사태는 형법을 위반한 내란의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형법은 국가권력 배제 또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내란이라 정의하고 있으며, 12월 3일 국회에 진입한 군경은 국헌을 문란하게 하였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한 군경은 국가 권력 배제를 목적으로 하였기에 내란의 죄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12.3사태는 군 형법을 위반한 반란의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군 형법에 반란의 명확한 정의는 없으나, 관련 대법원 판례에서 반란이란 다수의 군인이 넓은 의미에서의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국권에 반항하는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에, 12월 3일 국회와 선관위에 진입한 군 병력은 작당하여 무기를 휴대하였기에 반란의 죄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일반 형법 대비 군 형법은 처벌이 20% 수준 가중되어 단순 관여자에 대해서도 7년의 징역 처벌이 가능하기에 반란죄로 의율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12.3사태는 형법을 위반한 외환의 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외환의 죄는 사례 자체가 매우 드물고 적용 요건이 매우 까다로운데, 일례로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인사가 북측과 통모하여 휴전선에서 총을 쏴달라 요청했던 총풍 사건 조차도 외환의 죄로 의율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의 죄는 외환유치, 여적, 모병이적, 시설제공이적, 시설파괴이적, 물건제공이적, 간첩, 일반이적 등 범위가 워낙 넓어서 비상계엄 선포의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불법적 행위를 했다면 외환의 죄로 의율될 가능성이 있고, 그러할 경우 지금까지는 주로 제복 입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지만 앞으로는 다른 신분의 피의자들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12.3사태는 실패한 친위 쿠데타(self-coup)로 기록될 것입니다. 쿠데타(coup ďÉtat)는 일반적으로 군사 조직이나 정부 엘리트가 현직 지도부를 축출하려는 시도를 말하지만, 친위 쿠데타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집권한 정치 지도자가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으로 스스로 벌이는 쿠데타로 일명 “위로부터의 쿠데타(영어: coup from the top)”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지난 8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148건의 친위 쿠데타 시도가 발생했으며, 실패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친위 쿠데타는 성공 확률이 높았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부산 계엄 파동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유신 선포 등 2건의 친위 쿠데타 사례가 있었으며 모두 성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보적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판단해 보면, 12.3사태는 장기간에 걸쳐 구상되고 준비된 친위쿠데타로 작전 단계를 여건조성 작전과 결정적 작전으로 구분하되, 여건조성 작전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내고, 결정적 작전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헌법 기관 점령을 계획하였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친위 쿠데타라는 것이 실패하기가 참 어려운 것임에도 12월 3일의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수면 위보다는 수면 밑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수권자가 일명 비상대권이라는 비상계엄 선포를 자주 언급했다는 언론 기사로 추론해 본다면, 용산의 안보 라인에서는 ‘21세기에 말도 되지 않는 비상계엄’을 ‘말이 되는 계엄’으로 만들기 위해 헌법에 명시된 비상계엄 선포 조건을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 애를 썼던 흔적이 보입니다. 우리가 12월 3일 밤에 목격했던 부대들의 현장 동원은 해수면 위로 몸체를 드러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수면 밑에서는 계엄 여건 조성을 위해 평양 무인기 의혹, 서해 NLL K-9 사격, 동해 NLL 천무 사격, 우크라이나 파병 등으로 가장한 여러 시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하반기까지도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만큼의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자, 정보사 자산들까지 동원되어 ‘계엄여건 조성’을 넘어 ‘계엄여건 조작’을 시도한 것이 아닐까 의심됩니다. 아울러 이러한 계엄여건 조작행위조차도 계엄 해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단시간에 이루어지자 시도조차 못하고 종료되었을 것입니다.
한국군의 통수체계는 쿠데타에 취약한가?
한국군의 통수체계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국군통수권자로 하면서 군령과 군정체계로 분리하여 구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은 국방부장관을 경유하여 군령과 군정으로 구분 시행되며, 군령권은 합동참모의장을 통하여, 군정권은 각군 참모총장을 통하여 시행되는 체계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한국군 통수체계는 1994년 12월 1일 한국군 부대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됨에 따라 합참의
권한 및 조직 강화를 목적으로 개편된 체제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을 통수권체계의 정점에 두고 국방부장관의 신분을 민간인으로 제한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선출된 권력에 의한 문민통제’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이 국방부장관을 경유하면서, 군령 사항은 합참의장에게, 군정 사항은 각 군의 총장에게 하달되지만 실제 시행할 작전/기능부대에서는 하나로 합쳐지는 분리 체계가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현대 전장의 특징인 지·해·공 작전공간의 중첩 및 합동작전의 필요성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방 선진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체계로, 우리도 1990년대 한국군 평시작전권 환수와 함께 현재의 통수권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체계의 원래 목적은 아니었지만 군사 쿠데타 방지 측면에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이외에는 누구도 군령/군정 양대 계선을 장악할 수 없기에 불법적 병력 동원 및 군사행동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아울러 통수권체계 내에 구축된 촘촘한 정보화 시스템으로 쿠데타 성공의 필수 조건인 사전 비밀 유지가 거의 불가능하고, 특히 병영 내 개인 모두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 형태의 군사 쿠데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이 스스로 도모하는 친위쿠데타를 방지할 명시적인 수단이 국방부나 군 내부에는 없습니다. 특히 현행 군령/군정 체계를 벗어나 있는 조직들은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국방부장관이 직접 지휘하는 소위 국직부대들이 각각의 사유로 증가하였고, 여기에 더하여 국군통수권 체계의 범위 밖에서 운용되는 부대들의 문제점도 계속 지적되어 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직부대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으나, 집권 초기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완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역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내재한 부대들이 더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부대들은 국군통수권 체계의 정상적 운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기존의 군령 계선에 의한 합참의장의 통제와 군정 계선에 의한 총장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부대들이 친위 쿠데타 기도 세력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도구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2.3 친위쿠데타에 동원되었던 방첩사, 특전사, 수방사, 정보사는 각각의 이유로 국군통수권 체계 밖에서 운용되었던 부대입니다. 이 부대들의 공통점은 법령으로 제정된 각 부대의 임무와 역할보다는 소위 ‘통수권 수호’를 자신의 정체성인 양 오해하고 심지어 통수권자의 주변이 이러한 오해를 더욱 부추기면서, 반헌법적 행위에 이용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부가 저질렀던 실수로, 마치 양떼를 지키라고 우리 안에 늑대를 불러들였다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인랑입실(引狼入室)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친위쿠데타를 포함한 유사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 국군통수권 체계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이러한 부대에 대한 지휘체계, 편성, 운용 등 다각적인 개편 및 개선 조치가 필요합니다.
친위 쿠데타에 대한 항명은 가능한가?
12.3사태를 바라보는 대부분 언론에서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 군대에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 배우가 연기한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은 장군이 왜 단 한 명도 없었느냐?”라고 질타했습니다. 당연한 질타이고 또 이 질타에 답을 찾아가는 노력도 당연히 필요한데, 이를 위해 12월 3일 밤에 동원된 병력을 ‘사전모의 집단’과 ‘단순동원 집단’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모의 집단’에서는 애당초 사적 이익공동체로 모아졌기에 항명이 가능한 인물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통수권자와 사전 충분한 교감과 장밋빛 미래까지 공유했을 것이니, 이 집단에서는 ‘12월 3일 밤의 정우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단순동원 집단’에서는 자신에게 하달된 동원 명령이 정상적인 통수권체계를 통하여 하달되었기 때문에 정상적 체계를 경유한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고 추측됩니다. 실제적으로 12월 3일 밤 병력의 움직임이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에 정상 입력되었고 실시간에 KJCCS 모니터에서 확인되는 상황에서 자신만이 명령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출동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 집단에서 명령의 불법성을 인지 가능했던 시점은 임무 지역에 도착한 이후였을 것이고, 그 현장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대치의 항명은 임무의 해태(懈怠)였으며 그 현장을 우리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12월 3일 밤에 직접 출동하지 않았던 부대들의 지휘관들은 T.V를 통해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접했을 때에 항명심보다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을 것이고, 명백하게 위헌 조항이 포함된 계엄사령관의 포고문을 받았을 때에야 수명이냐 항명이냐를 고민할 수 있었겠지만, 이를 결심하기도 전에 계엄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12월 3일 밤의 정우성’을 해볼 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관련 법령에 군인의 명령 복종 의무는 명확하지만 불법 명령에 대한 불복종 권리는 희미하다는 지적에는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5조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며 ‘명령 복종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고, 제24조는 “군인은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 및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반하는 사항 또는 자신의 권한 밖의 사항에 관해 명령을 발하여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군인이 정당하지 않은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이러한 규정을 법령에 삽입하지 않은 것은 선하지 않은 의지가 이 조항을 악용함으로써 군의 명령체계에 가져올 혼선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불법한 명령을 거부할 기준을 분명하게 세우되 그 기준은 헌법 정신이어야 하고, 부당한 명령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한 조직 문화를 만들되 그 기준은 헌법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과 헌법에 관한 부분은 결론에서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2.3사태의 상처(PTSD)를 어떻게 치료할까?
지난 몇년 동안 나라 곳곳에 정신적 충격을 주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다 보니 탄핵 트라우마, 계엄 트라우마 등등,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여러 언론에서 또 개개인 사이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외상(外傷)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우리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트라우마’는 외상으로 인해 사후에 발생하는 스트레스(PTS) 또는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PTSD)라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쿠데타의 어원이 ‘국가에 대한 타격’이듯이 12.3사태는 우리 국가와 국민에게 가해진 커다란 타격이고, 그 외상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가 불면증과 불안증이라는 장애를 만들고 있습니다. 12.3사태 이후 자다가 몇 번을 깨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불면증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불면증의 PTSD’에 시달리듯이, 우리 군은 ‘불안증의 PTSD’에 시달리고 있고 이 증상이 사라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2,500년 전 손자는 군주(통수권자)의 잘못으로 군대가 시달리게 될 ‘불안증의 PTSD’로 첫째, 縻軍(미군, 고삐에 매인 듯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군대), 둘째, 惑軍(혹군, 의혹에 빠진 군대), 셋째, 疑軍(의군, 의심에 빠진 군대)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이 ‘불안증의 PTSD’는 12.3사태의 후속 처리 과정에서 자신이 따르던 상관과 같이 땀흘렸던 동료가 구속되고 처벌받는 모습을 보며 더욱 증폭될 것이고, 결국 ‘의사결정 장애 군대’라는 고질병에 빠질 위험성을 매우 높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와 장비로 무장된 군대일지라도 이 고질병에 빠져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못하게 된다면 그 후과는 상상 이상으로 비참할 것입니다.
하지만 외상에 의한 PTSD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정신적인 성장을 보이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도 가능하기에, 12.3사태가 우리 한국군에 남긴 상처를 잘 치료하여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외상 후 성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국군의 PTSD를 치료하기 위해 다른 발제자나 토론자들께서 좋은 방안을 많이 제시해 주실 것인데, 저는 헌법을 중심으로 하는 치료 방안을 말씀드리고 싶고 이를 위해 저의 개인사를 먼저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1981년 제가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고3 시절, 직업 군인의 길을 걷겠다는 저에게 제 선친은 “전쟁터에서 죽음에 임박한 영국 병사는 여왕폐하 만세를 외치고, 일본 병사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중국 병사는 공산당 만세를 외치는데, 한국군 병사는 누구 만세를 외쳐야 할까? 민주제 국가의 군인이 만세를 외쳐야 할 대상은 그 나라의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 만세!” 제 선친은 1931년 생으로 해병대 장교로 두 번의 전쟁에 참전했고, 두 번의 군사 쿠데타와 두 번의 친위 쿠데타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겪은 30년의 군대 생활 속에서 ‘군대의 최우선 임무는 헌법 수호’라는 명제가 한국군에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반복적인 반헌법적 행위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이후 미군의 모든 것을 벤치마킹하려던 한국군에게 눈부신 외형적 성장은 이루어졌지만, 유독 미군들이 그토록 가장 강조하는 ‘헌법 수호 임무’와 ‘헌법 교육’만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확실하게 연구되거나 발표된 적은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소위 후불제 민주주의의 한국 사회 자체가 헌법적 가치와 의미에 그다지 각별하지 않았었고, 더욱이 근래까지 군 주요 직위를 군사쿠데타 성공의 직·간접적 수혜자가 상당수 차지하다 보니 ‘헌법수호자로서의 국군’을 명제로 삼기가 꺼려졌을 것이고, 군인정신이나 군대문화 교육에서도 헌법 얘기에는 애써 눈감았던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군의 사고와 문화에 헌법 수호가 우리의 최우선 사명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질 수 없었고 아울러 헌법의 존재 자체가 여전히 희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제(Democracy) 국가입니다. 10,000년 전 이 지구에 국가라는 체제가 등장한 이후 거의 모든 국가가 군주제(Autocracy)였었고, 민주제 국가는 미국 독립선언(1774년)이나 프랑스대혁명(1789년) 이후에야 출현했습니다. 세계의 민주제 역사가 비록 250년에 불과하지만, 21세기 지구촌 대부분 국가가 민주제 국가를 채택하는 이유는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번영에 유리한 제도라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고 민주제의 우월함이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선진 민주제(Democracy) 국가에서는 과거 군주제(Atocracy) 시절 집권자에 맞서서 국민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헌법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자신이 스스로 민주제를 세운 것에 한없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땅에서 민주제 유지의 근간인 헌법이 효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를 방해하는 내·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헌법 수호 임무’를 그 나라 국군의 최우선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군주제에 대항하여 쟁취한 ‘민주제’와 ‘헌법’의 역사가 없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게는 ‘산업화 성공’과 독재에 맞서 쟁취한 ‘민주화 성공’의 역사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 바탕에는 국권 회복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의병, 독립군, 광복군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군 해산에 대항한 남대문전투로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국군 창설의 모체로 이어진 애국선열들의 역사는, 너무도 늦었지만 2018년 대한민국 국방사(國防史)에 정식으로 편입되어 이제 우리 국군의 DNA로 우리 군인들의 혈관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찾은 국권과 다시 세운 헌법이야 말로 우리 국군이 최우선적으로 수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아울러 오늘 세미나에 참석하여 주신 광복군 유족회와 홍범도 기념사업회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너무 늦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12.3사태의 여파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의사결정 장애 군대’라는 후유증에 빠진 우리 국군이 빠른 시간에 회복하려면, 더 중한 질병에 시달렸었던 과거의 역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앞서간 분들로부터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민주제’의 소중함을 깨닫고, 어떻게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할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아울러 조직의 새로운 의사결정 과정에서 헌법 정신과의 부합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헌법 중심의 한국군 의사결정 체계’가 정착되어야 또 다른 반헌법적 시도에 당당히 맞서는 국민의 군대가 될 수 있다고 호소드리며 발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경청에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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