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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사1] '잊힌 그들'이 되찾은 미국은 이제 황금시대?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1. 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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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워싱턴 연방의사당 로툰다홀에서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취임 연설은 낮은 어조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8년 전 '어쩌다 대통령'의 다소 흥분한 어투의 취임연설과 사뭇 달라졌다. 댓바람에 '미국의 황금시대'를 선언, 자신감을 내보였다. 1기와 2기 취임사를 겹쳐 읽으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당선시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우파 민중이 국가의 주류로 등장했다는 인식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기성 제도의 엘리트들에 대한 막연한 증오가 사라지고 여유가 넘쳤다. 향후 4년 미국과 세계에 몰고 올 변화의 단서를 파악하기 좋은 텍스트다. 취임사에서 드러난 8대 포인트와 행정명령 등을 통해 드러난 초기 행동을 짚어본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1월 20일 워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 중앙홀(로툰다)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2025.1.20. 로이터 연합뉴스

연방정부 '상식의 혁명'

트럼프가 강조하는 MAGA는 힘과 부, 자부심, 안전 등 4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이번에도 취임사의 열쇠 말로 등장했다. 지구상 최강의 군사력을 구축하고, 미국을 가장 부유한 나라로 돌려놓으며, 국민적 자부심을 높이겠다고 다짐했다.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안전' 부분에서 국경 안보와 국내 치안을 깨뜨리는 불법이민자 근절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달라진 것은 관점이다. 과거 아웃사이더의 관점에서 기성 제도를 대했다면, 이제 통치자의 관점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1기 연설은 "너무도 오랫동안 워싱턴의 작은 그룹이 정부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국민에 비용을 부담시켰다"면서 엘리트층과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포문을 열었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번영하지만, 국민(The People)은 제 몫의 부를 공유하지 못했기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것. 우파 포퓰리즘 정치인의 전형적인 외침이었다.

기성 제도의 일부인 연방정부는 증오의 대상에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청렴하고, 능력 있으며,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정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 로스앤젤레스를 덮친 자연재해 속에서 무력함을 내보인 정부를 뜯어고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의 완전한 복원'과 '상식의 혁명'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말한 '상식'이 무엇인지는 향후 전개되는 정부효율부(DOGE)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수장으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의 역할이 분명치 않은 가운데 연방정부 공무원을 관리하는 인사관리국(OPM)은 20일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정책 담당 공무원들에게 전원 유급 강제 휴직 발령을 내고, 연방정부 기관들에 신규 채용을 21일부터 전면 중단토록 지시했다. 사회통합 부문과 연방환경청(EPA) 등 트럼프 아젠다에 역행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기관이 타격받을 것으로 보인다. '상식'의 잣대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23일 미국 텍사스주 퀘마도에 설치되고 있는 국경장벽. 취임 첫 날 멕시코 국경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경 안보'를 최우선순위로 꼽았다. 2025.1.23. AFP 연합뉴스

'잊힌 그들'이 사라졌다.

트럼프는 1기 취임사에서 '제도'에 대한 공격과 함께 "미국의 잊힌 남성과 여성(the Forgotten Men and Women of America)이 더 이상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공화당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2024 정강'은 제목 바로 밑에 '미국의 잊힌 남성과 여성에게 헌정함'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번 취임사에서는 아예 '잊힌 그들'이 사라졌다. 대신 '지상에서 가장 특출난 시민들'로 격상됐다. "2017년 1월 20일은 국민이 다시 국가의 지배자가 된 날"이었다면 2025년 1월 20일은 '해방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1기 때는 '잊힌 그들'이 도심에서 가난의 덫에 걸린 엄마와 아이들, 산업 황폐화 지역(rust-belt) 주민들의 피해를 '대학살(carnage)'이라고 표현했던 1기 취임사와 뉘앙스가 확연히 다르다. 잊힌 그들이 더 이상 수세에 몰리지 않고 있음을, 그를 지지한 MAGA 민중(애국자)이 실질적인 주류로 등장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대선 기간 내내 "나는 여러분의 목소리(I'm your voice)"를 강조하며 이해와 공감을 넓힌 결과, 암살 시도에서도 살아나 대선에 승리했기에 이제 여러분의 나라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현실이 됐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트럼프는 이날 행정명령으로 1500여 명에 달하는 2021년 1·6 의사당 폭동 가담자들을 사면했다. 취임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SNS 등에 대한) 정부 검열의 백지화를 다짐했다. 피해자로 설정했던 MAGA 민중의 의사표현을 더 자유롭게 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소년들(Proud Boys)과 '서약 이행자들(Oath keeper)' 등 극우 단체의 지도부가 트럼프 2기에서도 맹활약을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는 더 이상 특정 지지층에 의존하는 아웃사이더가 아닌, 광범위한 지지를 업은 인사이더로 귀환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극우 지지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의 활동가가 21일 워싱턴 변두리의 중앙구금시설 앞에서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폭동 혐의로 수감됐다가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는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복면을 쓴 채 시거를 물고 있는 모습이 트럼프 시대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2025.1.21. AFP 연합뉴스

낯선 '국민통합'의 메시지

1기 취임사에 전혀 언급하지 않은 대목은 국민통합의 메시지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인우월주의와 무슬림 혐오 등 인종주의 갈등이 고조됐던 것을 돌아보면 생소하다. 트럼프는 "인종에 상관없는 능력 기반의 사회를 만들 것"이라면서 인종과 젠더를 모든 공적, 사적 생활에서 (기준으로) 설계하려는 정부 정책은 이번 주 중 종식된다"고 말했다. 1기 때는 취임 첫날 무슬림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발표했지만, 이번엔 인종에 상관없이 '불법이민자들'을 추방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트럼프는 '성난 백인 남성(angry white men)'을 디딤돌로 삼아 간신히 대선에서 승리한 1기 행정부에서 백인 우월주의와 여성 혐오, 반 무슬림 정서에 편승했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45세 이하 흑인 남성의 30%가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이는 2020대선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전체 히스패닉 유권자의 45%도 표를 던졌다. '성난 백인'뿐 아니라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도 조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열악해진 민생경제 현실에 분노했던 것. 그는 흑인과 히스패닉 공동체가 투표로 보여준 굉장한 사랑과 신뢰에 감사했다. 나아가 오늘이 바로 '마틴 루터 킹의 날'이라면서 "우리는 그의 꿈이 이뤄지게 할 것"이라며 '국민통합'을 거듭 강조했다. 인종, 종교, 피부색 및 신념을 막론하고 '애국자들의 행정부'가 될 것을 다짐했다.

젠더 감수성은 여전했다. "남성과 여성의 두 개의 젠더만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고 못박아 성적 소수자(LGBT)를 유령인간으로 취급할 것을 예고했다. 1기 때처럼 노골적인 여성 혐오를 드러낼지 두고볼 일이다.

관세, '근린궁핍화정책'의 심화

트럼프 2기가 자유무역에 제기하는 가장 큰 위협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극찬해 온 관세정책이다. 외국의 원천으로부터 일반 관세(tariff)와 수입세 등의 포괄 관세(duties), 수입 등을 징수하는 대외수입청(ERS, External Revenue Services)의 창설을 발표했다.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중국 제품에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상세한 조처 발표는 뒤로 미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큰 경제적, 사회적 타격을 입고 있는 나라는 인접국이다. 21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한 남자가 달러화 대 멕시코 페소화의 환율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협정국인 멕시코와 캐나다 상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불법이민자들과 마약 거래자들의 미국 입국을 막지 못했다는 징벌적 성격을 더했다. 2025.1.21. AFP 연합뉴스

국내 물가인상과 세계 차원의 교역량 감소를 일으킬 관세의 부작용은 적어도 막 취임한 트럼프의 안중에 없다. 관세정책 자체가 비상식적인 것처럼 타국의 부담을 늘려 미국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비상식적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리적인 경제이론은 최소한 달러화와 군사력이라는 트럼프의 정책수단을 덜 고려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기존 게임의 규칙에 따르는 대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관세를 철폐하고 교역을 증진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인정할 시점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관세이건, 방위비 분담금이건 현찰 다발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원초적인 방식을 동원했다. 1기와 2기 행정부 사이에 '에피소드'처럼 존재했던 바이든 행정부는 주변국의 돈을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파이프라인을 깔았다. 칩(Chip)4를 결성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을 제정해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공장 등을 미국으로 유치한 것. 트럼프는 바이든이 고안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 위에 추가 부담(관세)을 얹을 기세다. '근린궁핍화정책'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1기-바이든-트럼프 2기는 초록 동색이다. "세계는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라"는 게 일관된 메시지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과 미래의 대만전쟁을 십분 활용한 바이든과 달리 전쟁하지 않고 돈 버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임기 중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의 2기 취임사는 통상 1기 때 내놓았던 아젠다의 성과를 중간평가하고, 심화하겠다는 다짐으로 구성된다. 트럼프 2기 취임 연설에는 1기의 평가가 없다. 코로나19의 대유행 탓에 2020년 대선에서 패배, 바이든의 4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기 취임사는 아메리칸 퍼스트와 MAGA라는 같은 테마의 변주곡이었다. 그 4년 동안 미국도, 세계도 변했다. 암살 위기를 모면한 트럼프도 변했다. 트럼프 2기가 1기의 연장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설정(resetting)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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