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크라이나 자원-원전 '소유' 노리는 트럼프의 '국가자본주의'

본문

'아메리칸 오너십(American Ownership) 시대'인가? 도널드 트럼프 시대, 안보와 경제를 연계해 경제적 이익과 지정학적 영향력의 일석이조를 취하는 방식이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본다. 전통적 안보는 강대국 간에만 논의할 문제. 비강대국에는 안보 공약 대신 "미국과의 장기적 비즈니스 거래가 안보 보장"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우크라 종전 협상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트럼프식 '거래주의 외교'의 패턴이자 귀결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과거 통화 모습을 합성한 사진이다. 두 대통령은 18일 통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과 미러 관계 정상화, 국제 안보 이슈 등을 논의했다. 2025.3.18. AFP 연합뉴스

희토류는 '마중물'

아메리칸 오너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뒤 다시 등장했다. 우크라 종전을 위해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잇달아 가진 통화였다.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우크라 에너지 인프라(또는 에너지와 인프라)에 국한된 부분 휴전에 합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에너지 인프라의 안전 보장을 위해 원전을 미국이 소유, 관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미 국무부는 19일 정상 간 통화 언론성명에서 "미국이 원전들을 소유하는 게 우크라 인프라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미-우크라 간 '재건투자펀드' 합의의 핵심 역시 미국과의 장기적 비지니스 관계가 우크라 안전 보장 방안이라는 논리였다. 우크라이나 광물자원과 항만에서 원전까지 "미국이 소유해야 세상이 편해진다"는 논리다.

젤렌스키는 이날 줌 기자회견에서 유럽 최대 원전으로 러시아군 점령지 안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NPP)으로 제한했다. 미국은 '복수의 발전소'를 언급하고 있다. 부분 휴전 대상을 두고 에너지 인프라(크렘린궁)인지, 에너지와 인프라(백악관)인지 분명치 않듯이 미국이 소유하겠다는 발전소가 단수인지 복수인지는 향후 이어질 '기술적인 협의' 과정에서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 이슈 협의에 함정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4.10.17 연합뉴스

경제-안보의 연계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것은 트럼프가 취임 뒤 일관된 거래 방식이다. "미국 안보에 중요하다"라면서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및 캐나다의 51번째 주 편입 발언을 이어갔다. 출발점은 중요하지 않다. 트럼프는 댓바람에 "미국이 지난 3년간 우크라에 제공한 군사, 재정, 인도적 지원 3500억 달러(실제 1100억 달러)의 대가로 희토류 개발 이익 5000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일종의 마중물이었다. '희토류'는 어느 순간 '광물협정'으로 바뀌었고 '재건투자펀드 협정'으로 귀결됐다.

트럼프의 말에만 초점을 두면 허방에 빠지기 십상이다. 각국 언론은 희토류와 코발트, 흑연 등 우크라의 자원 현황과 관련한 팩트체크를 하고 개발 가능성을 분석해야 했다. 그러나 2월 말 미국과 우크라 언론이 전한 재건투자펀드 협정 초안에는 '희토류'도 '5000억 달러'도 없었다. 미국과 우크라 정부가 지분을 절반씩 소유하며, 신규 자원 개발과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과 항만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수익 역시 절반씩 갖기로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게 미국의 설명 논리다. 우크라 재건에 도움이 되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지속적인 안보 보장이 된다는 것.

희토류→광물협정→재건투자펀드 협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각국 언론과 세계가 겪은 시행착오다. 트럼프가 처음부터 재건투자펀드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결론이 아메리칸 오너십이라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재건투자펀드 협정 초안의 주체가 각각 미국과 우크라 정부인 것도 유념할 대목이다. 미국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경제적 이익 구현의 주체로 기업을 내세웠다. 미국은 국부펀드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국가 자본주의'의 단서가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2월 3일 국부펀드 설립을 명령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경제와 안보의 연결고리는 다른 나라와 다른 현안에도 적용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참호전과 포격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핵강국 러시아가 참전하고 있어 확전 가능성이 상존한다.  러시아군 점령지에 있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전경. 2023.3.3  타스 연합뉴스

양자택일 아닌 일거양득

취임 초 캐나다와 멕시코에 댓바람에 관세 20%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가 한 달간 유예한 게 대표적인 사례. 트럼프는 관세 부과를 조직범죄 및 펜타닐 반입 묵과 등 국경 안보 문제와 연계했다가 캐나다와 멕시코가 국경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자, 적용을 한 달간 유예했다. 유예기간이 지나자 관세 부과를 감행했다. 맞불 관세 부과로 맞서는 캐나다, 멕시코와 달리 우크라는 대응할 수단이 궁하다. 지난달 28일 '백악관 격론'처럼 미국의 접근 방식에 저항하면 자칫 모든 걸 잃게 된다.

미국은 대우크라 무기지원과 정보공유를 한시적으로 중단했었다. 캐나다와 멕시코 관세 역시 트럼프가 원하는 수준까지 국경 안보가 확보되지 않으면 계속 부과된다. 애당초 경제와 안보 중 한 가지가 충족되면 다른 걸 포기하려던 게 아니라, 둘 다 취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셈법.

'관련 이슈'와의 연계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있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취임 초에도 중국에 대한 관세 보복을 거듭 위협했지만, 당시 가장 급박한 외교안보 이슈였던 북핵 문제가 악화되자 중국의 역할을 종용하며 관세 전쟁을 미뤘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전후해 미뤄두었던 관세 전쟁에 나섰다. 지금은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렸을 뿐이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다루는 방식도 비슷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 먹혔다. 취임 나흘 만에 미국-덴마크-그린란드 3자 간 안보문제 협의체를 만들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문제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난 2월 2일 방문한 뒤 가르마를 탔다. 루비오 장관이 "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압박하자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중국계 기업의 항만운영권 조절과 함께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협정 탈퇴를 다짐했다. 

취임 뒤 첫 방문국으로 파나마를 찾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2일 리카우르테 바스케스 파나마 운하 행정관과 함께 운하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5.2.2. 로이터 연합뉴스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초기 성과

그로부터 한 달 뒤 파나마 운하 양쪽 입구에 위치한 발보아항과 크리스토발항의 운영권이 미국 자산운용사로 넘어갔다. 두 항만 운영권을 갖고 있던 '파나마 포트 컴퍼니(PPC)'의 소유주인 홍콩 재벌 리카싱의 청쿵그룹은 지난 4일 PPC 지분의 90%를 미국 블랙록(BlackRok) 컨소시엄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그린란드 3자 협의체는 몇 차례 통화로 간단히 성사시켰다.

통화 시간은 논의의 폭과 내용과 무관치 않다. 지난 2월 12일 트럼프-푸틴의 첫 통화 시간은 90분이고, 18일엔 3시간에 가까웠다. 트럼프가 밝힌 젤렌스키와의 통화시간은 1시간. 트럼프-푸틴은 미·러 관계 정상화와 놀라운 경제적 기회의 탐사, 중동 평화와 이란, 핵무기 비확산 등 글로벌 안보 이슈를 논했다. 통화가 길어진 이유다. 트럼프는 푸틴의 요구대로 전쟁의 원인 제거를 강조하고 있다. 우크라의 중립화-비무장화-탈나치화 등 푸틴이 2022년 2월 24일 제시한 특별군사작전의 3대 명분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건 아니다.

미국은 푸틴의 대우크라 무기 지원 및 정보 공유 중단 요구에 무기 지원은 언급하지 않은 채 "우크라 방어를 위한 정보 공유는 계속될 것(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을 다짐했다. 또 우크라의 패트리어트 시스템 등 방공무기체계 지원 요구에 유럽 역내에서 동원 가능한지 알아보겠고 답했다. 트럼프가 이 또한 러시아의 양보를 끌어낼 카드로 쓸지는 두고 봐야 한다.

1940년 제작된 '아메리칸 테크네이트' 지도.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급진 기술주의를 주장한 하워드 스콧이 제작했다. 효율적인 과학적 기술주의 운동은 대공황 시대의 좌절을 겪은 미국에서 바람을 일으켰지만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소멸됐다. 지도는 그린란드와 캐나다, 멕시코, 카리브해 지역 및 남미의 콜럼비아와 베네수엘라, 기아나를 죄다 미국 영토로 표시했다. 영토 확장을 시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25.1.27.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이쯤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트럼프 행정부의 탈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이 우크라를 무한 지원하는 한편, 대러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약화를 노렸다면, 트럼프는 러시아와 거래를 추구한다. 바이든은 동맹을 결속하고 강화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했고, 각국이 자발적으로 국방예산을 늘렸다. "오늘의 우크라는 내일의 대만"이라면서 한국, 대만, 일본과 '칩(Chip) 4 동맹'을 맺었다. 트럼프는 제값을 치르지 않는 동맹과 우방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유권을 늘리고 있다. 경제적 이익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가자지구 문제 해법도 미국의 소유 또는 점령이었다.

트럼프는 전쟁이나 제재, 군사적 대치 대신 비즈니스 계약과 관세를 선택하고 있다. 바이든은 퇴임 직전 우크라에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를 러시아 공격에 사용토록 허락해 핵전쟁의 위기를 심어 놓았다. 끝이 안 보이는 전쟁보다 평화적 접근은 분명 좋은 것이다. 다만 미국 국익을 위해 세계가 동원되고 있는 현실은 다르지 않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