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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이 내세운 존엄과 자주권의 허실

칼럼/破邪顯正

by gino's 2012. 4. 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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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김일성민족’으로, 국가는 ‘김정일조선’으로 바뀌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이었던 어제 첫 공개연설에서 이른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목표 달성을 위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김 제1비서가 20분가량 낮은 톤의 음성으로 읽어내려간 연설에서 국민의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주 노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천명한 대로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통치이념으로 삼을 것은 예상됐던 바이다. 하지만 정작 북한의 새 지도자로 등극한 김 제1비서의 육성으로 들은 북한의 미래, 특히 북한 주민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는 점에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김 제1비서는 “만난 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국민은 ‘군민일치’나 ‘군민대단결’을 위한 부차적인 존재로만 제시됐다.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평화 역시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에 뒤처진 가치로 제시했다.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은 물론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민족과 나라의 주체인 국민을 경시하는 한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북한이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김일성 시대, 김정일 시대에 설정한 존엄과 자주권 수호에만 연연한다면, 국호에 새긴 ‘민주주의’와 ‘인민의 공화국’ 달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밥그릇을 차버리는 결정’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한 지난 13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야말로 국민이 아닌, 정권의 눈높이에 맞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북한이 1998년 이후 강행해온 4차례의 광명성 위성 또는 장거리 미사일(2006년) 발사와 2차례의 핵실험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및 6자회담 관련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일시적인 경제지원을 받았으나 종국에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더 심한 고립을 자초했다. 그 과정에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상황을 꼬이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 역시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 과정에서 상황의 반전 또는 악화를 초래하는 빌미를 제공해온 게 사실이다. 북한 로켓 발사의 성패와 관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다. 북한이 2006년, 2009년에 이어 로켓 발사 뒤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더욱 굳어질 고리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북한은 그 어떤 존엄과 자주권을 강조하기에 앞서 평화를, 그 어떤 공허한 명분을 내세우기에 앞서 국민복리부터 앞세울 것을 촉구한다. 한·미와 국제사회 역시 북한의 이러한 변화를 돕기 위해 제재를 위한 제재, 규탄을 위한 규탄 등 고식적 대응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입력 : 2012-04-15 20: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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