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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by gino's 2012. 10.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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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어나 50년이 넘도록 서울 밖에 주민등록지를 둔 적이 없는 서울 시민이다. 함경남도 원산시 용동 35번지를 원적(原籍)으로 두고 있는, 엄연한 원산 시민이기도 하다. 아직 밟아보지도 못한 원산 시민의 정체성이 짙지는 않다. 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을 모두 품은 동북지방 어딘가에 조상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의식만은 선명하다. 


실향민들은 고향을 잃었지만 서울 북한산 밑에 행정기관을 갖고 있다. 법에 근거해 황해·평남·평북·함남·함북도를 ‘관할’하는 이북5도위원회다. 경기·강원의 미수복지역을 아우르기에 정확하게는 이북 7도에 원적을 둔 사람들이 해당된다. 각각 향토문화가 판이한 7도를 이승만 정부가 1949년 인위적으로 묶어놓은 것은 처음부터 정치적·이념적인 목적에서였다. 통일 이후에 대비한 ‘그림자 행정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운영예산은 물론 명예 읍·면·동장·시장·군수의 수당에서부터 도지사의 차관급 보수까지 국고에서 지출한다.



문재인 후보 앞 피켓시위하는 이북5도민 (출처: 경향DB)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지만, 지도부는 관변 반공 인사들의 사교클럽쯤으로 인식되곤 한다. 도지사부터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묘연하다. 일반인들은 물론 많은 실향민들 사이에서 이북5도위원회가 잊혀진 존재가 된 이유다.


지난 14일 제30회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 도중 행사장을 찾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게 “친북·종북세력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물병을 던진 참석자들을 상대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도 같은 이유로 곤욕을 치렀다. 후보는 공직선거법에 의거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만큼 경찰의 조치는 당연하다.


하지만 대회 참석자 1만5000여명 가운데 정치적·이념적 색안경을 쓰고 난동을 부린 사람은 극소수다. 많은 사람들은 문·안 후보와 술잔을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며 환대했다고 한다. 모든 실향민은 이중시민이다. 제2의 지역적 정체성 속에 개인사 또는 가족사의 아픔이 배어 있다. 통일 이후를 대비하려면 정부 내에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참에 이북5도위원회를 정부와 무관한 ‘광역 향우회’쯤으로 재편하는 논의가 시작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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