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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청장의 과거

칼럼/여적

by gino's 2012. 10. 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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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3

 

손발이 꽁꽁 묶인 채 각목(통나무)에 끼워진 유모씨의 몸은 등이 아래로 처진 채 공중에 매달렸다. 뒤로 젖혀진 얼굴 위로 젖은 손수건이 덮여졌고, 주전자를 들고 있던 (보안사 수사관) 추모씨는 생명을 이어가는 최후의 구멍에 새빨간(고춧가루) 물을 부었다. … 나는 이 광경을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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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김병진씨의 책 <보안사>에 나오는 ‘인간 바비큐 물고문’의 목격담이다. 김씨는 보안사(현 기무사) 통역으로 서울 장지동 분실의 현장에 있었다. 고문 피해자는 간첩으로 몰려 보안사의 서울 장지동 분실에서 불법취조를 받았던 재일동포 유지길씨. 고문관은 당시 수사5계의 추재엽 수사관이다. 공교롭게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참혹한 고문을 받았던 1985년의 일이다.

어찌 보면 ‘고문의 달인’이었던 이근안 경감은 불행한 인생이다. 고문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한 김근태라는 악연을 만난 탓이다. 오랜 도피생활 끝에 어렵사리 양지로 나와 얻은 ‘목사’ 직함도 박탈당했다. 최근엔 그가 마음껏 솜씨를 발휘했을 고문을 정밀하게 묘사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가 만들어졌다.

이 전 경감이 어두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면, 추 수사관은 불과 엊그제까지도 성공한 인생을 구가하고 있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3선의 민선 서울 양천구청장. 과거를 숨기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지금도 국방장관이 나서 60만 군장병을 상대로 종북타령을 늘어놓는 세상이다. 그의 인생이 꼬인 것은 보안사 근무 당시 고문 참여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양천구청장 선거 당시 “(보안사 재직 당시) 고문하는 현장에 간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던 추 구청장이 그제 서울남부지법에서 법의 위증과 무고·선거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1년3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고문 자체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의 의미는 크다. 과거를 세탁하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지도층 인사들이 설치는 현실이기에. 또 판결문이 적시했듯이 극심한 고문과 협박 탓에 ‘그 신체와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현재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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