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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여적]빈사의 꿀벌

by gino's 2012. 11. 18.

김진호 논설위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 농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1980년 450만개였던 양봉농가의 벌통이 2008년 244만개로 줄었다. 2006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북반부 꿀벌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범 지구적인 현상이다. 일명 군집붕괴현상(CCD). 과학자들이 원인을 찾아 나섰지만 오리무중이다. 


2009년 미국 ‘CCD워킹그룹’의 첫 연례보고서는 꿀벌들의 군집붕괴 이유로 각종 병균과 바이러스, 기생충, 진드기, 살충제, 유전자 조작작물, 휴대폰 전자파 등 61가지를 들었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결론이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의 저자 로완 제이콥슨은 꿀벌들이 수많은 스트레스 탓에 적응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꿀벌들은 몇 주에 한번씩 트럭에 실려 이동하면서 꽃가루받이 노동에 동원된다. 사람이 주는 시럽을 먹어가며 2월엔 아몬드 나무에, 3월엔 사과나무에, 6월엔 블루베리에 투입된다. 그 결과 영양실조와 온갖 살충제, 항생제, 화석연료의 매연에 시달리면서 저항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청 옥상에 설치된 양봉장에서 벌꿀을 수확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오랫동안 양봉인들은 일 나갔다가 돌아온 꿀벌들이 어스레한 벌집 안에서 추는 괴상한 엉덩이 춤에 궁금증을 가졌다고 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곤충행동학자 칼 폰 프리슈는 1960년대 꿀벌들의 춤은 밀원(蜜源)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동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정보전달 방식이라는 해답을 내놓았다. 지난주 서울역사박물관 강연회에서 최재천 교수는 “꿀벌들의 서식환경이 빠르게 바뀌면 주변환경을 기억하지 못해 정확하게 꿀이 있는 위치를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춤을 추고 싶어도 출 수 없게 됐다는 말이다. 


한 종의 종말은 필연적으로 다른 종의 생존을 위협한다. 지구상에 있는 식물의 75%가 꿀벌들의 꽃가루받이 덕분에 번식을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의 먹을거리도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고 소비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부메랑이 되는 것일까. 꿀벌의 죽음에 과학적인 이유를 찾아내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생태계를 뒤흔드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자연에 대해 알 수 없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가야 한다”는 최 교수의 말이 울림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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