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
국방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빈틈없이 대비하되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 설령 위협이 임박했다 하더라도 군 수뇌부는 태산처럼 진중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 공연히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것은 오히려 이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잇달아 내놓고 있는 발언들은 이러한 상식을 뒤집고 있다. 김 장관은 엊그제 전군지휘관회의 석상에서 “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천안함, 연평도 피격보다 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근거로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군의 특성상 대선을 불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 없이 북풍(北風)에 대한 우려만 키운다면 군의 선거 개입 의혹을 키울 뿐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준비설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방부 정보본부는 같은 자리에서 “북한이 12월에서 내년 1월 사이에 발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가 “현재로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고 밝힌 것과 거리가 멀다. 북한이 다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북한이 통상 발사 한 달여 전 국제해사기구에 통보해온 관례에 비춰보면 발사하더라도 대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시기를 앞당겨 강조하는 것은 “북한이 대선 개입도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면서 김 장관이 지난 8월17일 국회에서 공식 제기한 북풍론의 연장선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올 들어 내놓은 김 장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은 진작 ‘준전시상태’에 돌입했어야 한다. 4·11총선을 한 달 앞둔 지난 3월 초에는 연평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3월은 천안함 폭침을 응징하는 달”이라면서 “북한의 도발 시 (북한) 사격량의 10배까지도 대응사격하라”고 지시했다. 10·1 국군의 날에는 평택 2함대를 찾아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으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 뒤 성동격서식 도발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장관이 북한의 도발 근거로 제시한 것은 천편일률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이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출범하고 있다는 국내외 대부분의 평가와 궤를 달리한다.
김 장관의 잇단 경고에도 북한의 도발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어제 남측에서 주장하는 대선 개입설은 “허황하기 그지 없는 날조설”이라고 부인하기까지 했다. 국민이 상시적인 위기감에서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군의 본연의 임무다. 군 수장이 끊임없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만 높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전방의 ‘노크 탈북’과 국군기무사령부의 파렴치한 범죄 은폐 기도 탓에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다. 김 장관은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하되 정치적 시비를 자초하지 않도록 자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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