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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거기엔 사람이 없었다

칼럼/여적

by gino's 2012. 12.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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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논설위원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혼자다. 지난 3일 뉴욕 맨해튼의 지하철역 철로에 떠밀려 숨진 50대 재미동포 한모씨는 불행히도 후자의 경우였다. 이 사건은 다음날 뉴욕포스트가 현장에 있던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찍은 한씨의 최후 모습을 보도하면서 짙은 잔영을 남겼다. 여론의 비난은 한씨를 돕기는커녕 49번이나 셔터를 눌렀던 사진기자 우마르 압바시와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한 뉴욕포스트에 집중된다. 그러나 과연 이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한씨는 열차가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 수차례 승강장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갔다. 주변에는 여러 명의 승객들이 있었다. 이들은 열차를 비상정지시키기 위해 손이나 옷을 흔들며 고함을 쳤다고 한다. 일부는 한씨에게 “빨리 (철로에서)나와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달려가 한씨를 끌어올리지 않았다. 뉴욕포스트의 편집진은 7~8m 앞으로 다가온 열차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한씨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을 1면 전면에 게재했다. ‘운이 다한(Doomed)’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철로에 밀쳐진 이 남자는 곧 죽는다’는 설명을 붙였다. 편집진은 사진 게재 결정을 내릴 때까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윤리보다는 상업적 타산을 선택했다. 압바시나 승객들, 뉴욕포스트 편집진 모두에게 한씨는 타자(他者)이자, 대상이었을 뿐이다.


수서역에서 박준현씨가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부축해 구출하는 과정 (출처:경향DB)


뉴욕타임스는 ‘거기엔 영웅들이 없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씨를 구하려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뉴요커들이라고 유난히 매정한 것은 아니다. 2007년 1월 브로드웨이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한 남자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다가오는 열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순간 승강장에 있던 50대 흑인 건설노동자가 철로로 뛰어들어 승강장 밑 공간으로 옮겨 목숨을 구했다. 영웅이 탄생한 순간이다. 2009년엔 한 청년이 철로에 뛰어들어 넘어진 남자를 구출했고, 그 이듬해에는 철로에 떨어져 의식을 잃은 20대 여인을 철로 사이의 우묵한 공간으로 옮겨 놓아 살려낸 영웅이 있었다. 모든 것은 찰나에 내려진 결정이다.


누군가 철로에 떨어지고, 다가오는 열차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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