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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여적]알로하, 이노우에

by gino's 2012. 12. 19.

김진호 논설위원


독일군의 패색이 짙던 1945년 4월 이탈리아 전선. 토스카나 지방의 한 마을에서 미군 소대장 대니얼 이노우에는 독일군 기관총 사수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두 번째 수류탄을 던지려는 순간, 그만 배에 총탄을 맞고 말았다. 전투가 끝나갈 즈음에나 이노우에는 오른팔의 부재를 깨달았다. 1967년 자서전 <워싱턴으로의 여정>에 “수류탄을 쥔 채 떨어져나간 팔을 바라보면서 믿기지가 않았다”고 적었다고 한다. ‘외팔이 이노우에’의 전설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노우에는 하와이가 주로 승격된 1959년 이후 한 차례 하원의원을 거쳐 50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봉직했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뒤늦게 최고무공훈장(Medal of Honor)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노우에가 의과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인 이민자 2세들이 배치된 니세이(二世) 442연대에 입대한 배경에는 청춘의 아픔이 있었다. 진주만 기습 이후 일본인들이 본토의 수용캠프에 갇히던 시절, 미국민임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적에서 동지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이노우에의 역할은 컸다. 워싱턴 연방의사당 앞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 정부의 일본인 캠프 운영 사실을 공식 사과하는 문구를 담은 ‘일본계 미국인 애국기념 조형물’이 세워졌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사과와 반성의 문구를 새겨넣게 한 것도 442연대 출신 거물 정치인의 입김이 있어 가능했다. 


이노우에는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가해진 인권탄압에는 도끼눈을 뜨면서도, 일본의 만행에는 눈을 감았다. 2007년 4월,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던 일본계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역대 7명의 일본 총리가 사과를 했다. 미·일 동맹에도 악재가 된다”면서 적극 만류하기 위해서였다. 이노우에가 한국과 미국에 사뭇 다르게 기억되는 까닭이다. 


이노우에가 88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타계했다. 한 시대가 온전히 저문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와이 인사말인 “알로하” 한마디만을 남겼다고 한다. 자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한층 우경화된 아베 신조가 총리로 복귀하게 되면서 하수상한 시점이다. 이노우에가 주도한 미·일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한·일관계는 언제나 행복한 결말을 맺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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