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만 제국의 술탄 마무드 1세가 이스탄불 유럽지역의 개활지에 석수조를 만든 것은 1732년이었다. 벨그라드 숲에서 유입되는 물을 받아놓았다가 도시 곳곳에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아랍어로 배분이라는 뜻의 ‘탁심’을 지명으로 얻은 연유다. 여기에 개활지라는 뜻의 ‘메이단’을 합해 탁심 광장이 탄생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창건하면서 탁심 광장은 현대 터키의 상징이 됐다. 건국 5년 뒤 ‘공화국 기념탑’이 들어서면서 케말의 세속주의 유훈이 살아 숨쉬는 광장이 된 것이다. 물이 흐르다보니 길이 뚫렸고,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단골 시위 또는 충돌의 장소가 됐다. 1977년 36명의 좌파 시위대가 극우파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피살당하는 ‘학살’이 벌어졌다. 2000년 유럽축구연맹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전야에 축구난동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터키 이스탄불 시내 탁심 광장에서 지난달 28일 한 여성(오른쪽)이 진압경찰이 분사하는 최루가스액을 맞고 있다. 터키 사진기자 오스만 오르살이 찍은 이 사진이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사진 속 여성은 탁심 광장 재개발계획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_ 후리예트(www.hurriyetdailynews.com)
탁심 광장이 지난달 말부터 시끄러워지고 있다. 인접한 게지 공원을 뒤엎어 상가건물을 짓는 데 반대하던 평화로운 시위대 텐트들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철거하면서 일이 커졌다. 순식간에 전국 60여개 도시로 번져나가면서 수천명이 다쳤다고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던 ‘아랍의 봄’이나,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했던 ‘월가 점령운동’과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하고 있으며 최근 10년간 연평균 7.3%의 경제성장을 거뒀다. 한 달 전만 해도 쿠르드족과의 평화 전망이 밝아지면서 국운이 융성하는 분위기였다.
고인 물은 썩기도 하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흘러넘친다. 시위는 그동안 쌓였던 작고, 사소한 불만이 모이면서 비롯됐다. 여론을 무시한 도심 재개발 이전에도 작가와 예술가들을 국가 또는 종교 모독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하지 못하게 한 최근의 조치는 세속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불만을 키웠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3번째 대교에 하필 이슬람 소수파를 학살한 셀림 술탄의 이름을 붙인 것도 문제였다. 저변에는 이슬람 권위주의가 깔려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며 소통을 거부해온 에르도안 총리의 불통(不通)에 쌓였던 분노가 터졌다는 해석이 주류다. 소통과 세속주의 전통이라는 탁심 광장의 정신을 되살리지 않는 한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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