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자기 이름을 밝힐 때 일본인은 거의 예외없이 서양식으로 이름과 성 순서로 자신을 소개한다. 한국인은 다르다. 10명 중 5명 이상이 성과 이름 순으로 소개한다. 그리고는 우정 “한국에서는 이름이 아닌 성을 먼저 쓴다”는 설명을 붙인다. 국제화 지수가 높아짐에 따라 서양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만 아직은 대세가 아닌 것 같다. 교육을 받은 결과가 아니다. 생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 특유의 성깔은 생존의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중국 주변에서 나라를 이루고 흥망성쇠를 겪었던 수많은 민족 중에서 여전히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 정도가 아닌가 싶다. 몽골은 국토의 태반이 중국령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다. 성깔도 있다. 게르만이나 터키 민족 주변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네덜란드나 체코, 세르비아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면모를 발견한다. 체격과 체력, 정신력에서 평균 이상의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포 역시 이런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 언젠가 코리안아메리칸 친구 두세명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미국 동료가 “한국사람끼리 있네~”라고 한마디 툭 던지자, 자기도 모르게 “우린 한국사람들이야! 엉기지 말라고(We are Koreans! Don’t mess with us!)”라는 농담을 되받았던 경험을 전해주었다. 성깔은 외부의 숱한 도전에 응전하면서 한국인의 유전자에 녹아든 특성인 듯하다.
(경향신문DB)
문제는 이러한 성깔이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에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일각의 목소리에서 예의 성깔을 재발견한다. 미국 역시 두개의 코리아와 상대하면서 이를 간파한 것 같다. 천안함 사고 직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대응을 극찬한 이유의 하나는 성깔을 부리지 않고 참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군축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하버드대 벨퍼연구소 소장이 한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성깔에 대한 우려를 내놓았다. 그는 “북한의 선제타격 위협은 허풍에 불과하지만 정작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국지도발에 한국이 보복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위기 속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남의 성깔과 북의 성깔이 서로 엉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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