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눔의 국제정치학

남수단에서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

by gino's 2017. 2. 28.

남수단 소녀들이 지난해 10월19일 벤티우 지역에서 유니세프가 나눠주는 구호식량을 받아가고 있다. 남수단 벤티우/AP연합뉴스

·한반도 3개 면적의 ‘기회의 땅’, 희망은 손님처럼 왔다갔다 

백나일강 양안의 열대우림과 광대한 초원, 습지가 어우러진 기회의 땅. 그 땅에서 남수단 사람들은 1950년대부터 22년 간 수단 ‘북쪽 친구들’의 압제에 맞서 싸웠다. 1000만명을 웃도는 인구 가운데 최소 150만명이 사망하고 400만명이 국내 난민으로, 또다른 100만명이 해외 난민으로 디아스포라의 고난을 당했지만 끝이 좋았다. 2011년 7월 국제사회의 축복을 받으며 독립국가를 선포했다. 그후 남수단에서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희망은 손님처럼 잠깐 왔다갔다. 유엔은 20일 남수단 일부를 기근지역으로 공식 선포했다. 당장 10만여명이 아사 직전이며, 100만여명이 굶주림에 직면했고, 올 여름까지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550만명이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도 내놓았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 유엔아동기금(UNICEF)은 공동보고서에서 남수단의 기근을 ‘인재’로 규정했다. 

■유엔 기근지역 공식선포, 독립 6년 만에 국민의 반이 굶주리는 나라로 전락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넘쳤던 땅이 6년 만에 죽음의 땅으로 변한 까닭은 무엇보다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종족 간 갈등 때문이었다. 2013년 12월 살바 키이르 대통령(딘카족)이 내쫓은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누에르족) 간 무력충돌로 수만명이 죽고, 150여만명이 난민으로 전락, 인근 국가로 피했다.

‘기근지역’으로 선포된 유니티주(州) 일부는 바로 60여개의 부족 가운데 최대 부족인 딘카족과 누에르족이 집중 거주하는 농업지역이다. 내전은 주로 장마기에 재배하는 곡물의 수확을 불가능하게 했고 주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해왔지만 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유엔의 분석이다. 2억배럴 이상의 원유가 매장된 곳이지만 석유수입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남수단 정부는 이미 정부기능을 상실했다.

남수단 북서부 아드주마니 난민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 그나마 내전 당사자들이 모두 구호식량의 전달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허기를 달랠 식량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남수단 아드주마니/AP연합뉴스

남수단 북서부 아드주마니 난민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 그나마 내전 당사자들이 모두 구호식량의 전달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허기를 달랠 식량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남수단 아드주마니/AP연합뉴스

공무원들은 그렇지않아도 거덜난 정부 예산 중 수백만달러를 착복하고, 유정은 화염에 휩싸였으며, 국제구호단체들의 지원 식량은 탈취당하고 있다. 난민 캠프에 수용된 여성의 70%가 군·경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유엔은 끔찍한 인종청소가 진행중이며 자칫 전면적인 인종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인 어린이 25만명 가운데 상당수는 즉각적인 식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생명줄을 놓을 상황이다. 하지만 내전의 양측 모두 구호식량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탓에 비극을 키우고 있다. 이 와중에도 딘카족과 누에르족의 지도자들은 분쟁과 석유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유엔이 ‘기근지역’으로 공식 선포한 남수단 유니티주. 농업이 주 산업이지만, 2개의 유전이 있으며 그중 한 곳에만 1억 5000만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남수단 전국에 60억 배럴의 원유가 있지만 이웃 수단과의 분쟁 및 내전 탓에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유엔이 ‘기근지역’으로 공식 선포한 남수단 유니티주. 농업이 주 산업이지만, 2개의 유전이 있으며 그중 한 곳에만 1억 5000만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남수단 전국에 60억 배럴의 원유가 있지만 이웃 수단과의 분쟁 및 내전 탓에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유엔은 “교전 당사자들이 구호식량의 전달을 막지만 않아도 몇달 내로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유엔기구 직원들은 물론 국제구호단체 활동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적 지원을 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이럴 때 유엔은 통상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구호기금 확대를 호소하는 것으로 역할을 끝낸다.

남수단은 수단과의 독립전쟁을 치르던 1998년에도 심각한 기근에 처한 적이 있다. 가뭄과 내전 탓에 수많은 주민들이 굶주려야 했다. 하지만 남과 싸울 때가 그나마 행복했다. 독립된 국가에서 다시 벌어진 내전은 당시보다 더욱 종말론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1년 1월 국민투표에서 99%이 독립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독립의 꿈이 악몽으로 변한 지금 인근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권력층을 몰아내고 유엔 지지하에 한시적인 신탁통치를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오고 있다. 독립을 위해 20여년 달려왔지만, 정작 독립 뒤에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욕과 물욕이 나라를 다시 나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평화 
남수단은 결코 울지 않는 남수단 톤즈의 남자들을 울린 고 이태석 신부가 헌신적인 봉사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정부수립 2달 전인 2011년 5월 한국을 방문했던 남수단통합정부(GOSS)의 바악 발렌티노 아콜 월 지역협력국장은 말 끝마다 ‘우리의 북쪽 친구들’을 후렴처럼 붙이며, 독립 뒤 최대 위협요인으로 하르툼의 수단정부를 지목했었다. “식민통치와 내전, 남북 분단 등 남수단의 역사를 미리 겪은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빌리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적은 내부에 있었다. 반세기 동안의 고난과 잠깐의 평화, 그 뒤에 다시 내전과 이에 따른 인재에 휩싸인 남수단에 평화는 언제 찾아들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