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해를 넘길 수있는 특별검사의 수사와 이후 상·하원 본회의 탄핵안 가결까지는 머나먼 여정이 남아 있다. 법적인 결정이라기 보다는 연방의회의 정치적 결단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년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트럼프 탄핵문제가 아퀴지어질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없는 이유다.
■특별검사(Special Prosecutor)는 왜 특별한가
특별검사는 미국에만 있는 제도다. 현직 대통령이나 현직 법무장관이 관련된 사건을 독립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임명된다. 행정부 장관들이나 선거유세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임명권자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이다. 연방 하원이 과반수 이상 의결로 법무장관에게 특검 임명을 요청할 수 있지만 판단은 법무장관의 몫이다. 이번의 경우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트럼프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던 시절 세르게이 키슬략 러시아 대사와 2차례 접촉한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이해관계 충돌이 없는 로드 로즌스타인 부장관이 임명했다.
특검 역시 초법적인 존재는 아니다. 실정법을 어기거나 부적절한 행동, 직무유기, 이해충돌 등의 사유가 드러날 경우 법무장관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 하지만 지극히 예외적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특검 아치발드 콕스 특검을 해임토록 법무장관에 지시했지만 당시 법무부 장·차관이 모두 이를 거부하면서 결과적으로 본인이 사임해야했다. ‘트럼프 사람’인 세션스 법무장관이 뮬러 특검을 해임할 수는 있지만, 특단의 결심을 하기 전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활동기간은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 빌 클린턴의 경우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 의혹사건에 대해 케네스 스타가 첫 특검으로 임명된 것은 1994년 8월이지만 이후 백악관 직원 무단해고, FBI 수사파일 부당 사용, 파울라 존스 스캔들에 이어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지면서 불이 붙었다. 1998년 12월에나 하원 탄핵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트럼프팀의 러시아 커넥션과 관련해서는 이미 트럼프의 수사중단 사실이 담긴 코미 전 FBI국장의 메모가 드러나는 등 스모킹건(Smoking gun·결정적인 증거)이 속속 나오고 있어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탄핵 결정권은 온전히 연방의회에 있다.
■의회 공화당이 키를 쥔 트럼프 탄핵
미국 헌법은 대통령 탄핵권한을 온전히 연방의회에 주고 있다. 한국 처럼 헌법재판소의 인용이 필요없다. 하원 과반수와 상원 3분의2가 찬성하면 그만이다. 헌법 2조는 탄핵사유를 ‘반역과 뇌물수수 또는 다른 중죄와 비행’이라고 적시했다. 그중 다른 것은 법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비행(misdemeanor)’은 의회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빌 클린턴의 경우 거짓말이 비행에 해당돼 탄핵위기에 몰렸었다. 의회의 또다른 권한은 탄핵사유를 주절주절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클린턴의 경우 의회가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의 조사보고서가 하원 법사위로 보고서가 넘어오고 3달 만에 하원의 탄핵결의가 이뤄졌다.
트럼프를 탄핵할 수있는 빌미는 많다. 우선 지난 1월20일 취임하면서 개인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헌법상 이해충돌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이 대목만 갖고 탄핵 요구를 시작한 시민운동단체도 있다. 여기에 트럼프 진영의 러시안 커넥션을 수사하던 코미 FBI국장을 별다른 근거 없이 해고했고, 수사 중단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있다. 코미를 해고한 다음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세르게이 키슬략 주미 러시아 대사를 백악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입수한 이슬람국가(IS)와의 테러전과 관련한 특급기밀을 건넸다. 미국 대통령은 말할 권한이 있지만, 여론을 악화시키는 인화점이 됐다.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 초상화까지 걸어놓고 우상으로 섬기는 앤드루 잭슨은 애드윈 맥마스터 육군장관을 전격해임했다는 이유만으로 하원에서 탄핵의결이 됐다.
문제는 공화당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의사당 내 의원석을 구분하는 ‘통로(aisle) 너머’의 민주당 의원들의 의견에 동참하기 전에는 탄핵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리처드 닉슨은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일 때, 빌 클린턴은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일 때 각각 탄핵 위기에 몰렸었다.
현재 의석 분포로는 상·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할 경우 최소 24명의 공화당 하원의원과 19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가결된다.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다고 해도 하원 과반수는 몰라도 상원의 3분의2 이상 찬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 역사상 탄핵위기에 몰렸던 잭슨과 닉슨, 클린턴 중 누구도 상원 표결까지 가지 못한 이유다. “트럼프 탄핵은 환상(보수 블로거 에릭 우드 에릭슨)”이라는 장담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수정헌법 25조의 대안, 대통령 권한대행체제
의회 표결이 어렵기에 제기되고 있는 것이 1967년 존 F 케네디 암살 이후 갑작스런 대통령 궐위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수정헌법 25조이다. 수정헌법 25조는 행정부의 상위 서열의 장관 15명 중 과반수(8명) 이상과 부통령이 “대통령이 업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부통령 대행체제로 옮겨갈 수 있다. 아직까지 실행된 적이 없는 조항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화당 내 지지가 높은 편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보스’에게 충성하기 보다 조국에 충성하려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비롯해 일부 소신파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장관들이 트럼프의 사람이기에 이 역시 녹록지 않다. 트럼프가 특검을 수용한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움직이지 않는 ‘밑바닥 여론’
국회의원은 어느 나라에서건 지역구의 민심을 가장 먼저 살핀다. 지역구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한 공화당 의원들은 결코 자당 출신의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과 민주당 의원들의 합리적인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방방곡곡의 민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오하이오주와 미시건주의 러스트벨트에서는 러시아 스캔들이 화제에 오르지도 않는다고 CNN은 16일 전했다. “러시아는 무슨, 일자리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많은 지역의 밑바닥 민심이다. 오바마노믹스의 후광이지만, 어쨋든 트럼프 취임 이후 52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됐다. 하루살이가 버거운 많은 민초들에겐 주류 언론이 강조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니 ‘리버럴리즘의 위기’라는 보도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코미 게이트’가 반영된 지난 16일 공공정책조사기관(PPP)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탄핵을 찬성한 응답자는 48%였다. 같은 기관이 지난 2월10일 발표한 수치(46%)에서 불과 2% 늘었을 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얻은 46.1% 보다 약간 많고, 힐러리 클린턴이 얻은 48.2%에 약간 못미치는 정도다. 민주주의의 가장 위력이 큰 제도인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 한 탄핵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젖은 장작’에 불 붙이기
탄핵이 어려운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또다른 특성 때문이다. 민주화 시위와 촛불시위와 같은 전통이 없는 미국에서는 정당한 주장도 전국적인 반향을 얻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흑인민권주의 운동의 격랑 속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피살된 뒤 들불처럼 번졌던 흑인들의 폭동과 백인들의 도시 탈출(white flight) 이후 전국적인 현상은 없었다. 2000년대 초 이라크전 반전 시위가 있었지만 지역풍에 그쳤고, 그럼에도 조지 W 부시는 2004년 거뜬하게 재선했다.
지난 1월 트럼프 취임 전부터 온라인 청원운동을 벌여온 ‘지금, 트럼프를 탄핵하자(impeachdonaldtrumpnow.org)’는 첫 2주 동안 40만명이 서명했지만 넉달이 지난 5월17일 오전 4시55분(미국 동부시간) 현재 97만여명에 불과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민운동이 들불처럼 번진다면, 미국의 시민운동은 젖은 장작에 불때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