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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

[김진호의 세계읽기]트럼프만 갖고 있는 핵버튼, 미국 민주주의는 바꿀 수있다.

by gino's 2017. 10. 23.

미국 대통령이 어디를 가건 항상 따라다니는 ‘핵가방(Nuclear football)’. 유사시 적성국의 복수의 타깃을 향해 핵무기를 발사할 수있는 코드가 담겨 있다. 무게는 20킬로그램이다.   위키페디아

세계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미국은 핵무기 발사권한을 100% 대통령에게 맡겼다. ‘1946년 핵에너지 법(맥마흔법)’에 명토박은 철칙이다.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다른 각료들은 대통령의 결정에 순종해야 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무기 발사 권한 독점에 대한 반대 여론이 미국 사회에서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북한과의 말싸움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폭풍 직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 등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발언들과 맞물려 우려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핵탄두 4000여기에서 3만2000기로 늘려야” 

먼저 문제 제기를 한 것은 뉴욕타임스다. 지난 10월11일자 ‘트럼프 만이 핵공격을 명령할 수 있지만, 의회는 그걸 바꿀 수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다. 2차대전 직후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호전적인 장군들의 성급한 결정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민간 지도자 통제권을 부여했지만, 지금은 되레 대통령이 더 호전적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타임스는 트럼프가 핵무기를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의회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경고한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드러난 호전성과 끊임없는 미국 핵무력 확대 욕구, 이란 핵합의 무시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의 핵무기 욕심은 그가 지난 7월20일 국방부 군사전략회의에서 현재 4000여기인 핵탄두를 1960년대의 3만2000기 수준으로 증강할 것을 원했다는 지난 11일 NBC방송의 보도에 근거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를 ‘가짜뉴스’라며 부인했다. 타임스는 그러나 그가 지난해 대선유세 도중 ‘미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왜 사용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했던 것을 환기시켰다. 

밥 코커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월14일 연방의사당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코커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이란과의 끔찍한 핵합의를 맺은 큰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트위터를 날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성인 탁아소’로 만들었다면서 되받았다.   그는 국정을 리얼리티쇼 진행처럼 하는 트럼프 탓에 3차 대전이 걱정된다고 경고했다.<br />EPA연합뉴스

밥 코커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월14일 연방의사당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코커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이란과의 끔찍한 핵합의를 맺은 큰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트위터를 날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성인 탁아소’로 만들었다면서 되받았다. 그는 국정을 리얼리티쇼 진행처럼 하는 트럼프 탓에 3차 대전이 걱정된다고 경고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일본 상공으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북·미 간 대치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미국 사회 여론주도층이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타임스는 특히 밥 코커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공화·테네시)에게 핵공격권을 제한하는 법제화를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코커 위원장은 최근 트럼프와의 원색적인 상호비난전 끝에 “트럼프가 변덕스러운 위협으로 미국을 3차 세계대전으로 끌고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타임스는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공격적인 태세가 주로 연극일 것이라고 희망하지만, 그의 느슨한 입에는 어떠한 전략도 없다”면서 핵공격 결정 전에 대통령이 최소한 국무, 국방장관과 협의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1인이 아닌, 국무·국방장관이 함께 결정해야 

타임스 사설 이후 최소한 핵선제공격에 대해서만이라도 의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등 상당한 반향이 이어지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농업부장관을 역임한 댄 글릭맨은 지난 10월20일자 ‘대통령의 손가락을 핵버튼에서 떼어놓아라’는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 대통령이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하는 연두연설에는 단 1명의 각료만 제외하고 모든 각료들이 참석한다. 만일에 하나 의사당이 공격받을 경우에 대비해 전쟁을 지휘할 각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각료를 '지정된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라고 한다. 글릭맨은 1997년 클린턴 대통령이 연두연서를 하는 시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비밀경호원 및 군 요원들과 함께 격리됐었다. 격리된 각료를 ‘지목된 생존자’라고 부른다. 그는 당시 ‘대통령의 핵가방’을 관리했던 경험을 전하면서 대통령 1인에게 핵발사 버튼을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 주장했다. ‘핵풋볼’ 또는 ‘대통령의 긴급가방’이라고 불리는 핵가방은 동시에 복수의 적성국 수도를 공격할 수있는 핵버튼이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19일 백악관에서 리카르도 로셀로 푸에토리코 주지사로부터 허리케인 피해를 전해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19일 백악관에서 리카르도 로셀로 푸에토리코 주지사로부터 허리케인 피해를 전해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북-미간 전쟁 가능성 25%+어떤 냉전당시 위기보다 심각한 현실

그릭맨은 북한과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25%로 본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최근 경고를 상기시켰다. 또 “현재의 위기는 냉전 당시에 목도했던 어떤 위기 보다 위험하다(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3차대전(코커 위원장)”의 경고를 되새겼다. 그러면서 1973년 전쟁수행법(War Power Act)의 개정을 촉구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인정하되, 의회가 초당적인 합의 하에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세계는 핵전쟁의 위험을 두번 넘겼다. 두번 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먼저 그해 9월26일 모스크바 인근 세르푸코프-15 비밀벙커에서 당직근무중이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 은 미국이 5기의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군사위성의 경보를 접했다. 하지만 육상 레이더에는 아무런 공격 징후도 없다는 점을 간파한 페트로프는 차분하게 대응, 첫번째 핵재앙을 넘겼다. 두번째 위기는 6주 뒤에 왔다. 첫번째 처럼 단순한 레이더 오작동이 아니라 소련이 무기고에서 핵탄두를 실어 미사일에 탑재하던 실제 상황이었다. 

1983년 나토군의 ‘에이블 아처’ 군사훈련 도중 소련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 대통령대외정보자문위원회의 보고서의 표지. 2015년 비밀이 해제됐다.

1983년 나토군의 ‘에이블 아처’ 군사훈련 도중 소련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 대통령대외정보자문위원회의 보고서의 표지. 2015년 비밀이 해제됐다. 

■‘레이건의 입’에서 비롯된 1983년 두차례의 핵전쟁 위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에이블 아처 83 훈련’이 진행되던 그해 11월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은 나토군 공군기들의 핵탄두 적재를 확인하고, 준전시 상태에 돌입했다. 폴란드와 동독의 공군기지에는 소련 전투기들이 비상대기했고, 헬기로 무기고에서 핵탄두를 실어날랐다. 당시 서독 람스타인 기지의 정보 담당 부사령관이던 리어나드 페룻 공군중장은 소련군의 비정상적인 무장강화 상황을 포착했다. 하지만 무시했다. 2015년 10월 비밀해제된 대통령 대외정보자문위원회의 ‘소련 전쟁공포(The Soviet “War Scare”) 보고서(1990년 2월15일자)는 이를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우연한 결정’이었다고 기술했다. 소련군의 핵무장은 정확한 정보였지만 페룻 중장이 무시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만해도 소련군의 명백한 변화를 포착할 경우 대처방안이 규범화되지 않았었다. 미군의 가짜 핵탄두를 보고 진짜 핵탄두로 무장한 소련, 이를 보고 다시 진짜 핵탄두로 무장한 미국의 대치는 끔찍한 핵충돌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컸다. 페룻이 소련군의 변화를 무시한 것은 ‘본능에 따른 배짱’이었다. 인류를 핵재앙에서 구한 페룻과 페트로프는 올해 2월과 5월에 각각 사망했다.

미국 언론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비롯해 냉전 당시의 핵전쟁 위기까지 자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과 미국 간의 말의 전쟁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가지 걸리는 대목은 1983년 두번의 핵전쟁 위기 역시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비롯됐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할리우드 B급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목하면서 자유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미·소 간에는 그 어느 때 보다 핵전쟁의 긴장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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