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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

쿠바, '카스트로 이전'과 '카스트로 이후'

by gino's 2018. 4. 22.

굿바이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권좌를 미겔 디아스카넬에게 이양한 18일 아바나 시내의 한 거리에 2016년 작고한 피델과 라울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드는 사진 포스터가 세워져 있다.  라울의 퇴진으로 60년에서 몇달 부족한 카스트로 형제의 통치가 종막을 고했다.  아바나/AP연합뉴스 


 ■혁명 이후 세대 첫 지도자, 미겔 등극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6)이 은퇴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2008년 2월 혁명 동지이자 형인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권좌를 물려받은 지 꼬박 10년 2개월 만이다. 쿠바 의회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58)을 차기 의장 후보로 단수 추천했다. 라울의 퇴장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라울의 퇴장은 혁명의 나라 쿠바에서 ‘카스트로 이후의 연대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다분히 상징적인 퇴장이다. 라울은 2021년까지 쿠바공산당 서기장의 자리를 맡게됐기 때문이다. 서기장은 쿠바 헌법에 ‘사회와 국가의 최고 지도역’으로 규정된 명실공히 최고 권력의 자리다. 당의 주요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혁명 1세대의 입김은 여전하다. 피델에서 라울로의 권력이양이 그랬듯이 이번 역시 큰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다는 전망이 많은 까닭이다. 변화가 있더라도 혁명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시나브로 올 것이라는 말이다. 


쿠바 의회에서 18일 차기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단수추천된 미겔 디아스카넬 수석부의장(사진 왼쪽 등보이는 이)이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포옹을 하고 있다. 아바나/EPA연합뉴스


 라울은 지난 6년 간 디아스카넬에게 후계자 수업을 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향후 3년여 간 후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 정치인에 불과했던 디아스카넬을 2012년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발탁한 뒤 이듬해 수석부의장으로 격상시키며 분신처럼 함께 다녔다. 그럼에도 라울의 퇴장은 한 세대의 퇴장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1960년생인 디아스카넬은 6년 전 국가평의회 부의장단(5명) 내에서 혁명 이후 세대로는 처음 진입했다. 이번에는 혁명 이후세대가 4명으로 늘었다. 반대로 혁명1세대 부의장이 1명으로 줄었다. 수석부의장에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72)이 임명됐다. 라울은 혼자 떠나지 않았다. 당 2인자인 호세 라몬 마차도 부의장(87)도 국가평의회에서 은퇴시켰다. 

 쿠바의 새 지도부에는 혁명과 변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디아스카넬과 함께 50~60대의 혁명 이후 ‘신세대’가 포진했다. 하지만 라울이 떠난 뒤에도 카스트로는 남는다. 라울의 아들 알레한드로(52)는 내무부 보안국의 총수로 건재하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관계 정상화 협상에 참여한 실세다. 라울의 사위였던 루이스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장군은 군부기업으로 쿠바경제의 40%를 점유하는 가에사(GAESA)의 대표다. 알레한드로와 루이스는 고령의 라울이 갑자기 사망할 경우 권력투쟁의 전면에 나설 후보들로 꼽힌다. 최소 7명으로 알려진 피델의 자녀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압도적인 카스트로의 영향력 아래에서 디아스카넬이 어느 정도의 활동공간을 열어가느냐가 이번 권력이양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2014년 12월20일 미겔 디아스카넬 수석부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쿠바 의회는 18일 디아스카넬 수석부의장을 차기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단수추천했다. 2년전 작고한 피델과 라울이 60년 가까이 집권했던 카스트로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아바나/AP연합뉴스 


■조용한 권력이양

 피델은 생전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거나 자신의 이름을 딴 거리이름을 정하지 못하게 했다. 라울에게도 이어진 전통이다.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와 체 게바라의 동상만 세웠다. 카스트로 형제의 59년 권력이 적어도 상징적으로 끝났지만 쿠바인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위협적 독재라기 보다는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독재였다. 쿠바의 평범한 농촌 마을 곳곳에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써놓은 ‘피델’ ‘카스트로’ 등의 낙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피델과 라울이 잘 살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나쁜 지도자는 아니었다는 평가다. 다만 쿠바 국영언론은 이날 온종일 “쿠바의 시스템은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내보냈다고 한다. 국영TV와 온라인 매체의 해설자들은 왜 쿠바의 공산당 1당체제와 사회주의 경제가 다당제 민주주의 및 자유시장에 비해 나은지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내놓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만큼 사회주의의 유지가 어려워진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좌로 보인다. 


최고지도자 지명된 디아스카넬

카리스마보다 ‘공감대 구축형’
당이념 투철 원칙주의자 면모도


 디아스카넬 새 국가평의회 의장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도 국민들의 큰 관심을 불어오지 못하는 까닭인 것 같다. 클라라주 공산당 제1서기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국가평의회 부의장에 7년 간 재임했지만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는 주로 라울의 말을 경청하거나, 라울과 진지하게 의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전자공학도로 엔지니어를 거쳐 1994년 쿠바 중부 클라라주의 당 제1서기로 공직에 입문한 디아스카넬은 카리스마형이 아니다. 여러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공감대 구축형’으로 알려졌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동성애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후계자로 지목된 뒤에는 당의 이념에 투철한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왔다. 지난해 공개된 당회의 동영상에서는 한 웹사이트가 “혁명에 반한다”는 이유로 폐쇄를 위협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취임 첫해인 2008년 5월1일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쿠바 국기가 보인다. 아바나/로이터연합뉴스


■‘혁명’과 ‘현실’의 갈림길에 선 쿠바

 거리마다 여전히 1950년대 쉐비와 포드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쿠바에서 일상은 과거 속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쿠바의 정치와 경제개혁이 속도는 답답하리만큼 느리다. 종종 2보 전진에 1보 후퇴를 반복한다. 궤적은 변화를 보여주지만,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이유다. 달걀과 감자, 화장지 등 생필품이 걸핏하면 품귀현상을 보여 원성을 산다. 이러한 불만 탓인지 최근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82.5%로 지난 40년 동안 최저를 기록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이례적이다. 많은 젊은이들은 쿠바 사회에서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노동자 4명 중 3명을 고용하는 공공부문의 평균 월급은 31달러에 불과하다. 부정을 저지르거나 해외 가족, 친지들에게 손을 벌려야 생활을 유지할 수있다. 

 소규모 창업을 해도 딱히 길이 보이지는 않는다. 쿠바 경제는 지난해 간신히 회복세로 돌았지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6%에 그쳤다. 정부는 최소 5%의 성장을 기대하지만 산업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쉽지 않다. 중국을 본받아 특별경제구역을 지정했지만 겉돌고 있다. 한때 설탕·담배·감귤류가 대표적인 수출 농산품이었지만 이제 식량의 80%를 수입한다. 

 라울의 어정쩡한 개혁을 비난하지만 개혁을 위험하게 보는 지배엘리트들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쿠바 지배층은 중국이나 베트남 엘리트들처럼 개혁개방에 대한 아무런 동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면 이를 반기기는커녕 소득격차를 우려해 개혁을 뒤로 돌리는 조치를 취하기 일쑤다. 작년 여름 신규 개인사업자들에게 주던 라이센스 발급을 잠정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만 되면 외국으로 떠나려고 한다. 2016년엔 5만5000명의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트럼프 악재

 2016년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국무부 직원 20여명이 괴상한 소리의 공격 탓에 뇌손상을 입고 본국에 돌아갔다. 아직 과학적인 이유가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양국관계를 악화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 

 쿠바 경제를 지탱하는 두개의 돈줄이 있다면 지난해 33억달러에 달했던 해외거주 쿠바인들의 가족송금과 30억달러였던 관광수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말 “쿠바 여행 자유화는 쿠바 국민이 아닌, 쿠바 정권만 부유하게 했다”면서 미국인의 단체관광만 허용하고 개인관광을 막았다. 특히 군부기업 가에사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했다. 가에사는 쿠바 내 모든 소매점 체인과 57개 호텔, 여행사, 레스토랑 등을 장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쿠바를 찾은 관광객은 470만명이었고 이중 가족연고가 없는 미국인도 60만명에 달했다. 직전 해의 61만4000여명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와 민박, 작은 음식점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상대하던 미국인 개인 관광객들은 사라졌다. 미국인들은 주로 크루즈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크루즈 이용객들이 육지에 도착하면 주로 정부기업들이 일정을 소화한다. 트럼프가 타격을 주려했던 정부기업들이 재미를 보게 된 것이다. 


쿠바 아바나 시내의 명물인 해변도로 말레콘 위에 18일 한 남자가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다. 쿠바는 '북쪽의 적'과 2015년 국교를 정상화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아바나/AP연합뉴스 


 ■'북쪽의 적', 쿠바와 북한과 미국

 쿠바의 권력이양기는 공교롭게 북한과 미국관계가 변곡점을 맞는 시기와 겹친다. 피델에서 라울로 권력이 넘어간 2008년 2월, 평양에선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이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당시만해도 북·미 관계는 곧 좋아질 것으로 보였지만 미국·쿠바 관계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북·미관계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탓에 악화일로를 걸었지만 미국과 쿠바는 2015년 국교를 정상화했다. 

 쿠바의 권력이 ‘혁명 이후 세대’로 넘어가는 지금, 북·미는 사상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쿠바와 북한은 각각 다른 역사와 경로를 거쳐 미국과 철천지 원수가 됐다. 쿠바와 미국관계가 더 정상화되기 어려웠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똬리를 튼 반공보수 쿠바인 공동체 때문이다. 1996년 헬름즈-버튼 법에는 피델과 라울의 카스트로 형제의 이름을 명시해놓고 이들이 집권하는 한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저주가 담겼다. 미국과 쿠바는 이를 뛰어넘어 국교를 수립했다. 이번엔 북한 차례가 될 지 주목된다.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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