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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찌푸린 표정'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세계 읽기

by gino's 2019. 10.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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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넌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9월17일 워싱턴의 미국 연방상원의 ‘기후변화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햇볕 아래 가는 게 두렵다. 오존 구멍들 때문이다. 공기를 마시는 것도 두렵다. 어떤 화학물질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빠와 함께 밴쿠버에서 낚시를 나가곤 했다. 몇 년 전 온통 암에 걸린 물고기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이야기다. 동물과 식물이 매일매일 멸종되고 있다. 여러분도 내 나이에 이런 걸 걱정했었나요.”

 

■ 스즈키와 툰베리, 같은 주장·다른 표정 

 

1992년 6월3일. 리우 지구정상회의장에서 12세 캐나다 소녀가 연단에 섰다. 이미 아홉 살 때 어린이환경기구(ECO)를 창립해 활동해온 세번 컬리스-스즈키였다. 또래 친구 3명과 함께 모금운동으로 경비를 마련해 리우까지 날아왔다. 회의장에 당당하게 ECO 부스를 마련했다. ‘어린 환경운동가’는 5분여 차분하고도 야무지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10대 관점에서 본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운다. 미래를 잃는다는 것은 선거에 지거나 증시에서의 몇 포인트와 다르다. 나는 다가올 모든 세대들을 위해, 또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과 멸종되는 동식물을 위해 여기 왔다.” ‘5분간 세계를 침묵케 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서 유포되는 그의 연설 동영상이다.

 

세계가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알리는 소녀의 외침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국제적인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다. 그는 여느 어린 운동가로 언론에 소비되는 것을 거부한다.

 

툰베리는 지난 9월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단에 섰다. 어린 환경운동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으며, 더 이상 어른들에게 호소하지도 않았다. 분노와 절규를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알고 있다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어른들, 공허한 말로 자신의 꿈과 어린 시절을 훔쳐간 어른들을 정조준했다. 대량 멸종의 초입에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시종 심각하고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유엔 회의장에 잠깐 들른 트럼프 대통령을 쏘아보는 툰베리의 강렬한 시선이 사진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그를 가장 분노케 한 지도자의 하나는 화석연료 경제를 찬미하면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 터이다. 그에겐 트럼프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보였을 법하다.

 

비슷한 메시지를 전혀 다른 톤으로 표출한 컬리스-스즈키와 툰베리는 27년의 세월을 두고 축적돼온 세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컬리스-스즈키가 작가인 엄마와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아빠의 영향으로 집안에서 환경교육을 받았다면, 툰베리는 스스로 온몸으로 예시(豫示)를 깨쳤다. 여덟 살 때인 2011년 기후변화 문제를 처음 접하고 왜 별다른 해결 노력이 진행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3년 뒤 8개월 동안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첫 두 달 동안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중단했다. 10㎏이 줄었다. 의학적으론 선택적 자폐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고독에 잠겨 있던 어린 영혼은 기후문제에 눈을 떴다. 툰베리는 2년 동안 집에서 ‘탄소 발자국(CO2 배출량)’을 줄일 것을 부모에게 요구했다. 완전채식주의자(vegan)가 되어 고기를 먹지 않았고 비행기 탑승도 포기했다. 딸아이의 채근에 오페라 가수인 엄마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해외공연을 포기했다.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12세 캐나다 소녀 컬리스-스즈키. 그는 지금도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집 밖에서 환경운동가가 된 것은 불과 2년도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에세이가 작년 5월 스웨덴 신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의 공모에서 선정되면서부터다. 지난해 여름 스웨덴을 강타한 200여년 만의 폭염과 기근은 툰베리를 활동가로 만들었다. 스웨덴에서만 7월 한 달 동안 60곳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결국 스웨덴 총선을 20일 앞둔 8월20일, 툰베리는 홀로 스톡홀름 의사당 앞 시위를 시작했다. 2주 동안 매일 의사당 자갈마당에 조용히 앉아 행인들에게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어른들이 나의 미래에 똥을 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힌 팸플릿을 건넸다. 동맹휴학도 제안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에 사진과 소식을 전했다. 11월 말 스톡홀름에서 테드(TED) 강연을 했고, 다음달엔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연설을 했다. 12월 유럽 270개 도시와 마을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툰베리는 매주 금요일 등교하는 대신 기후변화 시위를 벌이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단체를 만들었다. 올해는 아예 1년간 휴학계를 냈다.

 

툰베리는 파리 협약이 목표로 설정한 ‘섭씨 1.5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늦어도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방출을 급진적으로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역시 파리 협약이 설정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40% 감축 목표도 80%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유엔 회의 참석을 위해 15일 동안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넜다. 뉴욕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여행할 때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전기자동차를 제공했다. 툰베리의 외침은 반향이 컸다. 지난해 말부터 툰베리는 각국의 시위를 촉구하고, 독려한다. 행동지침도 내린다. 지난 4월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열흘 동안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단체 지도부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제안했다. 멸종저항은 옥스퍼드 서커스와 워털루 다리, 마블아치, 자연사박물관 등에서 점거농성을 벌여 11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 '툰베리 현상' vs ‘증오의 녹색화’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9월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열린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작금 포퓰리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좌파건, 우파건 기성 엘리트 정치인들이 세계화에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반이민 민족주의 정서가 넘치면서 정당한 분노와 부당한 증오가 뒤섞였다. 같은 현상이 지구온난화 관련  찬반 양진영에서도 나타난다. 기성 엘리트들이 긴급한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 진영 모두 과격해지고 있다. 기후행동을 요구하는 운동가들은 굼뜨기만 한 민주주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잠시 민주주의를 접자는 주장까지 제기한다(워싱턴포스트).

 

기온과 해수면이 올라가고 가뭄과 홍수가 많아졌다. 산불도 자주 발생한다. 깨끗한 물이 줄어들고 식량위기가 발생한다. 모두 지구온난화의 결과들이다. 극단적인 환경에 몰리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과격해진다. 지구온난화가 극단주의로 흐를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셰리 굿맨 우드로 윌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예일대 기후커넥션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에서 기후변화가 사람들 생명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면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려는 투쟁은 사람들을 절박하게 만듦으로써 종교적, 정치적 극단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행동의 또 다른 이점은 극단주의 예방이라는 지적이다. 2017년 독일 외교부 산하 연구소가 내놓은 ‘더워지는 세계에서의 반란과 테러리즘, 조직범죄’ 보고서에서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보코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가뭄만이 극단주의를 양산하는 건 아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8월 미국 엘패소의 쇼핑센터에서는 각각 51명과 22명이 살해됐다.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사건의 범인은 아예 ‘환경 파시스트(eco-fascist)’를 자칭했다.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와 함께 인구 과잉과 환경 악화를 범행 동기로 꼽았다. 엘패소 범인은 “수질오염과 플라스틱 과소비, 미국의 소비문화가 미래 세대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코 파시즘의 극단적 예들이다. 햄프셔 대학의 베스티 하트만 명예교수는 이를 ‘증오의 녹색화(the greening of hate)’로 명명했다. 증오의 에너지를 분출할 출구를 찾지 못한 인종주의자들에게 지구온난화와 늘어나는 이민자는 좋은 구실이 된다. 이러한 불만과 증오가 언제든지 에코 파시즘이라는 ‘죽음의 칵테일’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깜찍한 경고 정도로 받아들여졌던 컬리스-스즈키의 연설과 달리 섬뜩하리만큼 거칠어진 툰베리의 표정과 말에서 작금의 변화가 읽힌다. “우리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게 나의 메시지다”라는 말로 시작한 툰베리의 유엔 연설은 “당신이 어떻게 감히!(How dare you!)”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하며 어른들을 질타했다. 기후행동 반대론자들은 이마저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트럼프는 툰베리와 조우한 뒤 트위터에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소녀 같다. 보기 좋다!”고 비꼬는 데 그쳤지만, 비난자들(haters)의 표현은 더 원색적이었다. 컬리스-스즈키와 툰베리를 함께 묶어 아이들을 이용하는 좌파들의 고질적인 수법이라는 비난과 툰베리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문제 삼는 댓글이 주종을 이룬다.

 

툰베리가 글로벌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이 벌어진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거리행진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8월말 대서양을 건너온 툰베리는 한달 동안 뉴욕과 몬트리얼 등을 돌며 지구온난화 대책 마련을 위한 시위와 행사, 강연에 참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지구 전쟁’의 해방구, 대~한민국

 

툰베리의 답은 이렇다. “증오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다른 외양을 들춰낸다면 그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음을 의미한다. 또 당신이 이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스퍼거 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가끔 표준과 다소 다르지만, 조건이 충족되면 그 다름이 슈퍼파워가 된다”(8월1일 툰베리 트위터).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의 세계적 권위자 토니 애트우드는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며, 정직하고 단호하다. 강한 사회 정의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툰베리는 자신의 증상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말하는 증상”이라고도 설명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27년 전 컬리스-스즈키의 주장을 듣기만 했다. 이번에도 듣기만 할 것인지는 그들의 판단이지만 툰베리의 말대로 “변화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오고 있다”.

 

유엔 기후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9월27일 전세계에서 동시에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 시위에 수백만명이 참가했다. “또다른 행성은 없다(No Planet B)”고 외쳤다. 서울 세종로에도 500여명이 모였다. 뉴욕(32만)과 베를린(27만), 런던(15만)에 비해 다소 조촐했다. 진영 싸움에 코가 빠진 어른들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9월27일 서울 세종로에서 글로벌 기후파업(Climate Strike) 시위의 일환으로 열린 청소년기후행동 결석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지구온난화 대책을 서둘러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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