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제국을 잃었다. 그리고 아직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찾지 못했다.” 1962년 12월 딘 애치슨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내놓은 말이다. 영국은 발끈했다.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등에 칼을 꽂았다”면서 영국 국민의 분노를 대변했다. 해럴드 맥밀런 총리는 “애치슨은 지난 4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범했던 실수를 했다. 필리페 스페인 국왕과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이저 독일 황제, 히틀러 등이 범했던 것과 같은 실수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내보였다. 로렌스 프리드먼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가 지난해 포린어페어스 5·6월호 기고문 ‘방황하는 영국’에서 소개한 일화다. 돌이켜보면 맥밀런의 공개서한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였다. 

애치슨의 말은 영국이 글로벌 패권국의 지위를 상실했으면서도 아무 역할을 찾지 못하는 데 대한 조롱 섞인 권유였다. 영국은 이후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역할을 찾았기에 결국 그 권유를 받아들인 셈이다. 지난달 24일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이번에는 ‘유럽’을 잃었다. 47년 만에 유럽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과 결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정부의 성명을 인용하면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국제적 역할을 찾는 작업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지난 4일 주민들이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스페인 라리네아로 걸어가고 있다. 국경에 세관 검문소가 보인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된 뒤 첫 근무일인 이날 큰 혼란이 예상됐지만, 양쪽 모두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통제로 대체됐다. 이베리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영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유일한 육상 국경이다. AP연합뉴스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뒤의 국가적 비전으로 제시한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은 아직 백지상태다. ‘세계의 선한 세력’이자 ‘자유무역의 슈퍼히어로 챔피언’이라는 존슨의 희미한 스케치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통합의 반대는 분리다. 글로벌 브리튼은커녕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잔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스코틀랜드의 분리운동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켈트족 국가 건국의 꿈에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년 벽두부터 세계가 맞게 된 변화의 굵은 흐름은 기실, 작년 말 시작됐다. 서구 중심으로 보면 2016년 세계를 잇달아 충격에 빠뜨리며 ‘탈진실(Post Truth) 시대’를 연, 두 개의 사건이 완결 또는 정리됐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렇다. 우선 11월3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고, 영국이 EU와의 지난한 탈퇴 협상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탈퇴론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주권’을 되찾았다. 미국 포퓰리즘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재야의 시끄러운 목소리 또는 난동꾼으로 전락한 데 반해 영국에선 EU와의 결별이 제도적으로 완성됐다. ‘EU로부터의 독립’은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을 비롯해 유럽 포퓰리스트들 공통의 열망이다. ‘탈진실’은 옥스퍼드 사전이 2016년 세계의 단어로 선정한 신조어다.

지난 4년여 동안 세계는 곳곳에서 반기성권력 및 반엘리트, 반자유무역, 인종주의의 물결을 싸잡아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했다. 그 정점을 찍은 게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두 개의 충격이 어떤 형식이건 일단락이 지어진 지금,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각국 매체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더이상 새롭지 않은 일상이 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세가 종래의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2차대전 이후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권위주의 세계질서와 병립해왔을 뿐 단 한차례도 압도한적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언론이 권위주의 체제라고 집중 비난하기 이전부터 권위주의였으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럴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협상이 지난 12월 24일 타결됨에 따라 유럽연합 잔류를 강하게 요구했던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작년 1월 2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주민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제와 제도의 복원력은 만만치 않다. 트럼프가 강렬한 족적을 남겼으되, 미국은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기점으로 ‘더 나은 복원(Build Back Better)’ 노력을 통해 앙시앙레짐으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는다. 지난 6일 워싱턴의 연방의사당을 전쟁터로 만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유독 요란하게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지만,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 확정 절차를 불과 몇시간 늦췄을 뿐이다.

영국은 원래 EU에 절반만 발을 담근, 사실상의 ‘준회원국’이었다.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경제력에서 프랑스·독일과 함께 유럽의 주요 3국이지만 국가적 정체성은 지리적 위치와 늘 같았다. 유럽대륙과 대서양 건너 미국과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왔다. EU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포함한 28개국이 국경을 철폐한 솅겐협정(1995년 발효)에서 발을 뺐을 뿐 아니라 경제통합의 화룡점정이었던 유로화(2002년 통용)를 거부했다. 브렉시트를 기획하고, 국민투표에 붙인 것도 ‘영국의 트럼프’가 아니었다. 보수당 출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2015년 총선 공약이었다.

국제관계에는 전쟁과 평화의 선명한 흑백 공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각국은 적대적 공생이건, 평화적 공세존이건 ‘중간지대(middle ground)’에서 활로를 모색한다. 영국의 국가 정체성도 경천동지할 일은 없어 보인다. 유럽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더 가까이 가기도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이 벌인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리비아, 이란 핵협상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수록 국제사회 개입을 피하는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유럽과 영원히 결별한 것도 아니다. 존슨은 브렉시트 협상 종료 성명에서 “영국은 EU를 떠났지만 문화적, 정서적, 역사적, 전략적, 지리적으로 유럽에 붙어 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가 12월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화상회의에 참석해 유럽연합과 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 체결을 환영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을 읽다 보면 지리적·전략적으로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해 있되, 각국이 중간지대에서 벌어는 고민의 구조가 붕어빵처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EU는 어차피 영국이 아닌, 독일·프랑스의 마당이었다. 독·불 정상은 엘리제조약을 맺은 1963년부터 80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뒤 2003년부터 양국 장관협의체로 기능을 이관했다. 양국 정상은 유럽통합의 중요한 고비였던 1999년과 2000년엔 한해 4차례 만났고, 2001년에는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영국이 절반쯤 회원국이었던 것은, 독·불이 영국을 절반쯤 밀쳐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이 빠진 EU는 또 다른 중간지대를 모색하고 있다. 오랜만에 돈이 되는 협상이었다. 브렉시트 1주일이 채 안 된 지난달 30일, 중국과 포괄적투자협정(CAI)을 마침내 체결했다. 7년 넘게 끌어온 협정의 종결은 유럽의 선택이라기보다 중국의 결정이라는 논평이 압도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1월5일 베를린의 총리관저에서 주지사들과 회의 뒤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실상 유럽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메르켈 총리는 오는 10월 총선 이후 은퇴할 예정이다. 독일이 EU 의장국을 맡았던 지난해 중국과의 오랜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U가 중국을 ‘총체적 경쟁자(systemic rival)’로 규정한 것은 2019년 3월이다. 공식문건 ‘중국 전략 전망’에서 “중국은 기술의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이자, 대안적 정부 모델을 확산하는 총체적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안보적 위협을 추가하면 트럼프 행정부 취임 첫해 중국을 ‘수정주의 세력’이자 ‘전략적 경쟁자’라고 못 박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을 빼닮았다.

EU의 전략전망은 중국 기업과의 합작을 빌미로 한 첨단기술의 강제이전, 지적재산권 침해, 중국 시장 접근 제한 등 경제적 위협만 제기한 게 아니었다. 유럽이 지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정부 모델을 정치적 위협으로 지목했다. 신장의 위구르 주민들의 강제노동 의혹과 인권탄압도 공동대응할 갈등으로 지목했다. 유럽 각국을 떼어 내 각각 상대하는 중국의 외교관행과 차이나 머니의 위력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EU가 내놓은 기념비적 선언이었다.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의 대유행과 중국의 안하무인식 ‘전랑(戰狼)외교’는 유럽의 대중 감정에 불을 질렀다.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 합의와 달리 홍콩 보안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점을 찍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CAI 타결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관측됐던 까닭이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근본적인 차이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결코 미봉책으로 메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CAI 타결로 EU는 경제적 실리를, 중국은 외교적 성과를 나눠가졌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19년 내놓은 중국 전략전망의 표지. 중국을 경제적, 정치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단호한 대처를 다짐했지만 지난 연말 중국과 포괄적투자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제적 위협만 처리하고, 정치적 위협은 선언적인 다짐에 그쳤다. 

강제 기술이전 요구가 금지되고 중국 기업과의 합작 시 EU 기업의 투자한도를 없앴다. 유럽 기업들은 자동차와 텔레콤, 클라우드 컴퓨팅, 항공 분야에서 보다 ‘평평한 운동장’을 확보했다. 금융서비스 분야도 딱 ‘미국 수준’의 접근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위협을 일부 해결했을 뿐, 가치의 문제는 미셸 의장의 공언과 달리 얼렁뚱땅 넘어갔다. 중국은 강제 노동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는 외교적 수사만 담았다.

유럽과 중국의 CAI 타결을 바라보는 바이든 측 심사는 편치 않다. 동맹 및 우방국들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위협에 맞설 것을 다짐한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의를 기다리지 않은 게 불만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트위터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까지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가 머쓱해졌다. EU 입장에서 CAI 타결은 ‘트럼프의 유산’을 정리한 데 불과하기에 굳이 바이든의 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CAI 타결 내용은 트럼프 행정부가 작년 1월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로 챙긴 것과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다려 달라"는 설리번의 요구를 과도한 개입으로 지목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CAI 타결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전하면서 우정 ‘바이든과의 갈등 우려’를 부각한 것은 주목도를 높이려는 의도에 불과해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중국이 미국 대선 2주 뒤 아시아 14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데 이어 연말에 CAI를 타결한 것을 두고 ‘중국이 양보와 타협으로 바이든(의 계획)을 덮었다’는 헤드라인을 달았지만 역시 서구 중심의 해석이다.
 

유럽연합 홈페이지에 새로 게재된 지역 사진, 영국이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 일부 북유럽국가들과 함께 비회원국으로 표시돼 있다.  

 

중국은 자신들의 시간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외관계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서두에 인사치레로라도 나열했던 홍콩과 대만, 마카오도 등장하지 않았다. “중국이 잘하는 경제, 통상 분야는 계속 끌고 가고, 부딪히는 정치 분야는 회피하거나 우회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에 귀가 기울여진다.

시 주석은 다만, 올해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임을 상기시키며 “백년의 역정은 파란만장했으며, 백년의 초심은 오랫동안 점점 더 굳건해졌다”고 강조했다. ‘백년의 초심’에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의 개념은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변하기 전에는.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소수민족 동화정책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 및 중국과 각각 새로운 공존을 시작한 게 올해를 여는 유럽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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