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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에도 모든 길은 '베이징'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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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 예측의 순간이 돌아왔다. 도처에 ‘~할 듯’ ‘~할 것’ ‘~해야’라는 말이 넘쳐난다. ‘바이든의 미국’이 대통령직 인수 절차에 돌입하면서 빚어지는 글로벌 현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미국이 돌아왔다’라는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그런데 대체 바이든이 꿈꾸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우리에겐 갈 길을 잃은 한반도 평화의 미래가 무엇보다 궁금하지만,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최대 이슈는 ‘신냉전까지 한걸음 남은’(주펑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 미·중관계의 향방이다. 담론이 넘쳐날 때는 가장 최근에 나온 ‘텍스트’부터 챙겨 읽는 게 도움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9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시 지석의 파트너는 내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로 바뀐다. 로이터통신은 이 사진을 지난 11월 18일 새삼 전송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에도 침묵을 지켜온 중국은 지난 25일 시진핑 주석이 축하전화를 걸면서 생각의 일단을 드러냈다. 바이든 당선자가 대선 승리를 선언한 지 18일 만이다. 시 주석은 “양측 간 불충돌, 불대항, 상호존중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협력에 집중하고, 차이를 관리하자는 의미로 “협력공영의 정신으로 협력집중 및 이견조정(갈등관리)”을 제안했다. 같은 날인 24일자(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실린 푸잉 칭화대 국제전략안보중심 주임의 글은 단순한 기고문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처음 내놓은 ‘공식 입장문’(캐슬린 클링스버리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면 에디터)이다. 푸잉의 글을 살펴보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4년간 양국관계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 헤게모니를 추구한다고 믿고, 자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을 막아왔다. 일례로 중국이 경제적 의도에서 추진하는 일대일로(BRI)를 미국은 지정학 전략으로 간주한다. 화웨이와 틱톡 등 중국 첨단기술 기업들과 중국 유학생들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차단하려 했다. 관계를 일신하려면, 양측은 그동안 오인해온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세계 지배구도를 바꿀 의도가 없으니, 미국은 중국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마라.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협력’과 ‘경쟁’을 합해 상대방의 우려를 감안한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을 하자.

중국 견제 준비하는 바이든
동맹들과 연합전선 구축 피력
이·태 및 대서양 등 전열정비
시진핑, 메르켈에 ‘협력’ 강조
왕이, 한·일·동남아국가 순방
바야흐로 치열한 외교의 계절

 

시진핑(왼쪽)과 바이든

외교적 수사는 세부 현안으로 들어갈수록 미소와 발톱을 동시에 내보인다. 푸잉은 경제·기술 분야에선 중국 역시 규칙과 법률을 존중한다면서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및 사이버안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근 중국 저작권법을 개정해 위반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미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에 ‘평평한 운동장’을 제공해달라며 국가안보를 빌미로 중국 기업들을 규제하는 건 위선이라고 못 박았다.

정치 분야에선 중국도 자국의 의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외부에 제공하겠다면서도 미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습관적 간섭’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푸잉이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홍콩 및 신장위구르지역의 인권탄압은 중국 입장에서 주권 문제다.

 

가장 날선 입장은 지역안보 분야에 집중됐다. 국가통합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존중, 대만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중국 해군력 증가에 따라 미 해군의 바다였던 서태평양에 긴장이 높아진 만큼 양국 군 간 대화를 전략적 차원으로 격상해 잠재적 위기를 관리하자는 제안을 덧붙였다. 경제·기술, 정치, 안보 분야에서 양국 간 갈등 또는 차이가 분명하다면, 코로나19 방역 및 백신의 원활한 공급, 기후변화, 디지털안보, 인공지능의 거버넌스 등 글로벌 현안들은 양국 협력이 당장이라도 가능한 분야로 거론됐다.

 

푸잉의 글은 새로운 입장이 아니다. 현 단계 미·중관계 현주소와 중국의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양국이 앞으로 협의해 나가야 할 의제를 제시한 데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바이든이 구상하는 세계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상원 외교관계위원장과 부통령으로서 외교를 다뤄온 바이든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복원을 약속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통 외교노선은 동맹과 국제제도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변에는 미국 우선주의가 흐른다. 현 단계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유주의 또는 권위주의 세계질서를 도모하는 중국이다.

 

지난 11월19일 화상으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CEO 대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하고 있다. 주최국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캡처된 화상이다. AP연합뉴스

 

바이든은 지난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을 ‘각별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세계 장악력 기도, 자국 정치모델 강요, 미래 기술 투자 등 세가지를 중국이 벌여온 오래된 술수로 이해했다. “중국이 앞으로도 미국 및 미국 기업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할 경우 거칠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와 핵무기 비확산, 글로벌 보건위기 등 중국과 협력할 분야가 있지만, 미국과 동맹국의 이해를 침해하는 중국의 행동과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어떻게, 어떤 대가를 치르며 할 것인가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과 가장 구분되는 점은 트럼프가 ‘미국 대 중국’의 양자 구도로 접근했다면 바이든은 동맹 및 우호국들과 대중(對中) 연합전선을 펴겠다고 한다. 취임 첫해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연유이다. 바이든은 24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부, 국토안보부 장관 등 외교안보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동맹과 함께할 때 최강”이라고 밝혔다. 가장 먼저 달려갈 동맹으로는 유럽+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의 ‘확대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또는 ‘확대된 G7(주요 7개국) 회의체’가 예상된다. 이 중 트럼프가 돈 문제를 빌미로 ‘신발털개(doormat)’쯤으로 취급해온 나토와의 관계 복원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빗대어 ‘유럽 회귀’(제임스 트라우브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라는 말이 나오는 연유다. 바이든 보좌진의 한 명인 줄리 스미스는 최근 워싱턴 먼슬리에 “바이든이 취임 100일 내 독일을 방문, 대서양 어젠다를 재규정하는 기념비적 연설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가 2009년 6월 이집트 카이로 연설에서 이슬람권과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것과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7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마련된 당선자 사무실에서 추수감사절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이 ‘나토+α’ 연합전선을 펴려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 역시 중국 견제다. 트럼프는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역대 미국 행정부가 유지해온 대중 포용(engagement)정책을 공식 폐기한 첫 대통령이었다. 바이든 역시 방식은 다를지언정 목적은 같다. 미·중의 외교전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 대선 이후 중국 역시 독일을 가장 먼저 호출했다. 시 주석은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통화를 갖고 협력 강화를 거듭 다짐했다. 메르켈은 22일 주요 20개국(G20) 화상 정상회의 뒤 시 주석이 가장 먼저 통화한 지도자다. 이번주 서울을 다녀간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1일부터 캄보디아·말레이시아·라오스·태국·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을 돌고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국가 간에도 한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트럼프라는 ‘솔직한 대통령’을 통해 미국의 민낯을 본 세계가 바이든이 내밀 손을 덥석 잡을지 미지수다. ‘중국식 완력’에 대한 실망지수도 역대급이다.

지난달 퓨리서치 조사에서 14개 주요국의 대중국 비호감률은 일본(86%), 스웨덴(85%), 호주(81%), 한국(75%), 영국(74%), 네덜란드(73%) 등 바닥을 쳤다. 갤럽조사에서 중국의 글로벌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130개 조사국 평균 32%에 불과했다. 코로나19가 휘발유를 부었다. 미국인의 대중 비호감은 73%에 달해 지난해 같은 조사의 최악 기록(60%)을 경신했다. 상당 부분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요청에 부응해 가장 먼저 중국 기업 화웨이의 장비 사용을 중단하고, 코로나19의 발생국가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요구해온 호주가 중국의 무역보복을 당하고 있다. 자오리지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7일 화상 언론브리핑에서 "호주는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을 진작시키기 위해 무언가 (먼저)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시몬 버밍햄 호주 무역장관이 양국 간 긴장완화를 위해 내놓은 대화 제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답변이었다. AP연합뉴스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양안, 남중국해 분쟁은 물론 접경국인 인도와의 국경 교전 등으로 반중정서를 악화시켰다.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발생국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주장하자 호주산 소맥에 80%의 관세를 매겼다. 지난달 피지에서 열린 대만 국경절 행사장에 난입한 중국 외교관들은 대만 당직자들을 폭행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최고 수준의 정보를 공유하는 5개국(Five Eyes)이 지난주 홍콩 입법원 탄압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내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자오리지안)은 “눈이 찔려 장님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식’ 저주를 퍼부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봄 광저우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집과 호텔에서 쫓겨났다. 차이나 머니의 높은 이자와 중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독점 탓에 BRI를 비롯한 해외 인프라 건설 역시 곳곳에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시 주석의 ‘신형 국제관계’를 구축하는 강대국·주변국·개도국 외교의 3대 축이 모두 흔들리는 형국이다.

 

미·중 갈등이 깊어질수록 자칫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선지자들이 있다. 헨리 키신저와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등이다. 중국의 위협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설파한다. 키신저는 16일 블룸버그의 신경제포럼 개막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은 점점 대결구도로 가고 있다”면서 “(양국 간) 위험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18년 5월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독일은 바이든의 미국 대선 승리 이후 중국 외교가 가장 공을 들이는 나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반세기 동안 반복된 키신저의 논리는 다름을 접어두고 같음을 추구하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넘어서지 않는다. 시 주석과 푸잉이 축전과 기고문에서 강조한 핵심과 일치율이 100%에 가깝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애저녁에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다. 개혁개방과 천안문 사태 등을 거치면서 한편으로 중국을 이해하고, 한편으로 긴장을 완화해온 결과를 이미 미국민은 물론 세계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 ‘신냉전’은 지난 세기 미·소 간 냉전과 달리 주전선이 군사부문이 아니라 경제부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는 아직 이삿짐을 싸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백악관에서 어떤 ‘잡음’을 내건, 세계는 이미 외교의 계절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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