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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한반도정책?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이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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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1999년 9월2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신 친구 김대중은 (나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났나요.”(조지 W 부시 대통령)
“노벨평화상을 받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끈 그 사람 말입니까? 그는 나의 친구가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조 바이든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07년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들(Promises to Keep)>에서 소개한 이야기다.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회동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이 내뱉은 ‘이 사람(this man)’이라는 말이 언론에 회자됐지만 기실, 공산주의를 불신하는 부시가 햇볕정책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동시대 민주당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열렬한 지지자였다. DJ와의 인연은 그가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아 미국에 체류하던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의 장신기 박사가 지적하듯 “역대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한국과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미국 대통령”이 탄생하게된 것은 맞다.

미국 대선 이후 내년 1월20일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 국내에선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넘실댄다. 우려는 ‘오바마 3기 행정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는 ‘클린턴 3기 행정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각각 연결돼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하에 임기 8년 동안 한반도 문제 해결 노력조차 하지 못했던 버락 오바마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빌 클린턴 행정부가 임기 말 끝내 이루지 못했던 평양방문과 북·미 관계정상화의 수순을 밟을지는 현 단계에서 미지수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이른바 진보’ ‘이른바 보수’ 모두, 구미에 맞는 기억만 편식한다는 점이다. 바이든과 DJ의 인연만 새삼 부각되는 게 아니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92)도 소환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2월 8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당선자 사무실에서 보건부 및 코로나 대응팀 인선을 발표한 뒤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지난달 18일 페리와 3자 화상 간담회를 가졌다. 통일부가 짤막하게 내놓은 보도자료는 페리의 발언내용을 인용부호 없이 소개했다. ‘북한의 핵 능력 진전 등 당시와 상황은 변했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한·미 공동으로 한층 진화된 비핵화-평화 프로세스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페리는 최근 몇년 동안 일관되게 외교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해결할 기회는 이미 놓쳤다는 입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가 지난 2일 공동 주최한 화상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한 페리의 발언내용을 보고 더욱 짙어진 통일부의 편집 의혹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페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협상대표가)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임무’이다. 그 전제에서 출발하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페리는 북한의 핵보유 목적은 궁극적으로 체제 안전보장이기에 다른 무엇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normalization)’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론을 거듭 펼쳤다. 페리가 낙관한 것은 남북한이 협력해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 뿐이다.

페리가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아닌,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구도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북한의 오랜 숙원이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4가지 합의 중 제1항으로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을 앞세웠다. 페리 역시 클린턴 행정부에 내놓았던 ‘대북정책 재검토 보고서(페리보고서)’에서만 해도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을 없애려고 움직인다면, 미국은 대북 관계 정상화를 하고, 교역을 막아온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기밀해제된 페리 보고서의 표지

미국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관계정상화를 하면서 해당국가의 정상국가화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 중국과 베트남이 궁극적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 또는 기대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수교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없었다. 북한이 핵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 조약체결권을 쥔 상원을 설득해 대북 관계 정상화를 시도할 미국 대통령은 없다.

페리의 한반도 내비게이션은 그 자신이 페리보고서에 쓴 대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상대해야 한다”에서 출발한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은 페리 프로세스가 만들어지던 1990년대 말의 북한이 아니다.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던 단계에서 나온 게 페리 프로세스이다. 북한은 이제 핵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이다. 페리는 “북한은 이제 미국이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제안하든 ICBM을 실전에 배치할 때까지 시험발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몇년 내 수소폭탄을 포함한 핵무기를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실어나를 능력을 갖게 될 것”(2017년 5월 미국군축협회 언론설명회)이라고 본다.

페리가 가장 방점을 두는 대목은 비핵화 외교가 아니다. 핵전쟁의 방지 또는 위협 감소다. 한반도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말의 전쟁이 재래식 전력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핵전쟁 위협을 높이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본다. “창조적이고 진지한 외교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목표는 북한의 핵포기가 아닌, 핵전쟁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국내 일각에선 바이든 정부를 설득해 북·미 협상을 진작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페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외교 상대국으로 꼽은 나라는 북한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산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동맹국들이 미국의 확장억지력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이다. 바이든이 포린어페어스 올해 3/4월호 기고문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 “미국의 동맹국들과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와 함께 지속적이고 조율된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중첩된다. 바이든은 비확산·핵안보 정책으로 “트럼프는 이란에서 북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새로운 핵무기 경쟁은 물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여놓았다”면서 그 해법으로 ‘새로운 시대의 군비통제(arms control for a new era)’를 제시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성공한 비핵화의 사례는 1990년대 구소련 국가들의 핵무기를 제거한 협력적위협감소(CTR)와 오바마 행정부가 타결지은 이란핵합의(JCPOA)의 두개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두 가지 방식의 성공적 요소를 담으려는 노력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니 블링큰 국무부 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이 JCPOA 협상에 참여했었다는 점에서 북핵에 적용 여부가 새삼 주목받는 해법이다.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장관 내정자가 국무부 부장관 시절인 2015년 10월6일 한국을 방문, 서울 도렴동 청사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CTR과 JCPOA에 모두 참여했던 어니스트 모니즈 전 에너지부 장관은 2년 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상을 “복잡하지만 단계별로 협상에 착수해 매 단계 검증의 기준(bar)을 높여가면서 실질적인 합의서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비핵화의 골격은 핵실험시설-핵물질-핵무기를 순서대로 제거하는 3단계이며, 각 단계마다 다시 몇개의 작은 단계로 나누어 협상하는 것이다. 핵물질은 생산중단-불가역적 전환-제거의 작은 3단계를 다시 거치는 식이다. 끊임없는 협상과 그에 따른 합의를 쌓아가면서 각각의 합의를 토대로 완성도를 높여간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협상에 착수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현란한 리얼리티 쇼 대신 우리가 보게 될 상향식 협상의 지루한 게임이다. 한국·일본·중국·러시아의 역할은 북·미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다국적 합의에 포함된다.

바이든이 해야 할 일이자,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남북관계 개선을 도울 길은 묘연하다. 바이든은 대선을 앞두고 연합뉴스에 보낸 10월29일자 기고문에서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으로 내놓았다. 그 ‘원칙’엔 동맹우선만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법과 규범이 앞세워져 있다. 북한과 관련한 미국의 법과 규범에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독자제재가 필연적으로 포함된다.

바이든은 지난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조건부 제재완화 요구를 거부했던 트럼프와 달리 북한이 핵능력을 감소시킬 경우 제재완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입장도 바이든이 돌아갈 전통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다음달 초 치러질 조지아주 상원의원 2명 재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해야 쉬워진다. 미국의 수많은 대북제재법 중에서 ‘대북 제재·정책 강화법(2016년)’을 예로 들면, 대통령에게 대북제재를 보류 또는 해제할 권한을 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재를 풀려면 모든 대량살상무기 및 운반수단 폐기의 진전, 정치범 전원 석방, 평화적 활동 검열 중단, 개방·투명·민주적 사회 구축 등의 조건이 충족됐음을 의회에 입증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북한 최고 영도가 결단해야 할 대목이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지난 11월18일 화상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일부 제공

더 궁금한 건 바이든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확인해야할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정치적 용기다. 지난 4년 동안 숱한 ‘서정적 무대장치’ 위에서 내놓았던 약속들이 현재 어떤 지점에 있는지,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재검토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미국의 제재 완화를 걸기대하기 보다 우리의 대북 제재를 움직이는 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다.

막연히 희망을 지피는 남북관계의 치어리더 역할은 민간단체와 운동가들에게 맡겨도 무방하다. DJ를 존경하고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상원의원 바이든’이 아니라 ‘대통령 바이든’이다. 북한 역시 20여년 전의 북한이 아니다. 이 점에서,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국장으로 바이든 위원장을 보좌했던 프랭크 재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의 조언(11월17일 여시재 대담)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적합하지 않은 역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남북 협력을 촉진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다만 안보 딜레마 해소를 돕고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파트너는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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