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한 뒤 3주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여러 ‘꼬마 동맹’을 탄생시켰다. 지역적으론 거반 전 세계를 다루었고, 분야별 현안을 총망라한 A4용지 5쪽이 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회담 뒤 발표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 공동성명’에 비해 정확히 1쪽이 더 많다. 만기친람식 광폭 성명이었다.
한·미관계가 공간적으로 넓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는 걸 반대할 필요는 없다. 로컬 동맹이 글로벌 동맹으로 바뀌었으며, 기왕의 군사동맹에 더해 경제동맹, 기술동맹, 기후동맹, 코로나19 백신 동맹, 우주개발 동맹, 라틴 아메리카 개발협력 동맹은 물론 메콩 지역 수자원 관리 동맹, 여성폭력 반대 및 여권 신장 동맹이 시작된 원점이 될 수도 있다.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방책이 괄호 속에 놓인 대신, ‘중국으로부터의 가상 위협’에 대한 백화제방식 논리가 나오고 있다. 임기 말에 이르러 문재인 정부의 대중정책이 U턴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정상회담 뒤 외교안보팀이 말을 주워담는 걸 보면 그것도 분명치 않다. 일단 ‘중국’을 입구로 드넓은 성명서 안으로 들어가본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정책이 U턴했다는 논평은 과거에 없던 내용이 담긴 데서 비롯된다. 대만해협이 적시되고 한·미 미사일지침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 그것이다. 대만해협 문제는 “두 대통령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한 문장이다. ‘통합적이고, 자유로우며 개방된 인도·태평양’과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 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이 존중되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과 함께 한 단락을 구성한다. 대만해협 부분엔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주체가 없다. 분쟁지역이라는 표현도 없이 평화·안정을 바란다는 기대만 담았다. 하지만 중국은 이 대목을 놓치지 않았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이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보전에 관해서는 어떤 외세의 간섭도 허용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관련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불장난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표현이 거칠기로 정평이 난 그로선 완곡하게 원칙을 확인한 셈이다. “남중국해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도 말했다. 인·태 전략은 ‘타국을 겨낭한 4자(4국)체제이자 작은 틀’이라는 말로 거부감을 표현하는 데 그쳤다. 정작 중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지침 종료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사일지침 종료에 대한 백악관 성명을 직역하면 “미국과의 협의에 뒤이어, 한국은 개정 미사일지침의 종료를 발표하고, 양 대통령은 그 결정을 인정했다”이다. 순서상 ‘협의’가 먼저이기에 해석에 따라 지침 종료를 누가 주도했는지 분명치 않다. 한·미는 2012년 미사일 사거리 300㎞에서 800㎞로 확장, 2017년 탄도중량 제한 전면 폐기에 이어 지난해 7월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풀었다. 이번 지침 종료로 이론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중장거리미사일(IRBM)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가능해졌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국 정부는 미사일지침 종료 의미를 민간부문에 제한하고 있다.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기고문 형식으로 ‘미사일 주권 회복’을 띄우면서도 민간 우주개발의 전환점이 됐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외교부는 27일 한국이 미국 주도 유인달탐사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 약정’의 10번째 가입국이 됐다고 당일 발표했다.
문제는 우주개발 기술과 미사일 기술이 비슷하다는 데 있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 초기에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강조하며, 한사코 ‘미사일’이 아닌 ‘로켓’을 발사했다고 강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침 종료는 단순히 사거리 제한만 없앤 게 아니다. 민수용 로켓 기술의 군용 적용 제한 및 발사장 제약도 풀었다. 우주개발 로켓을 개발하면서 획득한 기술을 미사일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고정 발사체에 국한됐던 발사장 역시 차량을 이용한 이동 발사체 또는 해상 발사체로 선택지가 늘었다. 이론적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도 가능해졌다.
한국은 지침 철회 전부터 “우리 안보에 필요한 사거리 범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위력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국방과학연구소). 그렇다면 이번에 ‘우리 안보에 필요한 범주’를 넘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의 미사일 주권 회복이 동북아 군사균형에 제기하는 파급력은 상황에 따라 심대하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각국 국방전략가들의 머리가 복잡해질 것은 분명하다. 북핵보다 더 큰 범주에서 동북아 안보의 뇌관이 미사일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부터의 위협’에 가장 먼저 놓일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여전히 군사력에선 미국에 맞설 상대가 못 된다. 그 약점을 알기에 ‘반접근/지역거부(A2/AD)’를 방위전략 골간으로 삼는다. 미 해군의 해상 접근 차단 및 한·일·괌 미군기지에 대항할 무기는 DF(東風) 계열 미사일들이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미사일은 그나마 방어용이지만, 한국 내 IRBM은 미군의 것이건, 한국군의 것이건 공격용이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관측통들의 의견을 소개하며 한국이 최대 사거리 1000~1500㎞의 중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SLBM 및 초음속 무기 개발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9월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파기를 선언하자마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몇달 내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 희망한다”고 속내를 드러내자 중·러·북한은 거세게 반발한 바 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과 일본 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해당 지역 주둔 미군과 동맹국 방어를 위한 것”이라며 배치 예정지를 아예 한·일로 구체화했다. 푸충 중국 외교부 군비통제국장과 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군비통제 담당 차관은 각각 회견을 열고 대응조치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북한은 한국에 ‘스스로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자멸행위’(조선중앙통신)라고 거들었다.
국내에서 ‘미사일 주권 회복’의 명분에 동의하면서도 위협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미사일 전력의 변화가 주는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미국의 생각은 대중국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한국에 아웃소싱하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한국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긍정론도 제기된다. “한국의 자주국방과 안보에 도움이 되는 큰 진전”(김진호 단국대교수)이라는 평가에서부터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적 긴장이 없는 현 상태에서 한국이 IRBM을 개발할 명분도, 이유도, 용기도 없지 않은가”(익명의 관측통 A)라는 불필요론도 제기됐다. “한국 정부가 보수이건, 진보이건 한반도를 넘어선 군비경쟁에 들어가면 감당이 안 된다. 국토 방위에 충분한 정도의 군사력만 가져야 하지 않나”라는 현실론(익명의 관측통 B)도 나왔다.
중요한 사실은 분단과 동맹에 묶인 특성상 중요한 선택이 우리 손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상회담 이전부터 미국 내에서는 한국 미사일 능력의 활용을 눈여겨보는 시각이 있었다.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사일 위협’ 연구에서 “남북한의 패러다임을 떠나 한국의 미사일 프로그램은 중국의 A2/AD 전략에 대항적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드 배치 뒤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지원 등의 전례를 소개하면서, 한국 관료들의 낙관적인 대중관은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으로부터의 미래 위협에 한국의 정교한 미사일 능력은 중요한 ‘쐐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연구자들의 관심으로 돌릴 사안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과 거의 동시에 러시아와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을 연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한 INF 조약을 되살릴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참가 또는 중국 중거리 핵전력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맹국의 반발을 야기할 미군 IRBM의 한반도 배치보다 한국군의 IRBM 개발은 미국 입장에서 외교적 리스크가 없는 대중 방책이 될 수 있다. 탈냉전 뒤 지역 방위를 지역 국가들에 위탁해온 미국의 장기전략과도 부합한다. 물론 가까운 시일 내 미국이 한국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압박할 가능성은 적다. 현재로선 한국은 ‘주권’을 회복하고 미국은 유사시 대중 압박 카드를 챙긴 정도 의미를 갖는다.
중국 정부가 침묵하는 가운데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24일자 한·미 정상회담 보도에서 미사일지침 종료의 의미를 짚었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분노를 야기하고 한반도 및 동아시아 긴장을 강화할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중국 내 인지도가 상당한 펑파이뉴스(澎湃新聞)는 27일 ‘한국 미사일 우리를 향해서? 중국 도시 사정권에’라는 심층기사에서 “한국이 (당장 미사일) 연구개발은 하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비해 관련 기술을 축적하는 걸 고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의도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 미국 편을 더 들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한국의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켜 미국의 대항 비용을 낮추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이미 중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미사일지침 종료만을 갖고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응논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장기간 이 문제를 고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거주민들이 목을 빼고 기다려온 평화의 밑그림은 희미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한국군 55만명 코로나19 백신 지원으로 올해 중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한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될 가능성이 생겼지만, 미지수다.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희망고문’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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