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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무기의 정치학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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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오스타체프스키 주한 폴란드 대사가 10월 29일 경남 창원시 한화디펜스에서 열린 K9 자주포의 폴란드 수출 출고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2022.10.19  연합뉴스

 

'올해 방산 수출 수주액 170억 달러 달성.' 

국방부가 지난 11월 4일 내놓은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자료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 군비청과 230㎜급 다연장로켓 'K239 천무'의 1차 계약을 체결한 것에 맞추어 방산수출액이 기록을 세웠다고 홍보했다. "한국이 방위산업에 뛰어든 1970년대 이후 최초로 이룩한 쾌거"라고 강조했다. 

폴란드가 한국에서 수입키로 한 무기는 천무 외에도 K2 전차와 K9 자주포(8월), FA-50 훈련기(9월) 등 올해 계약액만 124억달러에 달한다. 교역 측면에서 본다면 획기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기는 냉장고나 자동차, 컴퓨터 처럼 여느 공산품이 아니다. 무기 수출이 특정 국가와 적대적 관계를 시작하는 도화선이 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얽힌 지정학적 분쟁 속에서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 지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K-방산의 개가"라며 만약 반기고 끝낼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폴란드→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무기 루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 러시아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등장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 군의 침공 이후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3% 수준으로 끌어올려 자체 무력을 강화하는 한편, 올해 1월부터 7월 말까지 우크라이나에 두 번째로 많은 군사장비(18억 유로 상당)를 제공한 국가다. 독일의 키엘 세계경제연구원(IfW)에 따르면 1위는 미국(24억4000만 유로), 3위는 영국(10억 유로)이다. 

한국이 올해 폴란드에 수출키로 한 K2 전차가 10월 19일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에서 열린 한미연합 도하 훈련에서 부교를 건너고 있다. K2 전차는 한국이 1990년대부터 '불곰사업'을 통해 러시아에서 들여온 T-80탱크 기술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다. 2022.10.19  연합뉴스

 

폴란드는 지난 8월 현재 T-72 탱크 230여대와 크랩 자주포 18대, 수 미상의 피오룬 휴대용 대공 로켓, 소총 등을 공급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무기는 바르샤바조약국 시절부터 보유했던 낡은 무기 또는 피오룬 휴대용 대공 로켓과 같은 최신 국산무기 등 두 개 범주로 나뉜다. 

어떤 경우라도 줄어든 무기 비축고는 미국과 서방에서 도입하는 첨단무기로 채우고 있다. 한국이 155㎜ 포탄을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이 자국 포탄을 우크라니아에 전달하는 것과 같은 구조인 것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군이 병력을 증강하던 지난 1월 31일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2월 17일에는 영국-폴란드-우크라이나 3국협약을 통해 무기 제공 약속을 거듭 강화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침공 하루 전인 2월 23일 키이우를 찾아 연대와 지지를 다짐했고, 다음날 폴란드 하원(세임)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두다 대통령은 11월 11일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행동은 폴란드의 독립을 보호하는 것"이라면서 두 나라가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했다. 

'K-방산기술'의 숨은 기여국은 러시아

폴란드는 한국 무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임을 내놓고 밝히고 있다. 마리우스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은 지난 10월 20일 천무 도입과 관련한 PAP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포와 로켓의 중요성을 입증했다"면서 강조한 바 있다. 

폴란드군 병사들이 11월 2일 러시아의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 접경지역에서 철조망을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해 군비를 대폭 확장하고 있다. 2022.11.2 연합뉴스

 

폴란드는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와 맞대고 있는 232㎞의 국경 경비를 대폭 강화해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는 아직까지 한국의 폴란드 무기 수출에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0월 27일 발다이 국제회의에서 공개 경고한 것도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탄약 지원'에 국한됐다. 하지만 우리 국방부가 "1970년대 이후 쾌거"라고 자랑하는 폴란드 무기 수출의 연원을 보면 아이로니컬하게도  러시아의 군사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무기 개발이었다. 

특히 폴란드에 넘어갈 K-2 전차는 1990년대 이후 한·러 간에 시행된 '불곰사업'으로 러시아가 한국에 제공한 T-80 탱크 덕에 개발이 가능했던 무기다. 우리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무기를 도입하는 미국 방산업체들과 달리 러시아는 군사기술의 이전에 관대했다. 천궁, 신궁 미사일 개발도 러시아에 빚을 졌다. 러시아 무기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북한군 교리 및 교범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을 줬다. 

푸틴 대통령은 발다이 회의에서 한국에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를 강조한 바 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군사기술로 개발한 무기로 한국을 겨누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를 설정한 경고로 읽힌다.

북·러 협력 깊어지면, 한국의 선택지는 무엇인가

분단 이후 러시아 군사기술을 먼저 도입한 나라는 북한이다. 핵프로그램과 KN-23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체계의 원천기술을 빌어왔다. 옛소련 붕괴뒤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군사지원을 했는 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푸틴의 경고에는 지원할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어떤 경우라도 러시아의 적성국인 폴란드로의 무기 수출은 한반도 평화의 핵심 당사국의 하나인 러시아를 사실상 적대국으로 돌려버릴 가능성을 담고 있다. 

폴란드 무기수출은 경기침체가 심해지는 한국 경제에 희소식이다. 하지만 전쟁 와중에 판매한 무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들고 있는 폴란드제 MSBS Grot 소총. 폴란든는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분량의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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