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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s

북한자료센터 정광채 사서관

by gino's 2012. 2. 23.

“탁 트인 북한도서관은 언제쯤…”

광화문우체국 6층에 자리잡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욕쟁이 아저씨’가 있다. 통일부 직원이면서 북한자료센터의 터주대감인 정광채 사서관(60).

북한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문서나 책자를 마치 바이러스처럼 여기던 시절부터 28년 동안 ‘불온자료’를 취급해왔다. 북한 또는 통일문제 전문가 가운데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철저히 무대 뒤편에만 머물러왔다. 오는 6월 정년퇴임을 맞는 그는 남북관계 변천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책을 통제하는 건 야만스러운 짓

통제된 자료와 함께 청춘을 보낸 그가 입이 걸은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귀결인지도 모른다. 과거 공개할 수 없는 북한자료를 요구하는 학생과 언론인, 연구자들로부터 자신이 숱하게 욕을 먹은 탓이다. 하지만 입이 걸다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을 댓바람에 거칠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참새가 방앗간 들락이듯 자주 찾아와 자료를 들추는 ‘될성부른 싹’을 발견하면 스스로 길라잡이를 자청하면서 허물없이 대하다보니 말을 편하게 한다. “이자식, 공부도 안하고…” 정도는 예사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국내에서 북한공부를 하려면 정 사서관의 손때가 묻은 자료를 일일이 찾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욕을 얻어먹던 젊은이들이 박사나 교수가 된 뒤 “선생님 덕분에 좋은 논문 썼습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오거나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건네면 그는 대책없이 황홀해진다. 물론 못마땅한 경우도 있다. 어쩌다 북한 전문가랍시고 TV에 나와 말을 하다가 잘못된 정보를 인용하는 것을 보면 혼잣말로 ‘저 친구, 자료도 제대로 안보고...’라고 중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한 실향민 노인은 종종 정사서관의 자존심을 뭉개곤 했다. “내가 평양에 살 때는 지명이 저렇지 않았는데…. 통일부 자료 수치들이 엉망이구만 그래.” 핀잔을 듣고 부아가 치밀어 “노인네가 뭘 안다고..”라며 대거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치와 고유명사를 중시하는 그로서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술 친구가 됐던 노인은 얼마전 79세로 타계했다.

금단의 자료를 다루는 그는 늘 보려는 의지와 보여주지 않으려는 권력 사이에 낀 경계인이었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80년대에는 ‘김일성 강의록’ 같은 자료가 발견되면 가장 먼저 닦달받게 되는 게 우리였죠”. 한번은 공안기관에 붙잡힌 학생이 불온자료를 “통일부 자료실에서 얻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경을 치렀다. 물론 그가 유출한 것은 아니었다. 조사 결과 그 학생은 열람만 허용되고 복사와 대출이 안되는 자료를 일일이 옮겨 적어 복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책을 갖고 국민을 통제하려는 것은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해외에선 뻔히 구입할 수 있는 자료를 국내에서만 통제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일이었다.

자료수집 과정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북한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하는 전문업자들도 생겼지만 과거에는 만만치 않았다. 한번은 임진강에 떠내려온 한 초등학생의 가방에서 발견된 교과서를 자료실에 갖다놓기도 했다.

‘불온자료’로 불리던 북한정보는 지난 1989년 5월 센터 개소 이후 ‘특수자료’로 공식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불온’에서 ‘특수’로의 변화가 내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반도 분단시절 수집, 분류된 북한자료는 역사의 기록일 뿐입니다. 불온이건, 특수건 꼬리표를 붙일 대상이 아니죠”. 대학마다 북한학과가 늘어나고 주말이면 북한영화를 단체관람하려는 중·고등학생으로 센터가 북적이지만 아직도 북한자료를 보는 데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센터에 들어갈 때 우선 신분증을 맡겨야 하고 기관장의 인가장이 있어야 복사·대출이 가능하다. ‘특수자료 취급규정’ 때문이다.

역사기록에 불온·특수 꼬리표 안돼

북한자료가 일부나마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세월을 보낸 그에겐 꿈이 한 가지 있다. 통제된 상태에서나마 열심히 수집하고 분류해서 언젠가 번듯한 ‘북한 도서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꿈과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 직원 26명의 정보자료'국(局)'이었지만, 달랑 6명 만 남았다. IMF 시절을 보내면서 구조조정의 첫 대상이 된 탓이다. 430평(열람공간은 120여평)에 불과한 현 센터 공간마저 우체국 측에서 ‘방’을 빼주기를 원하는 눈치여서 불안한 상황이다. “북한 도서관은 고사하고 갈수록 짜부러드니…”.

미국은 퇴직 대통령들마다 기념관을 마련해 수북이 자료를 쌓아놓고 있다. 미테랑이 건립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지상의 볕 잘드는 공간을 모두 자료에 내주고, 사람들은 지하실에서 책을 본다. 그만큼 역사의 기록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분단 반세기의 자료들 역시 한민족이 끝까지 끌어안고 가야 할 우리 역사의 한 연대기다. 은퇴하는 사서관의 눈에 비친 우리 당국의 의식수준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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