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긴급 의료체계는 잘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체계도 필요없죠.”
북한에서 소아과 한의사로 일하다가 탈북한 김지은씨(38·여)는 27일 평북 용천역 참사 현장에는 소독제와 항생제 등 구급약품뿐 아니라 적절한 영양공급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진의대 동의학(한의학)과를 마치고 7년 동안 병원근무를 하다가 2003년 2월 서울에 정착한 그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아이들이 기본 소독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는 사진을 보니 안타깝다”면서 “한시라도 빨리 기초의약품이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전한 북한의 의약품 실태는 심각했다. 링거병이 없어 사이다병이나 맥주병을 사용하며 그나마 병이 부족해 환자들이 사용한 병을 반납해야 한다. 약솜은 펄프를, 붕대는 창호지를 잘라서 대용한다.
특히 대형사고 직후 수요가 많은 외과수술의 경우 피가 모자라 아까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소아과에 근무할 때 피가 없어 어린 환자가 사망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고 전했다. “어렵사리 채혈을 한다고 해도 냉장시설이 부족해 보관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심각하던 1994년 소아과에 근무했다는 그는 “아이들은 날씨가 더워지면 가장 치명적인 질환이 설사”라며 “장기 치료를 요하는 경우 위생적인 식수 제공이 긴요하다”고 전했다.
용천역 사고 부상자 중 병원 입원환자가 적은 데 대해 그는 “병원시설도 부족하겠지만 병원에 식량이 보급되지 않아 하루 세끼 먹이는 게 더 힘들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급조치 단계가 지나면 적절한 영양보충과 따뜻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북한에선 의사 1명당 800~1,000명의 주민을 맡아 평시에도 매일 순회왕진을 하는 등 긴급 및 예방치료 체계가 잘 돼 있다”면서 “이번에도 많은 의사들이 집에 있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치료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