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다수가 명단 공개를 원치 않는다"라던 집권여당 원내대표
"명단 공개에 분노한다"면서 '무도한 정치 행위'라던 비대위원장
국회 국조특위 간담회 집단 결석이 "우리에겐 패륜"이라는 유가족
누워 뱉은 침만 제 얼굴을 더럽히는 게 아니다. 맞바람에 내뱉은 침도 제 얼굴을 적신다. 이태원 참사 한달이 지나면서 집권 국민의 힘 수뇌부가 내놓은 언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11월 14일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발표하자 원내대표 주호영은 "유족들 다수가 명단 공개를 원치 않는다"면서 "패륜적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위원장의 말을 이행했다고 단정하는가 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란 말조차 그들에겐 너무 관대하다"며 통분했다. (15일, 국회 원내대책회의)
당 비상대책위원장 정진석은 "명단 공개에 분노한다"면서 "언제부터 한국정치가 잔인하다 못해 무도해졌나"라고 반문했다. (15일, 자신의 페이스북)
명단 공개 직후 사회 일각에서 유가족 동의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이 제기됐다. '내뱉은 침'이 잠시 체공하던 시간이었다. 이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마에 폐수 버리듯 저주의 언어를 방출했다.
정작 장례를 마친 유가족이 얼굴을 드러내고 책임자 처벌 및 공식 사과를 요구하자 이들의 이태원 관련 언급은 급속히 줄었다. 당 차원에서는 일관되게 '정쟁론'을 밀어붙이고 있다. 당 대변인실이 11월 이후 내놓은 이태원 참사 관련 논평 3개는 100% '정쟁'을 요지로 했다. '이태원 추모인가, 이재명 추종인가?(11월 6일)' '이태원 참사, 정쟁이 아닌 진실과 책임의 시간이다(11월 27일)' '민주당에게는 이태원 참사도 정쟁의 도구에 불과했다(11월 30일)'에서다.
12월 1일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연 유가족 간담회 자리에 국민의 힘 의원들은 집단 결석했다. 비대위원장은 다음 날 뜬금없이 광화문 광장을 찾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언급했다. 한국-포르투갈 전을 앞두고 광장에서 벌어질 거리응원의 안전을 한껏 걱정한 자리였다. 그는 "(이태원 참사는)너무나도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지만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듦으로써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대위원장이 그토록 걱정한 '붉은악마 시민'의 규모는 3만명 정도로 예상된다. 일선 경찰에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분골쇄신해달라고 당부한 광화문광장은 총면적이 4만300㎡(1만 2000여평)이다. 사고 당일인 10월 29일 밤, 13만명이 오간 이태원, 특히 158명의 청년들이 압사당한 해밀턴호텔 옆골목의 경사진 길바닥은 채 20평도 되지 않는다. 그 시간,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책임을 규명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한사코 귀를 닫으면서 드넓은 광장의 안전을 챙기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하다.
1일 국회 간담회장에 나온 한 유가족은 텅 빈 국민의 힘 의원 좌석을 보고 "이게 상식이냐, 이게 우리한테는 패륜"이라고 절규했다. 이제 원내대표가 답할 시간이다. 명단 공개를 원치 않았다는 유족 대다수가 누구인지 그 근거를 밝히길 바란다. 또 무엇이 패륜인지 설명하길 바란다.
갈수록 차가운 바람이 거세진다. 그들의 입에서 태어난 '패륜'과 '무도한 행위'라는 말은 지금 어디에 들러붙어 있을까. 지난 30일자 박정하 수석대변인 논평의 마지막 문장을 곱씹어 보길 권한다. "역사에 짓고 있는 죄를 어찌 씻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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