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사강국화' 기시다 안중에 한국은 없었다 < 외교안보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나의 결정은 요시다 시게루와 기시 노부스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잇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의 하나이다."
지난 13일 백악관 미·일 정상회담에서 군사강국화를 공식 선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말이다.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 뒤 같은 날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연설에서 자신의 외교 구상을 털어놓았다. 기시다의 심중을 살피는 데 요긴한 텍스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의 정세 인식
요시다는 1951년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한 주인공이다. 기시는 1960년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일방적으로 지켜주는 것을 약속한 기존 조약을 일본도 유사시 미국을 지원하겠다는 쌍방향 조약으로 개정했다. 아베는 2015년 안보법제를 제정, 집단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했다. 역사적인 결정을 했다는 기시다다. 그의 외교노선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시다는 SAIS 연설에서 '신시대 리얼리즘 외교'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정책을 설명했다. '현실외교'는 국방력이 뒷받침된 외교를 말한다. 지난해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면서 먼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일본에 '진실의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행위를 방관하면 같은 일이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두 번째로 지난달 16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 증강계획 등 3개 안보문서의 개정을 꼽았다.
기시다는 주요 7개국(G7)을 중심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同志國家)'과의 관계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오세아니아의 개도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등 3개 관계를 축으로 삼았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 중에서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일본·인도 간 '특별 전략적 글로벌 동반자 관계'를 특정해 강조했다.
이중 현시대 정치력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로 중국과의 관계를 꼽았다.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비전과 주장은 일본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일본의 총체적인 역량과 동지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중국과 상생할 협력방안을 논의할 수있다고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일·중 정상회담에서 인민해방군의 동중국해 군사활동에 우려를 표명한 사실을 강조했다.
요시다→기시→아베의 계승자 자처
기시다는 '안보 외교'의 무대를 전 세계로 넓히면서도 가장 가까운 한국을 특정하지 않았다. 장문의 연설문 중 '동지국가'의 하나로 뭉뚱그린 게 아닌가 싶다. 한·일 간에는 협력에 앞서 강제동원피해자 문제와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비롯한 현안이 쌓여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의 군사강국화는 우리에게 협력요인과 함께 위협요인을 동시에 내놓는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공조는 협력요인이다. 하지만 일본 군사력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 방위와 연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전범국가라도 독일과 일본은 다르다. 나치의 과거를 근원적으로 차단한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에 나선 것을 경계하는 유럽국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여전히 욱일기를 휘날리며 혐한, 혐중 정서를 내비치는 일본의 부상은 차원이 다르다. 주변국의 민족주의 에너지를 끊없이 자극하는 원천이기에 '가치를 공유하는 동지국가'와 공존하기 어렵다. 남북한과 중국이 드물게 공유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 한, 영국이 유럽 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글로벌 브리튼'을 외치고 있듯이 일본은 기시다가 아무리 글로벌 저팬을 외친다고 해도 동아시아에서 영원히 표류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 국방력을 증강하면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의 위협이 되는 연유다.
한·미·일 군사협력의 장애물
일본 국가안보전략은 2013년 "독도 영유권 문제는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2022년에는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처음 명시했다. 한·미·일 군사협력도 좋지만, 유사시 일본의 공격에 대응할 군사적 대비 역시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과제다. 미국은 한국군의 독도방어훈련에 대해 "비생산적"이라면서 우리의 주권행동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유독 섬에 연연하는 일본의 DNA와 미국의 방관은 언젠가 터질 '분쟁의 씨앗'이다. 그러나 북한만 바라보는 단선적인 사고의 윤석열 정부가 어떤 대비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본은 북한에 대한 한국의 '영토고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과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및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3개의 축으로 돼 있다. 3국 미사일 경보 훈련의 근거인 TISA는 한·미·일 정상이 지난해 11월 13일 프놈펜 공동성명에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에 합의했다. 미국을 통해 간접 공유하던 방식에서 직접 공유로 바뀐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탓에 논란이 많았던 GSOMIA는 살아 있지만, 정상가동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ACSA이다. 2015년 10월 나카타니 일본 방위상이 "한국의 유효 지배 영향이 미치는 영역은 휴전선 이남"이라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의 영토고권을 부인, 체결이 불발됐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떻게 처리할 지 주목 또는 걱정되는 대상이다.
기시다가 언급한 전 총리들은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요시다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한국과 중국을 배제한 장본인이고, A급 전범 출신 기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만주군 시절 인연을 활용, 한·일 수교의 막후역할을 했다. 지난해 피살된 아베는 기시의 외손자이자 숱한 망언과 망동으로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은 자이다. 기시다는 이들을 승계한다고 했다.
기시다의 적은 기시다
미국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선언했음에도 기시다의 적은 기시다다. 지난 16일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9%에 그쳤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7%로 되레 전달에 비해 5% 떨어졌다. 일본 사회조사연구센터의 지난 8일 조사에서는 기시다가 되도록 빨리 또는 올 상반기에 사임하길 바란다는 응답이 46%에 달했다. 기시다 내각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와의 유착 문제로 지난 10월 이후 3달간 각료 4명이 사임했다. 만성적인 낮은 임금에 30년래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에 시달리는 일본 국민의 조세저항도 거세다.
방위비 증액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방침에 63%가 반대했다. 아사히는 15일 미국의 승인을 받은 국방전략이 기실 어떠한 국민적 토론이 없이 정해진 것임을 지적하고, "기시다의 국방전략은 국민의 광범위한 이해와 지지를 결코 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사히는 사설에서 "일본과 미국의 이해가 늘 일치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중국과 일본이 서로를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아사히는 기시다에게 오는 23일 회기가 시작되는 중의원에 출석해 "이번만은 (국민적 토론을) 소심하게 피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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