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은 왜 '역사적 순간'이라고 했나 < 외교안보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푸른 눈의 쇼군(將軍)'이 파안대소했다. 전후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지난 13일 중대한 변곡점을 지났다. 올해 첫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그만큼 엄중하게 다가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 일본의 군사강국화 방안에 최종 '결재'를 받았다.
애시당초 기시다 총리가 들고 온 국가안보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 정비계획 등 3개 안보문건은 하나같이 미국이 원하는 내용들이다. 일본은 지난달 발표한 3개 안보문건에서 국방예산을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로 끌어올리고, 적기지 공격 능력을 확보키로 했다. 그런데 채 두 달이 안돼 미국의 승인 절차까지 마쳤다.
일본은 적기지 공격용 원거리 타격(standoff) 무기로 향후 5년 동안 사거리 2500㎞의 미제 토마호크 미사일 500발을 구입키로 했다. 일본은 2단계로 2026년부터는 토마호크를 대체할 개량형 '12식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하고 2030년부터는 3단계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사거리 2000~3000㎞)을 개발할 계획이다. 통합방공미사일방어(IAMD) 체계와 연동해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일본은 '적기지 반격용'이라고 우기지만, 무력행사 요건을 보면 선제공격용이다.
무력행사 3요건은 △무력공격으로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에 명확한 위협이 발생하고 △국민을 지킬 다른 수단이 없으며 △필요 최소한으로 실력행사를 한다는 원칙이다. 적의 공격을 받은 뒤 내리는 결정이 아닌 것이다.
미·일 합의에는 '사상 최초'의 기록이 몇가지 있다. 우선 미국이 특수관계인 영국을 제외한 나라에 토마호크를 판매하는 게 처음이다(아사히). 미국은 또 우주 공간의 일본 인공위성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상호방위조약 5조에 포함시켰다. 중국이 일본 위성을 공격할 능력을 보유한 데 따른 조치였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핵심 국가 외에 우주공간에서까지 안보우산을 제공한 것 역시 일본이 처음이다. 미국이 2025년까지 미 해병 최정예 연안연대 1개를 주일미군에 배속시키기로 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 하와이에 1개 연대를 두고 있고, 괌에 다른 1개를 배치할 계획이다. 연안연대는 2200명의 병력으로 지대함 미사일을 보유, 적함정 공격 능력이 있다.
바이든은 종종 투자론으로 동맹 관계를 말한다. 취임 뒤 "미국에 투자해라, 미국의 반대편에 투자하면 손해를 본다'는 말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그런 그에게 미·일 동맹에 대한 (미국의) 투자는 '엄청난 배당금'으로 돌아왔다(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램 에마뉘엘 주일 미국대사). 바이든은 이날 '미·일 동맹의 놀라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이처럼 가까이 다가온 적은 없었다"라며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표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적었다. 왜 아니겠는가. 기시다의 일본은 평화헌법의 족쇄에서 풀려나 중국과 대적할 군사강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지역 위기를 지역국의 예산과 무기로 해결하는 데 더해 미제 무기까지 판매하게 된 만큼 미국으로서도 횡재가 아닐 수 없다.
죽은 아베 신조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환호성을 지를 일본의 군사강국화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안보법제를 제정했지만, 끝내 실행계획을 만들지 못했다.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기시다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단행되자 "국제정세의 근본을 뒤흔들 역사의 전환점"이라며 경계에 나섰다.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가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섬나라 일본은 유독 섬에 연연한다. 이미 분쟁 중이거나 잠재적 분쟁의 근원이다. 중국이 일본을 직접 침공할 위협을 제기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이 지난해 8월 대만 근해 해군훈련 중 발사한 미사일 5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진 게 자명종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을 제1의 위협으로 삼았다.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 열도 상공으로 탄도미사일을 날린 북한은 또 다른 빌미가 됐다. 여기에 북방 4개 섬을 두고 흥정을 벌여온 러시아는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독도에 관한 문제는 한·일 관계와 묶어 따로 봐야 한다. 우리로선 엄연히 분쟁지역이 아니기도 하다.)
일본이 2013년 국가안보전략에서 "급속한 군비확장과 투명성을 결여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고 평가했던 중국의 위협은 지난달 2022년 개정본에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를 강화하는 등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기술했다. 북한 탄도미사일의 일본 상공 통과는 2013년 "역내 안보에 대한 위협의 질적인 심화"였다가 이번엔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으로 격상했다. "모든 분야에서 협력"한다던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연계와 맞물려 방위상의 강한 우려"로 달라졌다.
유사시 토마호크 미사일이 자신들의 국내 기지에 떨어지게 될 중국과 북한의 반응은 당연히 거칠다. 중국은 안보문서 채택 뒤 "중국의 위협을 과장해 자신들의 군비확장 핑계를 찾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미·일 안보협의(SCC) 공동성명에 "냉전적 사고와 중국에 대한 이유 없는 먹칠과 공격으로 충만하다"고 반발했다. 북한은 "사실상 다른 나라들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한 것"이라며 "조선반도와 동아시아에 엄중한 안보위기를 몰아오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글머리에 '푸른 눈의 쇼군'을 언급한 것은 기시다의 사고가 2차대전 뒤 미군정 이후 형성된 미·일 운명공동체 의식에 포획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느 이웃 국가가 아니다. '극단의 시대',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를 야만적으로 침략했던 국가이다. 세계사에 길이 남을 만행의 희생자들은 아직도 원혼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자체 안보위협 때문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식의 안이한 사고는 순진한 발상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북·중의 위협에 앞당겨 대비하는 일본이 우리에게는 어떤 함의를 주는 것일까. 좀 더 뒤져봐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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