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발언이 결국 심각한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 18일 한국의 즉각적인 해명과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양국 관계를 재고하겠다고 경고했다. 현지 언론까지 한국 대통령을 '개입주의자'라고 지칭하며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그렇지 않아도 한국이 70억 달러에 달하는 원유 수입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불편했던 양국 관계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됐다.
무엇보다 이란 정부의 반응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레자 나자피 이란 외교부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18일 윤강현 주이란대사를 초치해 대통령의 발언에 강한 항의를 표했다. 나자피 차관은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과 UAE의) 우호 관계는 물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참견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란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나자피 차관은 윤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해당 발언에 대한 즉각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 정부는 그러한 접근(생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대통령의 생각을 교정하라고 요구한 것은 외교 관례상 상당히 강도가 높은 항의로 해석된다.
나자피 차관은 이어 이란 국가자산(원유대금) 동결을 포함해 한국 정부의 비우호적인 움직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분쟁을 해결할 효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를 재고(reconsider)하겠다고 경고했다.
나자피 차관은 또 대통령의 핵무장 가능성 발언을 거론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역행하는 발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국제사회로부터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이 한국 정부의 비핵화 노선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모독에 가까운 접근이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19일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거듭 이해를 구했다. 조 차관은 문제의 발언에 대해 "UAE에서 임무 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 대한 격려 차원의 말씀으로 한·이란 관계 등 이란의 국제관계와 전혀 무관하다"고 거듭 설명했다. 핵무장 발언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 없는 문제 제기"라며 "한국은 NPT의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우리 외교부는 '초치'라는 표현을 사용, 이란 외교부의 조치에 상응하는 뉘앙스를 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양측의 발언은 무게가 달랐다. 조 차관은 이란 측이 양국 관계의 재고를 언급한 것에 대해 아무런 견해도 내놓지 않았다.
이란 정부가 내놓는 강한 반응은 지난 16일 나세르 카나니 외교부 대변인의 성명에서도 드러났다. 카나니 대변인은 한국 대통령이 이란과 UAE, 두 이웃 우방의 관계에 대해 '참견하는(meddling) 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란과 페르시아만 연안국들 간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전혀 모르고(totally unaware)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남한 대통령'이 아닌 '남한 관료(the South Korean official)'라고 지칭, 통상적인 관례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바 있다.
테헤란 타임스는 지난 17일 '이란에 대한 윤의 또 다른 시시한 실수(Another Yoon chaffy gaffe on Ira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천박한(shallow) 실수 탓에 자주 비난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란을 UAE의 라이벌이자 가장 큰 위험이라고 선언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카나니 대변인의 성명을 전하면서 해당 발언을 '개입주의자(interventionist)의 말'이라고 지칭하며 "이란과 UAE에 모두 치욕스러운 발언"이라는 김준형 한동대 교수의 말을 전했다.
이란 정부의 강경한 태도로 말미암아 원유대금 결제 문제가 더 꼬이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2018년 이란에 내린 제재 탓에 한국의 2개 은행은 원유대금 70억 달러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카니니 대변인은 지난 9일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이 동결한 국가자산을 돌려받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지만 다른 양자 간 분쟁과 구분할 것"이라고 말해 외교적인 문제로 삼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 탓에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 '효율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외교관계를 재고하겠다는 경고로 바뀌었다.
이란 정부는 과거 행동으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2021년 1월 호르무즈 해협의 공해상을 운항하던 우리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를 나포, 석 달 동안 억류했었다.
이란 "한국과 외교관계 재고할 것"…들끓는 테헤란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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