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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바이든, 너는 누구인가

by gino's 2023. 3. 11.

"역대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한국과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미국 대통령이 탄생했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주니어의 당선은 동아시아 분단국에도 낭보였다.

'아메리칸 퍼스트(American First)'를 내세우며 만사를 흥정으로 대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긴 에피소드로 끝나고 한·미 관계도 정상궤도에 오를 것 같았다. 바이든은 무엇보다 한국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지한파 정치인으로 인식됐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DJ)과의 인연이 각별했다. 1980년대 DJ의 망명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지난 2월 2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을 지접 발표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DJ를 '이 사람(this man)'이라고 칭해 께끄름한 에피소드를 남겼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바이든 당시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에게 "당신 친구 김대중은 (나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났나요?"라고 묻자 "김대중은 나의 친구가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일화를 2007년 자신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들(Promises to Keep)>에 소개했다. 국내 일각의 착각을 일으킨 근거의 하나였다. 어쨌든 트럼프 4년의 세월을 보낸 뒤 점잖아 뵈는 미국 대통령에 기대가 쏠린 건 자연스러웠다.

DJ 존경하고 햇볕정책 지지했던 그가 아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에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보면 생경한 느낌이 든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이 더 큰 것일까.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미국을 잘못 본 거다. 한반도 거주민들이 70년째 되풀이하는 착각이다.

미국 민주당이 햇볕정책과 이후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했던 것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전의 일이다. 바이든에 건 막연한 기대는 민주당 지도부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쁜 타협(Bad deal)보다 무 타협(No deal)"을 주문했던 사실을 망각한 착각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내놓은 지난 6일, 바이든은 많은 한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성명을 통해 "오늘 한·일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두 동맹국 간 협력과 파트너십에 새 장을 쓴 신기원(ground breaking)"이라며 반겼다. 환호작약하는 바이든을 바라보며, 그가 과연 한국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정치인인가, 의문이 생긴다.

국가 간의 외교는 개인 간의 관계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이익 앞에서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게 나라 간의 관계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그 어떤 파렴치도 국익의 이름으로 가능한 게 이른바 외교다. 바이든은 취임 뒤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

국내 일각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3기'가 될지 '클린턴 3기'가 될지를 놓고 설왕설래했던 것은 미혹(迷惑)이었다. '전략적 인내'의 미명 아래 한반도 문제에 침묵했던 오바마의 연장도, 임기 말 북·미 관계 정상화를 못 이룬 클린턴의 연장도 아니었다. 바이든은 '조정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and practical approach)'이라는 정책 아닌, 방침을 내걸고, 한미·미일·한미일 합훈에 주력해왔다.

물론 대화를 거부한 채 핵 위협을 가하는 쪽은 북한이다. 핵무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확장억제 연습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실망스러운 태세다. 북한에 대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바이든의 외교적 수사는 화석이 된 지 오래다.

강제동원 대일 굴욕이 '신기원'?

잘못 짚은 건 한국민만이 아니다. 바이든은 취임 연설에서 "정치가 꼭 가는 길에 놓인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불이 될 필요는 없다. 모든 불일치가 전면전의 원인이 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1·6 의사당 폭동'을 염두에 둔 말이었지만, 국제정치에선 반대로 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러시아와의 모든 관계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취임 일성으로 한 "러시아와 신전략핵무기감축협정을 조속히 복원하고 새로운 군축협정을 추진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군비를 늘리고 있다. 대만해협 전쟁을 경고하며 유럽의 군사적 긴장을 동아시아로 퍼 날랐다.

한·미·일 협력을 거론하며 '기시다 후미오의 일본'과 '윤석열의 한국'을 줄 세운 명분이다. 동아시아 각국은 더 많은 미제 무기를 사들이고, 더 큰 규모의 합훈을 하고 있다. 한·미·일 삼각관계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체제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 미군기지가 포함되기에 필요한, 편의에 따른 체제에 불과하다. 그런데 바이든 시대 한·미·일 삼각관계는 갈수록 '방패'가 아닌, '창'이 되고 있다. 북핵 위협을 막기는커녕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는 체제로 성격이 바뀐 인상이다.

바이든은 대외적으론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동맹을, 대내적으론 '더 나은 복원(Build Back Better)'을 다짐했다.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동맹은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빌미로 공장을 미국에 더 많이 짓게 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동맹과 우방의 곳간을 헐어 미국의 국고를 채운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세계가 에너지·식량난과 높은 이자율로 고통을 받을 때 미국은 일자리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조차 꿈꾸지 못했을 '아메리카 퍼스트'를 단 2년 만에 구현해냈다. 중국을 겨냥한 공급망 안전을 구실로 한국·대만·일본과 '칩(chip)4 동맹'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을 짓기로 하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빌미로 뒤통수를 쳤다. 보조금 지급을 안 하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안긴 것이다. 반도체과학법(CSA)은 역시 보조금 지급을 빌미로 기술과 핵심 공정 및 노하우 공개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 내 신규투자를 규제할 움직임도 보인다. 미국이 비난해온 중국의 불공정 관행을 뺨치는 수준이다.

민주주의 동맹, 미국 일자리 늘리기

반도체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한때 전 세계 반도체의 40%를 생산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10%로 쪼그라들었다. CSA는 각국의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깔때기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2월 7일 국정연설에서 "우리가 CSA 법안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이유"라고 말했다.

"미국을 위한 공급망은 미국에서 시작되도록 하겠다"면서 "CSA 없이도 8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이 법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더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자리는 제로섬게임이다. 미국 실업률은 50년래 최저수준(3.4%)을 기록했고, 제조업 일자리는 40년래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산층을 위한 외교'가 마침내 대성공을 거뒀다. 바이든은 그 성공에 도취해 작두를 타는 듯하다.

하지만 세계가 고통받는데 미국만 행복한 상황에서 세계의 반미주의가 잠잠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또 다른 착각이다. 내년 미국 대선에 나서더라도 부채가 될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기상천외한 '강제동원 해법' 이후 많은 한국민의 미국에 대한 시선은 차갑게 변하고 있다. 국가 위신과 민족적 자존심이 땅에 떨어뜨린 정부에 대한 분노와 함께, '닥치고 한·일 협력'을 주문한 미국에 분노의 한줄기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와 중국을 경계하자"면서 제 잇속만 챙기는 미국에 시선이 곱지 않았던 터이다. 자칫 지난 세기 반미주의를 다시 꺼내올 동력원이 될 민족감정의 칵테일이다. 미국이 신나치 극우주의와 '더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도모하지 않듯이, 많은 한국민은 전쟁범죄를 한사코 부인하며, 되레 그 피해자를 모욕하는 '우요쿠(右翼)의 일본'과 미래를 도모할 생각이 없다.

민주주의 동맹? 주권국가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깡그리 무시하는 일본과 그 일본의 역성을 든 미국은 삼권분립에 토대한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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