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지난 2년 동안 위대한 대통령이었다. 공약의 많은 부분을 성취했다. 자축할 만하다. 그러나 재선에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의 충고였다. 뉴욕타임스는 하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80)의 올해 국정연설 전날이던 지난 2월 6일 지면에 '그만하라'는 칼럼을 배치했다. 골드버그의 충고는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을 우려하는 미국 내 많은 목소리를 대변한다.
지난 대선 유세 때부터 '졸린 조(Sleepy Joe)'라며 바이든의 고령을 한껏 비웃던 도널드 트럼프류의 야유가 아니었다. 바이든이 대중 앞에서 할 말을 잊고 머뭇거리거나, 전용기 계단을 오르며 서너 번을 연거푸 넘어지고, 경호원의 안내에도 갈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본 평범한 미국민들의 불안을 담은 목소리였다.
골드버그는 바이든이 국정연설에서 늘어놓을 자랑거리를 앞당겨 치하했다. 취임 2년 동안 1200만 개의 기록적인 일자리 창출과 낮은 실업률(3.4%), 청정에너지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눈부신 성과를 인정했다.
바이든 시대 미국은 자국 기업의 회귀와 외국 기업들의 투자에 힘입어 '제조업 국가'로 되돌아오고 있다.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대한민국 기업들이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에 투자한 금액만 1000억 달러(130조 원)가 넘는다. 그런데 재선 출마를 하지 말라니….
골드버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아무리 성범죄자라고 해도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데다, 민주당 내에서 훌륭한 후보군이 많으며,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이든은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80대의 나이에 대선 출마를 포기해도 패배로 비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게 고령의 유일한 위안"이라는 야멸찬 말을 덧붙였다.
기실 바이든의 고령에 대한 우려는 취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꾸준하게 제기됐다. 지난해 말 80세가 된 바이든이 두 번째 임기를 마치면 86세가 된다. 두 번의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킨 민주당 선거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고령 자체가 핵심이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선된 뒤에도 문제지만 내년 11월까지 치러질 대선 유세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낼지도 관심이다. 2020 대선에선 코로나19가 천우신조였다. 전국을 누비는 대신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자택에서 대부분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반론이 없는 건 아니다. 역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시니어는 지난해 중간선거 뒤 '바이든의 나이 걱정 좀 그만하라. 우리는 지금 그의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두둔했다. 정치에서 겸손은 죽음이다. 누구보다 바이든을 두둔하는 것은 바이든 본인이다. 그는 지난 5일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왜 (재선 당선 시) 82세의 바이든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단도직입에 "지금까지 출마했던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명예롭고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자찬했다.
재선 출마 선언 다음 날인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장황하게 재선 출마의 당위를 설명했다. "내 나이가 얼마인지 생각해보면, 숫자를 말할 수 없다. 나에겐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있다는 말(하도 많이 해서)이 지겹겠지만, 향후 2년, 3년, 4년이 향후 30, 40년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오랫동안 돌지 못한 코너를 막 돌려는 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주의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겠다"는 2020년 출마의 명분도 내던졌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상관없이 해오던 일을 마쳐야 하는 시점이고 그 일은 내가 적합하다는 말이었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강변하는 순간, 정치인은 작두 위에 오른다. 2020 대선 때만 해도 "신세대 민주당원들에게 다리가 되고 싶다"라면서 '중간계투' 역할을 다짐했던 바이든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가 치적으로 열거한 어떤 팩트보다 "아시아 파트너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을 함께 끌어들였다"는 말이 더 크게 들렸다. 바로 옆에 동아시아 분단국 대통령을 세워놓고 한 말이다.
골드버그가 바이든에게 재선을 포기하라고 권한 근거의 하나는 민주당원들의 표심이었다. 워싱턴포스트/ABC방송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과 민주당 선호 중도층의 78%가 대통령의 성과를 긍정 평가했지만, 58%가 내년 대선에서 다른 후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팎에서 바이든 재선 출마를 마뜩잖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내 유망한 후보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민주, 공화당 지지세가 섞인 경합 주(Purple State)에서 승리를 거둔 그레첸 휘트머 미시건 주지사나 라파엘 워녹 조지아주 상원의원, 조시 사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이 꼽힌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이지만, 대통령의 정책 방향은 당이 정한다. 대선 공약의 대부분이 대선이 있는 해 발표하는 당의 정강에 담긴 내용이다. 누가 후보로 나서건 당의 후보인데 바이든이 꼭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재선 출마 전후 여론조사는 갈수록 바이든의 희망과 멀어지고 있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4월 11일부터 5월 9일까지 있었던 5개 여론조사를 합계한 결과 바이든은 42.6%의 호감을 얻었지만, 비호감도가 52.6%에 달했다. 호감/비호감도가 41.4/53%였던 트럼프와 도긴개긴이다. 오히려 공화당 로널드 드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가 44.0/41.8%로 톱3 가운데 유일하게 호감도가 더 높았다. 바이든이 자랑하는 실적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18일~5월 11일 실시된 대통령 직무 지지율 조사에서 바이든은 평균 42.1%의 지지를 받았지만, 거부율이 53.1%에 달했다. 야후 뉴스의 지난 10일 트럼프 또는 디샌티스를 상대로 한 대선 전망 조사에서 바이든은 각각 2%, 3%의 우위를 지켰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군에서 압도적인 선두다. 2016년 대선에서 많은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은 트럼프의 승리를 가능케 한 '샤이 트럼프' 지지층을 생각하면 바이든이 아무리 실적을 내세워도 장담하기 어려운 판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83)과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84) 등 팔십 줄에 들어선 바이든의 오랜 정치 동료들은 올해 초 일제히 정계를 떠났다. 대통령의 '유고'를 염두에 두는 것은 바이든 시대, 미국 정치의 디폴트(초기 설정값)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심지어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보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
백악관은 지난 2월 16일 대통령 건강 소견서 요약본을 공개했다. 주치의 케빈 오코너는 "바이든 대통령의 '현재' 건강상태는 직무에 적합하며, 어떠한 면제나 편의 제공없이 모든 책임을 완전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취임 첫 해인 2021년 11월에 이어 두 번째 건강 소견서이다. 바이든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은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위기의 하나가 됐다. 내년, 내후년에도 결과를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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