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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Dentdelion)

이번에도 '좋은 말 대잔치' 바이든의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

by gino's 2023. 3. 31.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권위주의 정권 탓에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뭉쳐야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1월 취임 이후 강조하는 이른바 '가치'의 핵심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세계 100여개국 정상을 온라인으로 초청, 첫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주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백악관 사우스코트 강당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하고 있다. 2023.3.29. AP 연합뉴스

부패와의 싸움과 권위주의로부터의 방어 및 인권 증진이 초점이었다. 이후 1년은 '행동의 해'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자국 내 중요한 친민주주의 개혁을 단행하고, 영향력 있는 다자간 이니셔티브에 이바지했으며, 러시아의 부당하고 이유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한 권위주의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다"는 게 백악관의 주장이다. 지난 29~30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회 회의에서 각국 대표는 더 회복력 있는 민주주의를 구축하겠다는 약속의 이행사례를 소개하고, 새로운 약속과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민주주의 기로에 섰던 미국의 선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바이든 행정부 이후 세계가 괴이하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거주하던 불과 2년여 전 만 해도 세계의 화두는 포퓰리즘과 극우 민족주의였다. 그 절정이 바이든 취임 보름전 발생한 의사당 폭동이다. 미국은 민주주의가 가장 기로에 처했던 나라의 하나였다. 그런 미국이 갑자기 바뀌었을까.

바이든 취임 두 달 만에 애틀랜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한인 동포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가 6명 숨졌다. 인종차별주의 시각이 들어간 혐오범죄였다. 트럼프가 유포한 '코로나19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가짜뉴스에서 비롯됐다. 바이든은 "범행 동기가 무엇이었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총격 사건은 끊이지 않았지만, 원인을 직시하기보다 현상을 중시하는 미국적 한계는 바뀌지 않는다. 인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생명권이다. '네 눈의 들보'를 탓하기 전에 '내 눈의 티'를 돌아봤어야 했다.

포토 저널리스트들은 종종 독특한 앵글로 이면의 진실을 표현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백악관 강당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2023.3.29. 로이터 연합뉴스

그런데 바이든은 갑자기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각국 정상을 불러 모았다. 미국은 심판관의 자리에 앉았다. 1차 회의에선 러시아와 중국, 브라질, 인도, 튀르키예, 헝가리, 필리핀, 폴란드, 세르비아 등이 제외됐거나 참가를 거부했다.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이라크만 초대됐다. '아랍의 봄' 시위 국가 중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던 튀니지도 자격 미달이 됐다. 의회 해산과 총리 박해 탓이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케냐와 세네갈 등 16개국만 초청받았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저개발국) 외교를 최우선시하는 정책과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가치를 내세우면 필연적으로 배제와 포용의 갈림길에 선다. 평화와 공존을 포기해야 한다. 미국이 대만 대표를 초청하자 중국은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망토나 수단으로 민주주의를 이용하는 본보기"라며 날을 세웠다.

제2차 정상회의에는 120여개 국 대표가 초청받았다. 그러나 배제와 포용의 갈등은 여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함께 전선에 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튀르키예와 헝가리는 이번에도 배제됐다. 집권 20년이 넘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정부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정부는 모두 자국 내 언론 탄압과 인권 침해로 지탄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회의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23.3.30. 연합뉴스

비난과 배제에 초점 둔 '가치의 정치학'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제3세계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식량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유엔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3자의 협상을 주선해 곡물 수출의 길을 튼 주인공이다. 전쟁 발발 직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 창구를 유지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력을 보였다.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집요하게 하지 않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발리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노력에도 대화를 거부, 푸틴의 참가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미·중 간 어렵사리 성사된 정상회담에선 각급 대화창구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지난 2월 스파이 풍선 문제를 빌미로 앤서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을 돌연 취소했다. 스파이 풍선 탓에 미국 본토 군기지의 어떤 기밀도 노출되지 않았다는 미군 당국의 설명이 무색했다. 피해가 없었다면서도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무기한 연기한 건 바이든 행정부가 애초부터 대화와 외교에 관심이 적었음을 방증한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하는 한편, 대만해협 전쟁이 임박했다면서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유지 또는 확대하고 있다.

평화를 도모하려는 외교를 팽개쳐놓고, 말로만 섬기는 ‘가치’는 공허하다. 위선적이기도 하다.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희대의 블랙코미디가 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출국을 앞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단체들이 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실의 전용기 탑승 불허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1.10 연합뉴스

한국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모범생이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번 회의에 코스타리카와 네덜란드, 잠비아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공동주최국으로 참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회의를 주관했다.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민주주의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비전'을 추진한다고 소개하면서 "인도·태평양지역 국가에 전자정부, 디지털, 기술 역량 강화, 투명성, 반부패 등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서 향후 3년간 1억 달러 규모의 개발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한·미의 엇갈린 민주주의 우선순위

이어 청와대 영빈관으로 자리를 옮겨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번영'을 주제로 한 본회의 제1세션을 화상으로 주재했다. 대통령은 특히 ‘민주주의의 적’으로 강조한 것은 가짜뉴스였다. 모두 발언에서 특히 "국제적으로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가 자유를 위협하고 있고, 온라인을 타고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짜뉴스는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를 무조건 '가짜뉴스'로 몰아붙였던 트럼프를 연상케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위험이 다분하다. 한반도 남쪽에서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22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시민언론 더탐사> 강진구 기자가 응원을 온 시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3.2.22. 더탐사 이두석 PD

미국 국무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2022 국가별 인권 관행 보고서를 상기시킨다.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 장(章)에서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함께 '바이든/날리면' 발언 이후 윤석열 정부가 MBC에 취한 행동과 <시민언론 더탐사>를 상대로 벌인 재판과 압수수색을 상세히 기술했다. 보고서는 "독립적인 언론과 효율적인 사법제도 및 민주적 정치 시스템의 기능을 통해 자유가 촉진된다. 여기에는 언론도 포함된다"라고 기술했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제1차 정상회의 뒤 첫 1년 동안의 ‘행동의 해’를 평가한 지난해 11월 백악관 발표에서도 확인된다. 백악관은 미국이 취한 숱한 조치 중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매체 지원을 가장 먼저 꼽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한국은 우등생? 제3차 회의 주최

압수수색하고 구속할 때는 법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법원의 판결을 외면하는 것은 또 어떤가.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배상판결에 항소했고, 강제동원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을 뭉갰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은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 내년 중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대한민국이 주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은 본회의 모두발언을 마치면서 대한민국에 감사를 표하면서 "이 포럼이 진보를 위한 동력이자 서로에 대한 약속의 닻이 되도록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모순과 윤석열 정부의 모순이 겹치면서 묘한 부조화를 드러낸 정상회의였다.

팜투항 베트남 외교부 부대변인이 9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민간인 학살 배상사건 항소 결정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3.3.9 [국영방송 VTC1 화면 캡처] 한베평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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