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러 전략적 파트너십이 국제적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길 희망한다. 동시에 공동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하기를 바란다."
미국이 '푼돈'에 연연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큰 거래를 성사한 것일까. 미국이 중국제 스파이 풍선을 쏘아 떨어뜨리고,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보내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보란 듯이 전략적, 경제적 협력의 양 날개를 달았다. 지난 21일 크렘린궁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건넨 한마디는 '양국 협력의 새 시대'를 선언한 이번 회담의 내용을 요약한다.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냈다. 두 정상이 이날 서명한 두 개의 공동성명은 최종 목적지와 이동 수단을 적은 일종의 계약서였다. 하나는 전략이고 하나는 경제다.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경제협력을 우선하는 2030년 전(前) 발전계획에 관한 공동성명'이다. 양국은 23일 오전 현재 성명 원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두 정상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질의 없이 발표한 언론 성명에 대강의 윤곽이 드러나 있다. 이 가운데 전략 부분을 먼저 들여다본다.
미국과 러시아가 직선적이라면, 중국은 다소 우회적인 접근을 택했다.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행동을 예고하지 않고, 현재 질서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먼저 내세웠다. 성명은 양국 관계가 "대결적인 성격이 아니며, 제3의 국가들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중·러의 입장이 같은 건 아니다. 푸틴은 "국제적, 지역적 현안과 관련해 러시아와 중국의 견해가 동일했거나 매우 근접했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분쟁과 위기의 잠재성이 쌓이고 있다는 정세 판단에서 두 정상은 일치했다. (미국이) 불법적이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제재와 다른 제한을 적용하는 한편, 경제 갈등에서 불공정 경쟁 수단을 더 동원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공감했다. 또 내정 불간섭과 국가마다 고유의 개발모델을 채택할 권리, 교역의 자유, 첨단기술과 교육에 접근할 권리 등 불변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양국은 어느 나라(미국) 또는 진영이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의 합법적인 이익을 해치려는데 강하게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영국 열화우라늄탄 제공에 푸틴 '상응조치' 경고
전략협력 공동성명에서는 국제적 현안을 두루 담았지만, 기자회견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이 집중 강조됐다. 푸틴은 중국 평화안의 많은 조항이 러시아의 견해와 일치한다면서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준비될 때 평화 정착의 기본으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은 그러나 서방은 협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우크라이나에 탱크와 열화(劣化)우라늄 포탄을 보내겠다는 영국의 발표를 예로 들었다. 푸틴은 서방이 우크라이나 국민이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러시아와 싸우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며, 더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비난했다. 이는 서구 집단이 핵 요소가 들어간 무기의 사용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러시아 역시 상응하는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열화우라늄은 무기급 우라늄235의 함량이 자연 상태보다 낮은 우라늄이다. 어쨌든 서구가 우라늄 포탄을 투입하는 만큼 러시아 역시 핵무기를 동원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기에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그러나 러·중 양국이 유엔과 안보리, 국제법 및 유엔 헌장의 중심 역할에 토대를 둔 더 정의롭고 민주적인 다극화 세계질서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고 말했다.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의 브릭스(BRICS)와 긴밀하게 조율하는 동시에 아태 경제협력체(APEC)와 주요 20개국(G20)을 비롯한 다자간 기구와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및 중국의 일대일로(BRI)를 통한 통합노력을 계속함으로써 미래의 '대 유라시아 파트너십'을 만들기로 했다"고도 강조했다.
시 주석은 푸틴과 사뭇 다른 기조에서 접근했다. 푸틴이 거친 표현을 쓰면서 서방을 비난했다면, 시 주석은 부드러운 어조로 원칙을 강조했다.
시진핑, 온건한 어조로 "우크라 평화적 해결"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것을 상기시키면서 유엔 헌장에 입각한 근본적인 국제적 규범을 단호하게 수호할 것이라는 다짐으로 말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해 진정한 다극화 질서를 장려한다고 확인하는 데 그쳤다. 양국이 만들어가려는 다극화 세계와 개선된 글로벌 거버넌스에는 글로벌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 및 공급망, 가치사슬의 중단 없는 작동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언급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발표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이 준수되고 국제법이 존중돼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중국의 평화중재자 역할은 조만간 있을 시 주석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회담 이후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이 이미 러시아의 편에 섰다"면서 중재자 역할을 무시하는 분위기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중·러는 긴장을 유발하는 모든 움직임과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통제 불능이 되게 할 전투의 중단에 합의했다. 동시에 유엔 안보리가 승인하지 않은 모든 일방적 제재를 반대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나토의 아시아 진출에 "지역 안정 해친다"
양국은 전략협력 공동성명에서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지역별 현안에 대한 공동입장을 정리했다. 아시아에선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군사적 유대를 갈수록 강화하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미국이 냉전적 사고에서 추구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지역 안정을 해친다면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진영이 형성하는 것에 반대했다. 집단 정치와 진영 갈등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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