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은 온두라스의 결정은 국제무대에서 대만을 고립시키고 모욕하려는 중국 머니 게임 외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이 수십 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지만, 국제적인 흐름은 대만 쪽으로 기울고 있다." 타이베이 타임스의 지난 28일 자 사설은 갈수록 악화되는 대만의 외교적 고립 속에서 대만의 고민을 말해준다. 사설은 수교국은 줄고 있지만, 더 의미 있는 교류가 많아지고 있다고 애써 강조했다.
미국 의회 등 각국 의회 협력 다짐
실제로 이번 달에만 독일 교육부 장관과 전 코소보 총리 및 미국과 영국의 의회 의원들이 타이베이를 찾았다. 온두라스의 외교적 배신이 발표된 지난 주말에는 체코 의회 대표단 150명이 타이베이를 방문해 의회 간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타이베이 타임스는 "한 국가의 힘(외교력)은 수교한 국가의 숫자뿐 아니라, 관계의 질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9일부터 시작된 차이잉원 총통의 순방은 또 다른 외교적 이정표다. 차이 총통은 뉴욕을 거쳐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차례로 방문하고 귀로에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한다.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 회동이 예정돼 있다. 2016년 5월 취임한 차이 총통의 8번째 해외 순방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대하는 차이 총통의 취임 뒤 대만과의 수교국들을 떼어내는 외교 공세를 펼쳐왔다. 22개국이었던 대만의 수교국은 13개로 줄었다. 80여 년에 걸친 외교관계를 손바닥 뒤집듯이 배반한 온두라스의 결정은 철저하게 돈 때문에 내려졌다. 대만에 24억 4000만 달러의 지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중국의 손을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 역시 몇 안 되는 수교국을 유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지원을 제공하고 있어 중국으로부터 '금전외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대만이 현재 수교하고 있는 나라는 13개국. 그러나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나라는 과테말라(1685.5만 명), 아이티(1191만 명), 파라과이(745.5만 명), 스와질란드(115만 명)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가는 벨리즈(43만 명), 세인트 루시아(18.2만 명),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11만 명), 세인트 키츠네비스(5.8만 명), 마셜제도(5.43만 명), 팔리우(1.8만 명), 나우루(1.27만 명), 투발루(1.1만 명), 바티칸(618명)으로 지방 소도시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공략은 특히 온두라스를 비롯해 파나마(2017), 도미니카(2018), 엘살바도르(2018), 니카라과(2021) 등 중남미지역에서 주효했다.
과테말라·바티칸의 단교가 최악의 시나리오
대만 외교는 일대일로(BRI) 사업 포함 또는 개발 자금을 무기로 한 중국의 공략에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대만 수교국 가운데 중국이 집중 공략하고 있는 곳은 과테말라와 바티칸이다. 특히 바티칸이 중국과 수교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서 유일한 대만의 수교국인데다가 전 세계 가톨릭 국가에 미치는 교황청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상징적, 정서적 타격도 불가피하다. 중국은 정치적 목적에서, 교황청은 교세 확장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교황청은 프란체스코 교황 취임 5년 뒤인 2018년 중국과 '주교 임명 잠정협정'을 맺고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온두라스의 배반은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중국의 외교 공세를 막으려 노력해온 미국 외교의 좌절이기도 하다(뉴욕타임스). 중국은 외교적으로 대만을 더욱 궁지로 내몰게 됐다. 그러나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대치가 가팔라지는 상황에서 발생한 '온두라스 변수'는 중국 공산당에 양가적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 탓에 중국 공산당에 대한 대만 국민의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는 내년 1월 대선(총통선거)과 총선(입법원 선거)을 앞두고 국민당을 지원하려는 중국의 노력에 역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타이베이 타임스).
차이 총통에도 불똥이 튀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임기 중 9개 수교국을 잃은 것이 어떤 형태로든 총통선거의 이슈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우호적인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 집권기간(2008~2016)에는 외교 공략을 중단했었다. 국민당 후보가 이 부분을 파고든다면 차이 총통으로선 대응이 궁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마잉주 전 총통은 공교롭게 지난 27일 중국의 초청으로 본토를 방문하고 있다. 전·현직 대만 총통이 본토를 찾는 것은 국·공 내전 종료 이후 74년 만에 처음이다.
중남미 국가들의 '단교 도미노' 막지 못한 미국
대만이 처한 안팎의 상황은 외교적 고립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라는 실존적인 위협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과 매카시 하원의장과의 회동은 미국 의회의 대만 지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대만이 처한 외교적 고립과 실존적인 위협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퇴임 전 업적 축적 차원에서 추진한 대만 방문이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높였듯이 오히려 악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의 군사력은 유사시 대만이 기댈 언덕이지만, 외교력은 중남미 국가들의 '단교 도미노'를 막지도 못했다.
대만의 민심은 압도적으로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중국도, 미국도 아닌 독립된 공화국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의 2022년 조사 결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응답이 80% 가까이 나왔다.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응답은 1.2%에 그쳤고, '현상 유지 뒤 통일'도 6.0%에 불과하다. '조속한 독립'(5.6%)과 '현상 유지 뒤 독립'(25.4%)도 세 사람 중 1명에 불과했다. 가장 높은 응답이 나온 것은 '현상 유지 뒤 추후 결정'(28.7%))과 '영원한 현상 유지'(25.4%)였다.
국립정치대학의 2022년 정당 지지 성향 조사를 보면, 민진당(30.8%)이 국민당(14.4%)을 두 배 이상의 격차로 압도했다. 대만민중당이 8.2%로 3위였다. 그러나 정당 지지율이 30%에 머문다는 것은 민진당 정부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립 또는 무응답'이 45.6%에 달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차이 총통이 미국 정치인을 만나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를 받는 것이 국민적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미·중 갈등의 불쏘시개가 아니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대만전쟁 준비를 하면서도 정작 전장이 될 대만을 미·중 갈등의 불쏘시개로 쓰는 것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상당한 것 같다. 그렇다고 대만인들이 중국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양 책임연구위원)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무탈하게 살고 싶은 대만인들에게 차이 총통의 독립 의지가 먹히지 않는다. 중국의 침공과 미국의 개입이 모두 없는 '모호한 현상 유지'가 국민적 공감대인 셈이다. 바로 미·중이 1979년 수교 이후 대만의 평화와 번영을 가능케했던 '전략적 모호성'과 들어맞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뒤 대만전쟁을 경고하는 미국 내 일부가 제기하는 '전략적 명확성'이 위험할 뿐 아니라, 대만 내부에서도 호응이 적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차이 총통의 순방 뒤 선거 국면에 돌입하는 대만의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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