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지난 3월 2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회담 뒤 두 개의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과 '경제협력을 우선하는 2030년 전 발전계획에 관한 공동성명' 등 두 개의 성명이다. 경협 관련 성명은 그나마 두 정상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비교적 상세히 내용을 소개했지만, 전략적 협력을 다룬 공동성명은 극히 일부분만 전했다.
러시아, 프랑스와 잇단 정상회담도 물거품?
두 정상이 공동성명문을 교환하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하고도 중국 외교부나 크렘린궁 홈페이지에 열흘이 넘도록 성명 원문을 공개하지 않는 건 지극히 이례적이다. 비공개 이유의 하나로 추정되는 게 우크라이나 문제다. 푸틴이 3월 21일 중·러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평화 중재 의지를 평가하면서도 "국제적, 지역적 현안과 관련해 러시아와 중국의 견해가 같았거나 매우 근접했다"고 말했다. .
드러난 입장 차이는 우선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이견이다. 푸틴이 지난해 말부터 핵무기 사용을 여러 번 시사한 뒤 최근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발표했지만, 시 주석은 핵무기 사용에 일관되게 반대 메시지를 공표해왔다. '핵전쟁 반대'는 중국 외교부가 지난 2월 21일 발표한 '글로벌 안보 구상(GSI)'의 협력 우선 사안 중 3번째로 강조한 항목이다. 사흘 뒤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입장'에는 핵무기 사용 금지 및 핵전쟁 반대를 제외하고 원전의 안전유지(7항) 만 포함시켰다. 여기서 시 주석과 푸틴의 '핵카드'는 성격이 확연히 갈라진다.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 평화중재로 성과를 내고 이를 통해 미국 및 유럽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핵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수행중인 푸틴은 그러나 모든 옵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카드'를 치울 수 없는 처지다. 설령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모호성을 유지해야 전략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은 불가능해진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 주석과 우크라이나 평화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난 6일 베이징 중국·프랑스 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린 이유의 하나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빈 방문에 걸맞게 6일 인민대회당에서 환대받은 뒤 시 주석에 "러시아가 이성을 되찾고 모두를 협상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주석과 마크롱이 내놓은 결과물은 국제사회를 향한 '공동의 촉구(Joint Call)'에 그쳤다. 평화중재는커녕 호소에 가까웠다.
평화협상 개시 시점은 "가능한 빨리"
중국 외교부가 이날 발표한 '공동 요구'는 5개 항으로 되어 있다. 우선 위기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민간인 또는 민간시설 공격 금지 및 여성과 어린이 보호이고 세 번째는 대량살상무기의 사용금지다. 두 정상은 핵무기 사용금지를 서약하고 핵전쟁을 해서는 안 됨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생물 무기를 동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민간 핵시설에 대한 공격도 반대했다. GSI와 우크라이나에 관한 중국 입장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은 네 번째에 배치됐다. 그러나 가능한 한 빨리 평화협상을 개시, 모든 당사자의 합법적인 안보 우려를 감안한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는 데 그쳤다. 더불어 균형 잡히고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유럽 안보 구조(Architecture)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특히 식량과 에너지, 금융, 교통 및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고 특히 개도국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두 정상의 합의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할 가능성은 적다. 다만 지난 2월 이후 중국이 자임한 평화중재자(Peacemaker) 역할이 여전히 오리무중임을 거듭 확인시켰다.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빠른 종식을 바라는 이유는 많다. 전쟁은 중국 입장에서 기존 위협을 심화하고, 새로운 위협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칩(Chip)4 동맹'을 비롯한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와 교역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미국이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주요 당사국인 일대일로(BRI)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세계경제 위축으로 코로나19 이후 중국 경제도 회복이 느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을 '권위주의 국가'로 묶고 '민주주의 국가'의 단합을 추구해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세는 세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는 동인이 되고 있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뒤 기대 높아져
시 주석의 평화 행보는 푸틴을 설득한 뒤 젤렌스키와 접촉하는 수순인 것으로 보인다. 푸틴을 만난 뒤 아직 젤렌스키와 대화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AFP 통신은 프랑스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 시 주석이 젤렌스키와 "때가 되면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젤렌스키는 개전 이후 시 주석과의 대화를 여러 차례 공개 요구했었다. 지난 3월 28일 AP통신 인터뷰에서는 대화 희망을 거듭 피력하며, 시 주석의 키이우 방문을 공개적으로 권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다.
중국이 중재에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두 가지 이점 덕분일 것이다. 우선 미국이 평화 중재 외교에 나서지 않고 있기에 중국의 활동 공간이 열려 있다. 미국은 러시아군의 일방적인 철수가 전제되지 않은 평화협상에 반대하고 있다. 또 지난 3월 10일 중국이 중재에 성공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관계 정상화 중재와 마찬가지로 '차이나 머니'의 이점을 갖고 있다. 중국은 2019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국이며, 우크라이나는 BRI 해당 국가로 중국의 투자 대상이기도 하다. 주중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따르면 2021년 양국 교역은 189.7억 달러에 달했다.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80억 달러 상당을 수출했고 109.7억 달러 상당을 수입했다. 중국은 자동차와 전기제품, 보일러, 철도레일, 합성수지류를 수출했고, 식량과 육류 등을 주로 수입했다.
전쟁 종식과 관련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은 지난해 4월 러시아군의 민간인학살 의혹이 공개되고 서방이 평화협상의 타결에 반대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 선언과 러시아군의 철수를 맞바꾸는 안에 의견이 접근했지만, 러시아가 같은 해 9월 30일 점령지를 병합하면서 좌초됐다. 이후 젤렌스키는 이번 전쟁 점령지는 물론, 크림반도를 비롯한 2014년 이후 점령지도 반환하기 전에는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평화안 발표 뒤 "러시아는 정치적, 외교적 수단에 의한 종전에 열려 있다"면서도 '새로운 영토 현실'에 대한 인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가 전세를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거나, 양측 모두 지친 뒤에나 종전에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피스메이커와 피스 브레이커
그러나 현재까지 양측 모두 작년 말 이후 전면전 대신 바흐무트에서 진지전을 하는 상황이라 가까운 시일 내 전세가 급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만큼 시 주석이 중재하겠다고 공언한 평화협상의 자리가 마련될 여지가 적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선 평화 중재의 성패와 무관하게 잃을 게 없는 게임이다. 미국의 인권 공세 속에서 평화외교를 펼치는 것만으로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종식을 전망하기 위해선 전황과 함께 '외부의 입김'도 살펴봐야 한다. 개전 이후 누가 피스메이커(Peacemaker)였고, 누가 평화를 방해하는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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