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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정부, 과연 살상 무기 지원 약속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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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의 핵심은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깨고 '155㎜ 포탄 33만 발'을 미국을 경유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키로 했느냐이다. 동맹국 대통령실을 감청했다는 윤리적, 외교적 문제에 앞서 정부가 과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본격 나섰는지를 규명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2023 한국 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연합뉴스

<시민언론 민들레>가 SNS에서 입수한 메모 원문의 제목은 '한국이 우크라이나 포탄 확보를 위한 미국의 압력에 대한 (포탄의)'최종 사용자' 걱정으로 혼선에 빠졌다(South Korea Mired in End User Concerns Related to U.S. Push to Obtain Ammunition for Ukraine)이다. 메모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 이문희 대통령 외교비서관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의논한 내용의 핵심은 '155㎜ 포탄 33만 발'이었다.이 비서관이 이를 둘러싼 임기훈 국방비서관 사이의 이견을 놓고 김 실장과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그 전제에 이미 미국이 포탄 33만 지원요구가 깔려 있다.

이는 한국이 지난해 11월 미국에 이미 수출한 포탄 10만 발과 전혀 다른 것으로 미국의 추가 요청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국방부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해 11월 11일자로 이를 보도하자 "미국을 최종 사용자(end-user)로 한다는 전제 하에 협의가 진행중"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바)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은 당시 미국의 포탄 비축량이 위험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한국산 포탄으로 비축량을 채우고, 미군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무기 수출계약에는 통상 수입국가를 최종 사용자로 정한다. 제3국이 사용할 경우 불필요한 분쟁에 엮이기 때문이다. '155㎜ 포탄 33만 발'과 K9 자주포는 외국 기술의 지원을 받지 않은 100% 국산으로 한국이 수출 조건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미국이라면 강하게 주장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러시아군의 포격을 파괴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방의 바흐무트의 폐허. 2022.12.4&nbsp; AFP연합뉴스

3월 1일자 이문희-김성한의 대화록에는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 내에서 두 가지 전제가 모두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비서관은 미국의 포탄 요구에 동의할 경우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국가안보회의(NSC)가 혼란에 빠져 있다면서,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다음날(2일)까지 이를 결정하기로 약속(pledge)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때문에 국가안보실 내부(domestic) 논의를 거쳐 최종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어길 수 없는 상태에서 이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a clear position)을 결정하지 않는 한, 정상간 대화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비서관이 포탄의 '최종 사용자' 문제에 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미국이 포탄 지원을 요구하면서 이에 관해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작년 11월 포탄 10만 발 수출 당시만해도 문제되지 않았던 '최종 사용자'가 새삼 국가안보실 내부에 혼선을 초래했다는 것은 미국의 요구에 명백하게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임 비서관이 '3월 2일'로 날짜를 특정해 최종 입장 결정을 요구한 것은 미국의 요구가 막바지에 도달했거나, 윤 대통령이 임 비서관을 경유해 조속한 결정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실장과 이 비서관은 지난달 말 석연찮은 이유로 전격 경질됐지만 임 비서관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안보실의 갑작스런 인사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3.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미국이 요청한 포탄의 정확한 규모는 김 실장의 말에서 드러났다. 김 실장은 포탄을 가급적 빨리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라면 그 포탄 33만 발(the 330,000 rounds)'을 폴란드에 수출하는 게 어떻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비서관은 무기 수출을 하는 데 있어 폴란드를 선진국(또는 우선 제공국·advanced countries)으로 규정하는 법률이 제정 과정에 있기 때문에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지정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폴란드가 (포탄으로) 무엇을 할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 한국이 폴란드에 기록적인 무기 수출을 하면서 수출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법제가 제정 중임을 말해준다. 

이 비서관은 특히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발표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키로 했다는 결정(stance) 발표와 겹친다면, 국민(the public)에게 두 가지 사안이 (한·미 간에) 거래(trade)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뒤집어 말하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한다는 정부 방침의 발표가 3월 1일 현재 임박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국빈방문 발표와 시간을 두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메모에 드러난 정황으로 보아 미국은 윤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한국 정부에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에 관한 원칙을 결정할 것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언론 민들레

메모의 앞머리에는 중앙정보국(CIA)를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이 극비(Top Secret) 문서 앞에 붙는 'TS(극비·Top Secret)/SI-G(시긴트·신호정보)//OC(Originator Controlled, 문건 작성자가 일부 수정)/NF(No Foreign Nationals, 외국 정부와 공유 금지)가 굵은 활자로 적혀 있다. 메모 끝에는 문서 분류번호도 붙어 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SI-G'에 'G(Gamma)'가 붙은 것은 것은 국가수반에 관한 대화가 포함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OC'는 정보원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직접 인용이 아닌 간접 인용으로 작성한 것을 뜻한다. 최 교수는 4월 13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공개된 100여건의 문건 중 "NF'가 붙은 것은 이 문건 밖에 없다면서 다른 문건에는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공유협정인 파이브 아이즈(FVEY, Five Eyes) 국가들과 공유해도 좋다는 'FVEY'가 붙었다고 전했다. 


로켓포 쏘는 우크라이나군.&nbsp;[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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