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내보인 세계관이 새삼 우려를 자아낸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잠재적 분쟁에 모두 강한 입장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는 단지 중국·대만 간의 이슈가 아니라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이슈"라면서 특히 양안 갈등에 "힘에 의해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그런 변화에 절대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말한 ‘국제사회’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핵심 동맹국들이 밝힌 바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입장과 다른 발언인 것은 분명하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와 올라프 숄츠의 독일을 제외한 '국제사회'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나토의 어느 회원국보다 열심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지만,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동아시아와 확연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을 방문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일 "유럽은 대미 의존도를 줄여 대만과 관련한 미·중 대립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대만 문제와 관련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대만 위기를 부채질하는 행동이 유럽에 이익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두렵다고 우리가(유럽이) 미국의 추종자일 뿐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양안 문제를 확연하게 분리, "우리가 대만인들에게 '조심하라, 당신들이 잘못되면 우리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라고 믿음직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 대만 문제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중·불 정상의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에 결연히 반대했지만,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3월 독일제 최신 레오파르트2 전차 18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지난해 12월 8일 자 '시대전환(Zeitenwende)'을 주제로 한 미국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비록 비민주적인 체제의 국가일지라도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국가와의 협력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해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는 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중국과 싸우는 신냉전의 새벽을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이 냉전 뒤 글로벌 행위자로 부상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부터 중국과 한국, 일본을 순방한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교 장관은 독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중국:파트너, 경쟁자, 총체적 라이벌'이라는 글을 올려 "우리는 (중국과의) 경제적 탈동조화(decoupling)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탈동조화는 어떤 경우에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일방적인 의존의 위협을 총체적으로 감안해 위협을 줄여야 한다"면서 탈동조화가 아닌, 탈위협(de-risking)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식 입장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탈동조화를 하고, 중국의 대만 침공을 예방해야 한다면서 동아시아 군비를 확장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전쟁이다. 러시아와 각각 경제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어온 독일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대만 침공이 기정사실인 양 대만 주변 군사훈련을 늘리는 미국의 입장으로부터 '탈동조화'를 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유럽 전쟁과 동아시아 분쟁에서 모두 미국의 방침에 동조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안보 관련 세 문건(국가안보전략, 방위대강, 중기방위력 정비계획)을 개정해 중국을 제1의 위협으로 규정한 일본은 올해 들어 주일미군과 함께 대만 북방의 난세이군도에서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미국의 대중 견제에 우등생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을 시사함으로써 '나토 수준'의 개입 의지를 보이는 동시에 양안 문제에서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결연히 반대를 표명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 사회 시각에서 봐도 생뚱맞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드리아 사스 독일 외교부 대변인은 베어복 장관이 중국 톈진을 방문했던 지난 14일 "위협하는 군사적 제스처는 일방적인 군사적 대치의 위협을 높인다"면서 "우리는 지역의 모든 파트너가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을 완화(de-escalation)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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