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3가지 주요 목표가 있다. 우선 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 국가의 안보 이익을 확보하고 인권을 보호할 것이다. 두 번째로 양국의 성장과 혁신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동맹과 함께 중국의 불공정 관행에 대응할 것이다.
세 번째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한다.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바 거시경제 운용에 대한 소통과 기후변화 및 중·저소득 국가의 부채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에 '공동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길 바란다."
수출통제와 중국 군산복합체 제재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76)이 지난 4월 20일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 대학원(SAIS) 연설에서 밝힌 대중 경제 정책 기조다. 경제를 말한다지만, 거반이 '경제 외적' 문제들이다. 안보 이익과 인권이 전면에 배치됐다. 마지막 중국과의 협력 과제 또한 양국 간 경제 현안과는 거리가 있다.
옐런은 미국 경제의 눈부신 성공을 강조한 뒤 중국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비교했다.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중국의 5배가 넘는다면서 이는 자원이나 지리적 위치 덕분이 아니라 국민·가치·제도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또 21세기에 고립된 어떤 나라도 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의 취약성과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의 단기 역풍과 인구 고령화 및 노동인구 감소, 경제 민족주의, 정부의 경제 개입 등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안보 및 인권과 관련한 옐런의 주장은 이렇다. 미국 안보에 필수적인 우려인 인민해방군의 군사 및 안보 기구로의 기술 유입 차단을 막겠다. 수출통제와 인적 제재, 사이버안보 및 군산복합체 당국 및 관련 인물에 대한 제재, 중국의 미국 내 투자 재검토 및 미국의 대외투자 제한 등이 뒤따랐다. 인정할 대목이다.
그러나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국가안보 우려'가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점이라고 말하면서부터 스텝이 꼬인다. 2021년 12월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상대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를 서면 보장하라는 최후통첩을 무시한 게 미국이었다. 또 전쟁 발발 두 달여 만인 지난해 3월 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정 체결을 막은 것 역시 미국과 서방이었다. 전쟁 장기화 책임의 최소한 절반은 미국 몫이었다는 점을 숨겼다. 미국은 러시아군의 무조건 철수를 주장했을 뿐 조기 종전 합의를 원치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최대 안보우려?
옐런은 그럼에도 "'러시아의 전쟁'을 끝내는 게 도덕적 의무"라면서 ‘신속하고 가장 단합됐으며, 현대사에서 가장 야심적인 다자간 제재'를 발동했다"면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를 언급했다. 옐런이 말한 '야심적인 제재'의 참가국은 49개국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선 한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4개국뿐이다. 그런데 단 한 명의 미군병사도 참전하지 않은 전쟁이 어떻게 미국 국가안보의 최대 위기일까.
'미·중 경제 관계'를 주제로 연설하다가 옐런이 느닷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끌어들인 고리는 '무제한의 협력'을 다짐한 러·중 정상회담 합의 내용일 뿐이다. 협력의 내용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증거는 중앙정보국(CIA)조차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옐런은 이어 신장·홍콩·티베트의 인권 탄압 문제로 말머리는 돌렸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의 경제 리더십과 상충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지만, 옐런이 강조한 것은 중국에 대한 제재와 견제 일색이었다. 국유 및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지식재산권 도용, 대규모의 광범위한 정부개입 등 비시장적 수단, 코로나19 이후 미국 기업에 대한 강압 조치 등이 열거됐다.
옐런이 연설에서 제외한 교역 문제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4월 27일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에서 다뤘다. 미국 산업기반의 붕괴라는 도전에 맞설 미국의 3단계 조치로서다. 그러면서 관세 인하에 초점을 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의 종식과 '신국제경제파트너십'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한국을 비롯해 13개국이 참가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을 말한 것이다. 바로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이 말했던 '빈사(瀕死)의 자유무역'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미국의 동맹과 우방국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재가입할 것으로 기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포괄적·점진적(CP) TPP’에 복귀하는 대신, IPEF를 들고 나왔다. 자유무역이 결국 미국 내 일자리를 죽였다는 원성 탓에 FTA가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총만 있고, 버터는 없는 전략"
그리하여 탄생한 IPEF는 불공정 경제 관행의 중국을 옥죄일 또 다른 체제로 설계됐다. 설리번은 연설에서 현란한 포장 능력을 내보였다. 다양하고 탄력적인 공급망과 청정에너지에 대한 공공·민간 자원의 투자 유도, 좋은 일자리 창출, 미국 디지털 인프라의 신뢰와 안전, 개방성을 높일 묘약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과 환경을 보호하고, 부패에 제동을 걸 구상이라고도 강조했다.
"IPEF가 있었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혼란과 공장 가동 중단 사태에 더 신속하게 대응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방점은 자유무역이 아닌, 공정무역에 놓여 있다. 옐런이 나열한 중국의 불공정 관행은 IPEF 이름으로 인·태 지역 교역에서 중국의 몫을 줄이고, 그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바이든이 지난해 5월 23일 도쿄에서 한국과 일본, 인도 등 13개 국가를 대표해 발표한 IPEF 성명은 △공정·회복적인 교역과 △공급망 회복성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화 △세금과 반부패 등 4개의 기둥을 담았다. 바탕에는 '공정 무역'이 깔려 있다. 그런데 왜 인기가 적을까. "새로운 미국 시장 접근에 관한 논의를 미국이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커트 통 아시아그룹 대표)"이다. '총만 있고, 버터는 없는 전략(파이낸셜 타임스)'이라는 논평이 적절해 보인다.
'환경'과 '노동'은 미국이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동원했던 명분이자 무기였다. 설리번은 이를 노동 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외국 노동자를 위하는 통합성 또는 포용성(inclusiveness)으로 설명한다. 기왕의 환경 논리는 기후변화의 모자를 쓰고 몸피를 늘렸다. 바이든은 IPEF가 "21세기 (세계)경제의 새로운 규칙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미국이 인도·태평양에서 해온 가장 중요한 국제경제 관여"라고 말했다.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설리번은 미국의 부흥을 위한 4단계 조치로 중·저소득 국가의 뒤처진 인프라 개선을 위한 '글로벌 인프라 및 투자(PGII)'를 들었는데, 이는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개도국)에 제공해온 일대일로(BRI) 인프라 자금의 대안으로 보인다. 5단계 조치에서는 내놓고 중국을 지목했다.
그는 옐런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중국 견제 논리를 기술 보호로 축약했다. "미국의 근본적인 기술을 ‘좁은 땅에 높은 펜스’를 치고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비난하는 '기술 봉쇄'는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옐런도 설리번도 미·중 경제의 탈동조화(decoupling)는 한사코 부인했다. 디커플링이 아닌,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언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제안한 '탈위협(de-risking)'과 '다양화(diversifying)'라면서 "미국은 미국 노동자와 기업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평평한 운동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리번은 미·중 협력 사안을 기후변화와 거시경제 안정성, 보건 안보, 식량 안보 등 4가지 분야에 국한했다. 개도국의 부채과잉(debt-overhang) 문제 협의도 포함된다.
중국을 두둔할 이유는 없지만 동맹이라고 무조건 믿을 이유도 없다. 혼란기 한국의 일자리와 번영을 도모하려면, 미국 측 주장의 진위를 가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 바이든의 경제전략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설리번과 옐런의 연설문을 읽는 이유다. 바이든의 입으로 반복해 들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 대외전략이 베이징을 겨냥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들고나온 버락 오바마는 "(아시아가) 그동안 미국에 물건을 수출해 부강해진 만큼 이제는 미국 물건을 사라(2009년 도쿄 산토리홀 연설)"고 윽박질렀고,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중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집중했다. '한국과 같은 부자 나라'는 방위비 분담을 더 하라고 닦달했다.
바이든의 경제 전략 역시 '가치'와 '민주주의' '동맹' 등 총천연색 '토핑'을 걷어내면, 돈과 돈이 부딪히는 제로섬 게임이다. 미국의 번영이자, 내년 대선에 걸린 표이며, 그 결과는 동맹과 우방의 잠정적인 궁핍화일 뿐이다. 그런데도 바이든의 직무 지지도는 40%대 초반에 머무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여기서 링컨의 명연설은 문구 수정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미국을 위한, (그러나) 동맹과 우방에 의한 번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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