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바이든 경제 전략1, "세계는 미국의 번영에 복무하라"

본문

진단은 틀리지 않지만, 해법이 생뚱맞다. 미국의 문제를 세계가 해결하라는 오만이 읽힌다. 중국과 러시아 경제를 견제하면서 ‘가치’를 들먹이지만, 미국의 부흥으로 귀결된다. 선택과 배제. 주지하는 대로 미국은 동맹과 우방을 선택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한다. 그런데 선택과 배제 역시 황폐해진 미국 산업기반을 되살리는 ‘실리’로 환산한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세계 경제전략을 대변하는 2개의 중요한 연설이 나왔다. 설리번은 바이든 행정부가 2년여 전 4개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에서 출범했다면서 각각의 도전에 대한 원인 및 해결 방향을 소개했다. 4개의 도전은 대부분 외생적인 변수가 아닌, 미국 스스로 선택한 세계화에 따른 결과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러나 수십 년 쌓인 국내 경제문제 해결에 '비슷한 생각의 국가(LMN)'로 두루뭉술하게 아우른 동맹과 우방의 손을 빌리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 24일 백악관 언론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4.24. AP 연합뉴스

먼저 설리번 보좌관의 4월 27일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문을 톺아보자. 부통령 시절부터 바이든을 보좌해온 설리번은 코로나19 대책에서부터 미·중 관계,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주도했다. 바이든 행정부 세계전략의 골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산층을 위한 외교' 정책의 설계자로 꼽힌다. 바이든을 읽으려면, 설리번부터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미국 경제 재건이 출발점이자 종착점

설리번은 바이든 행정부가 2년여 전 4개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에서 출범했다면서 각각의 도전에 대한 원인 및 해결 방향을 소개했다. 4개의 도전은 대부분 외생적인 변수가 아닌, 미국 스스로 선택한 세계화에 따른 결과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러나 수십 년 쌓인 국내 경제문제 해결에 '비슷한 생각의 국가(LMN)'로 두루뭉술하게 아우른 동맹과 우방의 손을 빌리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설리번이 말한 첫 번째 도전은 미국 산업기반이 공동화됐다는 점이다. 시장이 늘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자본을 배분할 것이라는 가정에 감세와 규제 완화, 민영화, 무역 자유화에 매진해온 결과다. 과도하게 단순화된 시장 효율성의 명분으로 전략적 제품의 모든 공급망과 산업시설 및 일자리가 해외로 옮겨갔다. 금융 부문은 특혜를 받아왔지만, 반도체와 인프라와 같은 중요한 부문의 산업생산력은 위축됐다.

미국 기업들이 공장과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발 세계화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감세·규제 완화·민영화·무역 자유화는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워 다른 국가들에 강요해온 '황금률'이었다. 설리번은 미국이 추진해온 자유무역협정(FTA) 대신, '무역 자유화'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미국과 중국의 청정 에너지 시장 점유율 비교. 파란색이 중국, 빨간색이 미국의 점유율이다. 태양광 발전 모듈과 배터리, 전기자동차 풍력발전 터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의 취약산업이 바로 국가안보 위협이자, 공급망 위협이라는 논리의 출발점 중 하나다.  백악관 누리집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한 두 번째 도전은 지정학적, 안보적 경쟁이 초래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과제였다. 중국 책임론을 집중 부각했다. 중국이 대규모 보조금으로 미래 핵심산업인 청정에너지와 디지털 인프라 및 고도의 생명과학은 물론, 철강산업과 같은 전통적 산업을 육성했다. 그 결과 미국은 제조업 기반은 물론, 기술 경쟁력도 침식됐다. 시장통합에도 불구하고 중국 및 러시아의 군사적 야망은 확대됐고, 두 나라 모두 더 책임적이지도, 더 협력적이지도 않았다. 중·러가 국가 간 경제 의존성을 경제적 또는 지정학적 수단으로 악용한 탓에 유럽은 에너지 불확실성에서부터 의료 장비·반도체·핵심 광물까지 공급망이 취약해졌다. FTA와 시장통합 역시 미국이 주도해왔건만, 그 피해가 미국에 떨어진 것을 주로 중국 탓으로 돌렸다.

중국 정부 보조금 탓하며, IRA·CSA 보조금 동원

본말이 뒤바뀐 주장이다. 유럽의 에너지 불확실성은 노르트스트림2의 경우가 극명하게 보여주듯, 우크라이나 전쟁 전부터 미국이 기획한 상황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사실상 완성된 파이프라인의 개통을 집요하게 저지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빌미로 러시아 제재를 통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막은 것 역시 미국이다. 그 때문에 유럽과 세계가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설리번은 중국과 러시아 탓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IRA나 CSA 역시 보조금이 주요 수단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과학법(CSA)은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 번째는 바이든 행정부가 위기이자 기회로 판단하는 기후변화 문제다. 바이든은 '기후 문제=일자리 창출'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특히 21세기 가장 중요한 성장 기회로 청정에너지 경제를 꼽고 있다. 기술혁신과 비용 절감 및 고용 창출을 위한 사려 깊은 투자전략이 필요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늦었더라도 미국이 투자하면 될 것이다.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의 공장이 돌아오면(Reshoring) 된다. 그런데 느닷없이 동맹과 우방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Friend shoring)를 거론한다.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 대치 국면을 한껏 강조하면서 안정된 공급망을 확보하려면 미국에 먼저 투자하라는 말이다. 특히 제조업 공장 설립을 유도 또는 강요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 SK 등 한국 기업들이 바이든 취임 뒤 미국에 투자한 규모만 1000억 달러에 달한다. '경제'와 '안보'뿐 아니라 '가치'까지 뒤섞어 미국 내 일자리를 늘렸고, 그것을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이라고 명명한다.

마지막 도전은 양극화와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타격이다. 이 문제야말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시작하고, 빌 클린턴 행정부가 본격화한 세계화의 대표적인 폐해다. 양극화 문제에서도 중국을 거론했다. 다만, 전 연설을 통해 사실상 유일하게 ‘내 탓이오’를 고백했다. 그는 "솔직히" 미국 국내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킨 '차이나 쇼크'를 제대로 평가, 대처하지 못한 미국의 경제정책을 탓했다.

세계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설리번은 바이든이 취임 일성으로 '더 나은 건설(Build Back Better)'을 강조한 것과 관련, 생산력과 기술개발능력의 건설, 자연재해와 지정학적 충격으로부터 회복력의 건설, 미국과 해외 우방국에서 중산층과 노동자를 끌어안는 통합성의 건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합성(inclusiveness)과 관련, "강하고 활기찬 미국 중산층과 세계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면서 이게 바로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물론 각국이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무엇을 지출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그의 논리는 연설 후반부에 나온다. '노동'은 미국의 교역국에 결코 선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시장을 뚫는 데 다른 장애물로 작용한 '블루라운드(Blue Round)'를 연상시킨다. 설리번의 논리를 더 들여다보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