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모험심을 배양하고, 자연환경에서 대처 능력을 준비시키기 위해 마련된 제25회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거대한 단체관광단으로 전락했다. 휴가 중인 대통령의 한마디에 한국의 산업체 견학과 문화, 역사, 자연을 안내하는 관광 행사가 된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급조된 '거대 여행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일 35℃를 넘나드는 불볕더위 속에 온 나라에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종교와 대기업, 지자체가 나서 이미 흥건히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느라 팔을 걷어붙였다. 극한 더위와 조직위의 극한 준비 부족이 겹친 2023년 한여름, 전라북도 새만금 간척지 300만 평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수준의 혼란상이다.
코로나 확진 92명
6일 새만금 야영장은 정부의 긴급조치로 상황이 다소 개선됐다. 지난달 29일부터 도착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9일 동안 폭염과 습기, 병충해 속에 부족한 샤워, 의료, 편의시설 탓에 고충을 겪은 뒤에야 찾아온 변화다. 그러나 한고비를 넘기자마자 또 다른 고비가 예고된다. 전라북도 부안군 일대에 행사 기간 호우가 예보됐기 때문이다. 10일부터는 태풍 카눈의 북상도 예상된다. 대회 전부터 배수시설이 충분치 않아 간척지 곳곳에 물이 빠지지 않아 플라스틱 팔레트를 깔고 텐트를 설치했던 어려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카우트운동 세계기구(WOSM)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야영장 시설과 서비스 지원이 상당히 늘었다"고 밝혔다. WOSM은 그러나 "호우가 예보된 만큼 날씨를 지켜보면서 주최 측에 필요한 조치를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새만금 야영장을 조기에 철수한 스카우트 참가자들에게도 지원을 제공해 주라고 요구했다.
전라북도는 7월 29일부터 전날까지 야영장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를 92명(외국인 82명, 내국인 10명)으로 집계했다. 79명은 생활시설에 입소했고 국내 참가자 10명은 귀가했다. 이날 오전 새만금 프레스센터에서 세계 스카우트 관계자가 진행한 기자회견 도중 태국 남성 지도자가 여성 샤워장에 잠입한 사건이 알려져 소란을 야기했다. 김태연 전북연맹 스카우트 제900단 대장은 지난 2일 태국 남성 지도자가 한국인 여성 지도자를 따라 샤워장에 들어갔다가 적발됐었다면서 "세계 잼버리 측의 조치를 기다렸는데 '경고'에 그쳤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여성 샤워실 잠입" 전북 80명 조기 퇴소
문제의 태국 남성이 여전히 영내에 머무르고 있어 대원들이 야영지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정도 알렸다. 전북연맹 측은 여기에 온열 환자가 하루에 10명 이상 나오고 있어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업고 병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회 조직위 관계자들은 사안을 덮기에 급급했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김현숙 장관은 "(피해가)경미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말했고,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안"이라고 얼버무렸다. 세계 스카우트의 제이콥 머레이 사무국장은 "조사 결과 어떠한 성추행도 없었다"면서 가벼운 경고 조치에 그친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고, 청소년 대원들조차 불안함을 호소했지만, 조직위 대처가 미흡하자 전북 스카우트 대원 72명과 지도자 등 80명은 결국 조기 퇴소를 결정했다. 국내 참가자가 퇴소한 것은 처음이다.
청소년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이날 케이팝(K-POP) 공연은 참가자들의 안전을 우려해 오는 11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키로 했다.
각국 대표단 동향
연합뉴스에 따르면 2200명의 독일 스카우트 대표단은 5일(현지시각) 누리집 성명에서 처음 며칠은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영국 등처럼 잼버리를 떠나는 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바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1500여 명이 참가한 스웨덴 스카우트 대표단도 지난 4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에서 "계속 잼버리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측은 "식량 표시가 명확해지고, 위생시설 청소에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등 한국 정부의 노력으로 매일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생시설 청소 상태는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대표단 1진 700~800명은 버스 편으로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로 이동을 시작했다. 전날부터 철수를 시작한 영국 대표단도 이날 잔류 인원이 서울로 이동, 용산구와 강남구, 종로구, 중구, 성남시 분당구 등의 호텔로 나누어 숙소를 잡았다. BBC와 가디언 등 영국 매체들은 그러나 새만금 야영장을 떠난 영국인 스카우트들이 숙박난으로 인해 호텔 연회장 바닥에서 잠을 자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야영장에서 철수한 싱가포르 대원 60여 명은 대전의 한국수자원공사 인재개발원에 입소했다. 종로구 인사동 호텔에 투숙한 영국인 대원 베키(16)는 연합뉴스에 "(새만금 야영장에서는)탈수로 목이 계속 말랐고 어지러웠다. 5~10분에 한 번씩 구급차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 총동원 체제
새만금 야영장에 남은 스카우트 대원들은 전주와 임실 등 전라북도 14개 시, 군에서 영외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7일부터는 한국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확대된다. 아이들에게 '세계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워주겠다는 세계 스카우트(SMWO)의 비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새만금 행사장에서 곰팡이가 나온 구운 달걀을 판매하고, 편의점 이용 참가자들에게 바가지 씌었던 기업들은 황급히 '좌판'을 걷고 산타클로스로 변신했다. 전경련은 냉동 생수 10만 병을 긴급 지원했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4일과 5일 양일간 이례적인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 현장에 대형 아이스박스 400여 개를 긴급 지원했다고 6일 밝혔다. HD현대는 5일 임직원 봉사단 120여 명을 잼버리 대회 현장에 긴급 파견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국 17개 시도가 90개에 이르는 영외 문화활동 프로그램을 제시했다"면서 "조직위와 논의해 각국 스카우트 단의 수요를 조사해 연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대구, 광주, 경기, 전남, 경남 등 지자체에서 싱수와 얼음, 구급차, 재난 회복 버스, 선풍기 등의 물품 지원과 함께 구급대원을 파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업들은 생수 148만 병, 얼음 5만t, 아이스크림 28만 개, 빵 24만 개 등 셀 수가 없을 만큼 많은 물품을 후원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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