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땡볕인 새만금 간척지로 세계 청소년 4만여 명을 몰아넣었던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7일을 끝으로 결국 중단됐다. 경제적 효과만을 감안해 배수가 안돼 물이 고이고, 불볕더위에 대처할 온열피해 대처도 부실한 가운데 지난 1일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에서 시작한 대회가 결국 7일 만에 종료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실패'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미 야영장을 떠난 영국과 미국, 싱가포르 대표단에 이어 8일 오전 10시부터 3만 6000여 명의 나머지 대원들도 철수를 시작한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본부장은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전라북도가 태풍 영향권에 들면 잼버리 영지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됨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행정기관 및 민간 교육시설을 최대한 확보할 계획이지만, 숙소 분산이 불가피해 한 야영지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잼버리 대회는 끝내 무산됐다.
앞서 대통령실은 7일 오후 긴급 서면 브리핑을 통해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와 남은 일정을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태풍 대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보고받고 '플랜B(대안)' 논의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스카우트 운동 세계기구(WOSM)도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오전 한국 정부가 태풍 카눈 탓에 조기 (야영지) 출발을 예상하고 있다는 확인을 받았다"면서 "우리는 한국 정부에 신속하게 철수 계획을 수립, 모든 참가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긴급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대피계획은 세계스카우트연맹과 각국 대표단의 우려와 요청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WOSM은 영국 대표단이 새만금 철수를 결정한 지난 5일 이미 주최 측과 한국 정부에 대회 조기 중단과 대안 모색을 권고했었다.
정부의 비상계획은 한반도 전체가 9일부터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 들면서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온열 환자가 발생한 뒤에나 대책을 내놓은 정부도 태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폭염·습기·병충해의 3중고에 더해 태풍 피해까지 겹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회 시작 전부터 새만금 야영장에 도착한 각국 대표단은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는 땅에 플라스틱 팔레트를 깔고 텐트를 쳐야 했다. 배수시설이 안 된 간척지에 다시 비가 쏟아지면 참가자들에게 심각한 피해가 불 보듯 했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에서는 7일 오후 참가자들의 온열 피해에 뒤늦게 설치한 그늘막 철거를 시작하는 등 철수 준비에 착수했다. 11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변경했던 케이팝(K-POP) 공연도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다시 장소를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이날 오전 태풍 대비계획 검토에 들어간 뒤에도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체 숙소를 물색해왔다. 태풍의 전개 양상에 따라 '주의단계' '경계단계' '심각단계' 등으로 나누어 긴급 이동 계획을 수립했다. 심각단계에는 군산·정읍·부안·전주·익산·완주·고창 등 전라북도 8개 시·군의 주민센터나 체육관에 342개 시설을 '임시 대피소'로 검토했다.
정부는 한덕수 총리의 지난 5일 대회 강행 방침 발표 이후 군·경·소방당국 및 지자체와 종교, 기업들을 총동원해 대회 유지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영외체험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활동을 '새만금 이외' 장소에서 하면서도 숙소만큼은 새만금 야영지에 머물도록 했다. 스카우트 본연의 야영지 활동은 사실상 사라지고 산업체 견학과 역사·문화·자연 등을 둘러보는 사상 최대 규모의 단체관광이 된 상태에서 무늬만 '새만금 잼버리'로 유지해온 것이다.
한 총리는 5일 오후 새만금 잼버리 언론 브리핑에서 대회 강행 방침을 발표하면서 결정 주체가 이날 오전 회의를 가진 각국 대표단의 결정 사항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WOSM은 같은 날 오전 6시(제네바시각 4일 밤 11시) 대회 조기 중단을 권고한 성명에서 "주최 측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면서 행사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해 결정 주체가 한국 정부이었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이후 정부가 군·경·소방당국은 물론 지자체와 대기업 등에 동원령을 내리고 총리가 새만금 현장에 머물면서 '거대 여행사' 역할을 자처해온 것 역시 12일까지 참가자들을 새만금 간척지에 묶어두려는 의도에서였다. 전라북도 일원에서 찾던 비상대피소를 이 갑자기 수도권으로 변경한 것은 정부가 비상계획 수립과정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았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한 총리와 함께 대통령에게 비상계획을 보고했다는 이상민 장관의 행안부도 이날 11일 전주 월드컵경기장 케이팝(K-POP) 공연에 앞서 범정부 안전관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고 발표, 혼선을 빚었다.
행안부·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전라북도·전주시는 물론 군·경·소방당국이 총동원된다. 범정부 TF는 공연 관람객 이동, 공연장 질서 유지 및 인파 관리, 공연 중 충분한 식수 공급, 야영지 복귀 등 전 과정의 안전관리를 맡게 된다.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평창 동계 올림픽 등 수십만 명이 방문한 글로벌 행사를 무난하게 치렀던 국가가 공연장 안전을 위해 범정부 TF를 조직해야 하는 수준으로 몰락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일개 공연장 안전사고 방지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나라가 됐나,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안전사고는 이태원 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미리 대비한다면 적은 인원으로 피할 수 있다. 글로벌 청소년 행사에서 안전 대책은 상식이다. 하지만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를 내보이는 건 또 다른 전시행정이 아닐 수 없다.
행안부의 발 빠른 대처는 그러나 이날 오후 대통령실이 잼버리 참가자 전원을 서울로 이동하고 새만금 야영장을 포기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함에 따라 무산됐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무대로 새로운 범정부 TF팀을 구성해야 할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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