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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갚은 이란 원유대금, 왈가왈부하는 미국 그리고 세계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10. 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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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이스라엘 분쟁 이후 대한민국이 지난 9월 상환한 이란 원유대금이 미국 내에서 새삼 이슈가 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카타르 금융기관에 계류된 대금을 재동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재동결 압박을 넣고 있기에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지출한 돈을 놓고 엉뚱하게 미국이 왈가왈부하는 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현실이자, 지독한 모순이다. 하마스의 공격이 75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 박해에 따른 결과라면,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한국의 상환대금 문제는 작금의 세계를 내다볼 '창'이다.

11일 이스라엘 남부 애쉬켈론에서 한 주민이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공격을 피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2023.10.11. AP 연합뉴스

'이란 배후설' 진위 상관없이 "닥치고 재동결"

미 상·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미국인 희생에 대한 보복을 요구하며 대금 재동결을 촉구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2일 이란 원유대금의 재동결 문제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커비 조정관은 한국이 지불한 원유대금이 카타르 은행에 묶여 있다면서 "단 한 푼도 이란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란이 하마스에 재정 지원을 해온 건 비밀이 아니다. 국무부는 한 해 최소 1억 달러가 넘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하마스 공격에 이란이 직접 관련됐는지이다. 커비 조정관의 말대로 단 한 푼도 넘어가지 않았다면, 적어도 하마스의 이번 공격이 원유대금을 토대로 행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미 연방의회 의원들은 원유대금이 이번 공격에 사용됐다는 가정하에 재동결을 요구하고 있다.

마샤 블랙번 하원의원(공화·테네시)은 8일 "바이든 행정부는 불과 몇 주 전 이란에 60억 달러를 건넸고, 오늘 무고한 이스라엘인들이 이란이 지원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거짓되고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바이든 행정부를 두둔하던 민주당 의원들도 입장을 번복하고 있다. 태미 볼드윈 상원의원(민주·위스콘신)은 10일 "이란이 이스라엘 국민에 대한 야만적인 테러 공격에 이란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게 완전히 규명되기 전까지 미국은 60억 달러를 동결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죄가 확인될 때까지 무조건 징벌부터 해야 한다는 억지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1월 7일 가자지구 중부 제발리야 난민캠프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친척 10명을 잃은 한 주민이 장례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09.1.7. AP자료사진 연합뉴스

내년 대선·총선을 앞둔 의원들은 미국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의 심중에 민감한 상태다. 미국 선거판의 소재로 원유대금이 활용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이란 배후설'은 부인하면서도 하마스와 이란의 관계를 토대로 이란의 역할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란이 하마스에 매년 1억 달러 상당의 지원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한국시각) 현재 결론이 나지 않은 이 문제는 미국인 14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으로 알려진 미국인 인질의 운명이 확인되지 않음에 따라 당분간 워싱턴 정가의 중요한 관심사로 남을 것으로 관측된다.

원유대금 8조 원(60억 달러)의 향방은 단순히 한·이란 간 거래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정치의 복잡한 계산과 사정이 그 갈피에 있다. 미국이 대금을 재동결한다면 이란의 개입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이란의 반발 및 분쟁의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민 속에 정작 그 돈을 지출한 한국의 입장 따위는 없다.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고려만 작용할 뿐이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대이란 제재-자금 동결-조건부 송금 허용-재동결 검토에 이른 다섯 개의 과정은 모두 미국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국제법은 물론 국제 상거래 관행과도 무관하다.

미국의 핵합의 이탈부터 재동결 논의까지

무엇보다 이란 자금을 동결한 제재 자체가 미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미·러·중·영·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핵합의(공동의 포괄적 행동계획, JCPOA)를 도출한 것은 2015년 7월 14일.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속였다"며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을 늘어놓으며 딴지를 걸기 전까지 별다른 말썽 없이 이행됐다. 합의 이행을 감독해 온 국제원자력기구(IAEA)뿐 아니라 러·중·영·프·독까지 나서 "이란의 위반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결국 2018년 5월 JCPOA에서 무단이탈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내렸다. 의혹만으로 재단한 것이다.

지난 9월 13일 레바논 시돈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쫓겨난 한 소녀가 다른 캠프로 이송을 기다리며 길가에 앉아 있다. 2023.9.13. AP 연합뉴스

이란은 다른 합의 참여국들과 함께 미국의 JCPOA 복귀를 추진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이란이 결국 JCPOA 이행 중단을 발표한 것은 미국이 이탈한 지 1년이 되는 2019년 5월 8일이었다. 2020년 1월 3일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의 대외부문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니를 무인기로 표적 살해하면서 미·이란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임기 내내 닥치고 반이란, 친이스라엘 행보를 해온 트럼프가 퇴임을 불과 17일 앞두고 승인한 작전이었다.

이란은 그럼에도 JCPOA 복귀를 기대했다. 새로 당선된 바이든이 트럼프의 결정을 번복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든은 취임 뒤 JCPOA 복귀를 시사했다. 그러나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가 거부감을 보이자 슬그머니 뜻을 굽혔다. 여러 사례에서 입증된 바, 입만 열면 '가치'를 강조하는 바이든은 '트럼프2'에 불과하다.

4년여 동안 동결됐던 한국의 원유대금이 풀린 계기 역시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였다. 지난 9월 초 이란이 구금한 5명의 미국인을 석방하는 대가로 한국 원유대금의 상환을 허용했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등의 원화 계정에 동결됐던 8조 원을 카타르 중앙은행에 송금했다. 2018년 현재 70억 달러였지만, 원화 가치가 떨어진 탓에 60억 달러로 줄었다. 막대한 자금이 한국 시중은행에 묶였지만, 단 한 푼의 이자도 지급하지 않았다. 애초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에 근거해 원유대금은 인도적인 목적에 한해서만 지출된다. 상환 1달이 넘도록 이란에 전달되지 않은 연유다.

정부 "이미 우리 손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이 상환한 대금을 두고 재동결해야 한다는 게 미국 의회이고, 재동결 가능성을 내보이는 게 바이든 행정부다. 트럼프가 당초 JCPOA를 파기할 때처럼 근거는 희박하고, 과정은 불투명하며, 결과는 미국의 국익 챙기기다. 

한국의 원유대금만 묶였던 건 아니다. 이라크 60억 달러, 중국 20억 달러, 일본 15억 달러, 룩셈부르크 16억 달러 등 동결된 돈은 모두 1000억~1200억 달러로 추정된다. 미국의 억지와 오만 탓에 얼토당토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는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JCPOA에 서명한 영·불·독 역시 아무 역할을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시민언론 <민들레>의 관련 질의에 "이미 우리 손을 떠난 문제이기에 한국 정부가 발표할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어떠한 합리적인 거버넌스(통치구조)도 없는 혼돈의 세상, 미국이 만들어 온 세상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풍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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