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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주민은 왜 '인간짐승(Human-Animal)'이 되었나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10. 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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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메드 이사(30)는 가자지구에서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다. 아내와 함께 다섯 살배기 바삼과 두 살배기 아담을 키우고 있다. 그의 가족은 이스라엘이 건국한 1948년부터 가자지구에 살고 있다. 많은 가자지구 주민과 마찬가지로 자기 땅에서 추방당한 실향민이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2020년 영국 외교부의 셰브닝 장학금을 받은 덕분에 워윅대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과 전략으로 석사 학위를 마쳤다. 그가 지난 14일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연구소(IPS) 누리집에 세계 시민을 상대로 편지를 띄웠다.

16일 현재 가자지구 국경에 집결한 이스라엘군은 아직 진입하지 않고 있다. 북부 주민 110만여 명을 남쪽으로 소개 작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60만 명 정도가 피란길에 올랐다. 하지만 병원과 양로원 등 이동할 수 없는 주민들은 고립돼 있다. IPS는 하마스의 선제공격 뒤 1주일 동안 이스라엘군이 펼친 '알아크사 홍수 작전'의 피해 상황을 14일 집계했다. 6000개의 폭탄이 투하돼 이날 오전 현재 주민 2215명이 사망했다. 이 중 어린이가 700여 명이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이 50일 동안 충돌했던 2014년 전쟁의 희생자 수(2251명)에 벌써 육박한다.

군 작전이 개시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전쟁'이 아니다. IPS가 규정한 '가자 제노사이드(대량학살)'가 더 적절해 보인다. 규모가 클 뿐 유혈사태는 가자 주민이 겪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이사의 편지는 '가자에서의 삶'을 덤덤하면서도 결연한 필체로 담았다. 세계를 향해 던진 인사(Hello, World)로 글을 열었다. 1963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설립된 IPS는 가장 오래된 팔레스타인 연구기관으로 베이루트와 파리, 워싱턴, 라말라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IPS 누리집이 글과 함께 게재한 아메드 이사.

2022년 공부를 끝낸 이사는 영국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자지구로 돌아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는 사회적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17년째라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봉쇄를 시작한 2007년 시작된 고통이다. 높은 실업률과 희망의 결핍, 물과 전기와 같이 기본적인 필요가 없이 살아 온 세월이다. 이스라엘의 군용기가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고, 군용 드론이 언제, 무엇이건 과녁을 겨냥해 온 세월이기도 하다.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들에겐 기회가 없기에 점령자(the Occupier)를 향해 폭발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점령자들은 과연 그러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10월 7일 일어난 일(하마스의 선제공격)은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을 가둬둔 채 질식시켜 온 결과다. 대체 그들은 가자 주민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사가 거듭 던진 질문이다. 

이사는 또 한 번의 행운을 얻었다. 미국 ‘팔레스타인 작가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예레츠 검문소 밖으로 여행 허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자지구 주민은 여행 허가를 받지 못한다. 가자를 떠나면서 그는 난생처음 (가자지구가 아닌) 원래의 팔레스타인 땅을 보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셨고, 가자 주민이 한때 평화롭게 살던 녹지대와 팔레스타인 마을의 이정표도 보았다. 간단 없이 의문이 솟아올랐다. 정착촌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우리 땅 위에서 유럽에서처럼 근사한 환경을 제공받으면서 평화로이 살 수 있을까.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다른. 그들은 과연 철책 넘어 가자 주민의 고통을 알지 못할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이사는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집트로 이주시키려 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가자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운 좋게 가자지구 밖에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어야 한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에서 죽는 것을 선호한다. 자기도 가족 모두와 함께 살자고, 떠나지 말자고 약속했다.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무엇이건 견딜 수 있다. 해서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포기하느니 서서 죽기를 바란다."

이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생존 자체가 저항이라고 믿는다.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땅에서 계속 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국 친구들이 건너오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영국에 정착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 같다. 영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겠지만, 팔레스타인 땅에서 받은 영향과 그 땅과의 유대감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자에 남은 까닭이다. 젊은이들이 자질을 계발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디지털 마케터로 외국 고객들과 일할 기술을 습득하도록 도우면서. 이사는 "여기에 머물면서, 내 사람들과 함께 고통받고 견디는 게 다른 곳에서 (이 땅과) 연결이 끊긴 채 사는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고 충만하다"고 말한다.

수없이 접했고, 다시 접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신산한 삶 이야기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폭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내놓은 이사의 육성은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편지 말미에 자신을 '미개한 인간 짐승(uncivilized and human-animal)'이라고 쓴 대목에 눈길이 멎었다. '인간짐승'은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지난 9일 가 자지구에 전기와 식량,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한편, 폭격을 지시하면서  남긴 어록이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전사들을 싸잡아 '인간 짐승'이라고 지칭했다.

이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진실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한다. 야만적이고 잔혹한 점령을 당하고, 이스라엘인들이 잠자는 밤중에 어린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한 고통을 주는 것 자체가 2008년, 2014년, 2021년과 바로 지금, 대규모 공격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전략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은 이렇다.

"만일 당신이 최근 며칠 동안 주류 언론에서 본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셨다면, 제발 가자에서 나온 사진과 동영상을 자세히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점령자들이 훨씬 더 잔인합니다. 물론 당신이 그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은 우리에 대해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슴이 있다면, 진실을 찾아 발견할 겁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에게 평화를. 미개한 인간짐승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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