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군더더기가 붙고 조건이 많아진다. 하나의 조건을 완료하면, 새로운 조건이 튀어나온다. 영원히 바위를 굴려 올릴 수밖에 없는 시시포스의 운명과 다름없다. 한미가 17년 전 시점까지 못 박아 전환키로 했다가 하염없이 늘어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야기다.
한미 국방장관이 13일 발표한 제55차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 전작권 전환 부분에는 몇 개의 미로가 겹쳐 있다. 의도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도대체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종잡기가 어렵다.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조건은 세 가지. △연합방위 주도에 필요한 군사적 능력(조건1) △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 능력(조건2) △안정적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조건3) 등이다. 코로나19의 대확산으로 조건1과 조건2의 검증이 지체됐지만, 2019년 8월 미래연합사의 기본운용능력(IOC) 평가를 마쳤다. 미래연합사의 완전운용능력(FOC) 평가는 2022년 8월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중 성공적으로 시행돼 한국군 4성 장군이 지휘하는 미래연합사의 전시 임무수행역량에 진전이 있음을 확인했다. 2022년 11월 제54차 SCM 공동성명은 "미래연합사의 FOC 평가를 성공적으로 시행해 모든 평가 과제가 기준을 충족했다"고 명시했다. "전환조건 충족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한 이유다.
그러면서 조건1과 조건2의 능력·체계에 대한 공동 평가를 완료하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그동안 실시해 온 운용능력 평가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명시해 놓고 새삼 능력·체계를 공동평가한다고 고리를 걸어 두었다. 그렇다면, 올해 SCM에서는 상호 간의 합의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작업에 아퀴를 짓고 결론을 내려야 마땅했다.
그러나 올해 SCM은 또다시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조건1과 조건2의 능력·체계에 대한 연례 평가를 완료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많은 분야에서 진전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라면서도 언제 전환할지를 몇 겹으로 말꼬리를 둘렀다. "조건1과 조건2의 능력·체계에 대한 공동 평가 결과가 상호 합의된 수준을 달성하면, 미래연합사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추진할 것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중등 교육을 받은 이의 한글 문해력으로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중언부언이다. 그러는 사이 국방예산은 '물 먹는 하마'처럼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지난 2월 국방백서에서 국방부는 향후 5년(2023~2027)간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방위력개선비 107.4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2021년 제53차 성명에서 불과 4문장이었던 관련 기술이 2년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9문장이다. "한국의 핵심 군사능력과 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평가를 제54차 SCM까지 완료한다"고 명시(제53차 SCM)했던 평가 종료 시점은 2년 만에 사라졌다.
평가한다고 1년을 보내고, 평가를 마쳤다면서 다시 평가하기로 재확인한다면서 1년을 추가하고, 다시 검증한다고 1년을 늘이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아예 전작권 전환 포기하겠다"고 말할 용기는 없어 보인다.
올해 SCM에는 전작권 전환의 세 번째 조건인 '역내 안보환경 평가'가 들어갔지만, 이 역시 스무고개다. "상호 합의한 평가방법과 요소를 토대로 첫 번째 역내 안보환경평가 결과를 도출한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고 평가하면서도 "양 장관은 향후 보다 긴밀한 협조를 통해 역내 안보환경 평가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올해 환경 평가를 이미 했는데, 다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게 무슨 말인가. 앞으로도 매년 안보환경 평가를 한다는 말인가. 이는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양국 국방부 차원에서 역내 안보환경 평가 결과를 도출했다면서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4년 단위 국방정책 리뷰(QDR)과, 국방전략(NDS) 등 안보환경 평가 보고서를 의회에 보고하고, 국민에 공개한다. 지난 6월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에서는 북한의 핵전략 평가를 따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양국이 처음 도출했다는 한반도 안보환경 평가 결과를 생뚱맞게 비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늘어나 한반도가 위협에 처했다고 확성기에 떠드는 상황에서 한미가 합의했다는 안보 평가 결과를 왜 비밀에 붙여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작권 전환의 마지막 조건인 한반도 안보환경평가를 양국의 일개 정부부처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안보환경 평가는 군통수권자 차원에서 국방부와 정보당국, 외교부 등의 의견을 참고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국가적인 중대사를 전시도 아닌 평시에 국방장관이 하겠다는 건 '군사국가'가 아니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특히 한국군의 DNA가 된 듯한 미군 의존 성향을 감안하면, 영원히 전환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읽힌다.
한미가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정부가 헌납한 전작권을 전환키로 한 것은 2007년 2월이다. 노무현 정부와 조지 부시 행정부는 '2012년 4월 17일'로 전환 시점을 명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군은 충분히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전작권 전환 문제가 꼬인 것은 주로 한국의 정권 교체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제금융위기를 빌미로 환수 시점을 3년 8개월 늦췄고, 박근혜 정부는 아예 시기를 없앴다. 전작권 환수에는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기에 국방예산 증가율이 정권의 의지를 말해준다. 노무현 정부 임기 동안 연평균 국방예산 증가율은 8.4%에 달했지만, 이명박 정부 5.3%, 박근혜 정부 3.98%로 쪼그라들었다. 한미가 2015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COPT)'을 새삼 수립한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방예산을 평균 6.27% 올리면서 시동을 걸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전환 문제는 다시 게걸음 치고 있다.
핑계는 넘쳤다. 한미는 2007년 6월 전작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한국 합참으로 전환한다는 '전략적 전환계획(STP)'을 승인했지만, 북한의 2차 핵실험(2009)과 천안함 피격(2010)을 이유로 늦췄다.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된다는 빌미로 2014년 4월 전환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올해 중 예상되는 북한의 군사첩보위성 발사 또는 7차 핵실험을 빌미로 다시 연기하자고 나올 게 예상된다.
역대 국방 관료들은 진보정권에선 전환에 필요하다며 막대한 국방예산을 확보했고, 보수정권에선 전환을 늦춰야 한다는 장단에 몸을 실었다. 그러면서 보낸 세월이 17년이다. 그 사이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2018년 한미 연합사 체제를 유지한 채 미래연합사를 창설키로 한 데 이어 유엔사 역시 미래 전쟁 사령부로 부활할 채비를 한다. 국군이 이중 삼중으로 외국군 예하에 놓일 처지다. 외국군 망토 안에 머무는 군을 언제까지 '국민의 군대'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결국 용기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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